■2023년2월4일(토)■
(누가복음 19장)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묵상/눅 19:41-48)
◆ 예수님의 눈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꼭 두 번 우신다.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요 11:35)와 오늘 본문처럼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다.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아들조차 어쩔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영역이 있다. 어쩔 수 없음은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 군대를 단번에 모두 죽여버릴 엄청난 힘이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재림하신 이후에는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모두 없애고, 죽음과 슬픔조차 모두 제거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왜 빨리 당겨지지 않느냐로 항의하지 말라. 당신이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아직 참고 계실 수 있다.
온 우주에서 하나님을 제한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자신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음의 속성이 하나님을 제한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형제들이 인생을 살면서 심한 고난에 빠질 때, 주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눈물을 떠올려라.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다. 마음 아파하시고 안타까워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절대로 무능해서 내버려 두심이 아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아마도 무신론자들은 우리가 안 계신 하나님을 계신 것처럼 꿰맞추려고 '믿음'이란 핑계로 사실을 가리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것은 누구에게 교육받아서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에서 온 믿음이 있으며, 우리는 이 믿음에 의해서 확고하게 알게 된 사실(fact)들이다.
우리가 죽음에 임했을 때, 우리가 믿음으로 산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살면서 딸의 겁탈과 아들의 실종,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등 각종 험악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이었지만, 그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죽을 때 침상 머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창 48:15)
이것이 죽음에 임박해서 할 수 있는 나의 고백이며 우리 형제들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예루살렘의 파괴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께서 우신 것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실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당장은 멀쩡하고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얼마 안 있어서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으리라(43)
놀랍게도 이렇게 말씀하신 지 37년 후(AD 70년)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
로마군과 유대인은 대략 4년간 전쟁을 했는데,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날이 오래 지속되자 식량이 다 떨어진 예루살렘 주민은 피골이 상접하고, 배고픈 관리들이 미친 듯이 백성들의 식량을 빼앗기 시작했다. 당시 살아있었던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생생한 증언에 의하면 사람들은 빵을 구울 때, 채 다 구워지기도 전에 꺼내서 먹었다고 했다. 먹기도 전에 들이닥친 폭도들에 의해서 빼앗기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포학한 관리들이 곡식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었는데, 어린아이가 먹을 것을 쥐고 안 빼앗기려고 하면 번쩍 들어서 바닥에 메어쳤다고 했다. 나중에는 악에 받친 백성들이 곡식을 숨기고 내놓지 않자, 남자의 성기를 꽁꽁 묶고 항문을 날카로운 막대기로 마구 쑤셔대는 고문법까지 고안해내기까지 했다. (요세푸스 3권 520쪽. 생명의말씀사)
결국 백성들은 식량이 다 떨어지자 대부분 굶어 죽고, 끝까지 살아남은 일부 군인과 권력자들은 더는 저항할 힘을 잃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밀고 들어왔고, 유대인들은 몰살되었다. 예루살렘을 공격한 로마 장군 티토는 성전만큼은 유적으로서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항전한 유대인에게 질린 로마군인들이 흥분하여서 여기저기 불을 놓기 시작했고, 성전도 불타기 시작했다. 결국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서 모두 철거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유대인들은 전세계에 흩어져버렸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미래를 아시고 눈물을 흘리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의기양양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처절할 것이다.
구전에 의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은 성도들은 로마군이 포위할 때 즈음해서 아주 급하게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목숨을 보전했다고 했다. 정말 지붕에 있는 자는 밑에 내려가서 세간을 챙길 틈도 없이 도망갔어야 했다.
◆ 성전을 정결케 하심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성전을 강도의 소굴, 장사꾼의 터로 만든 자들이 누굴까?
권력자나 장사치가 아니라 성전을 지켜는 제사장들이었다. 성전을 가장 거룩하게 보존해야 할 제사장들이 알고보니 성전을 가장 세속적이고 부패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되었다. 이런 아이러니는 역사를 통해서 늘 반복되었다. 이들이 이러는 것에 새삼스럽게 분개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우리다. 아무런 분별력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따라 행하면서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부패는 쉽게 분별하지만 시스템의 부패는 분별하기가 어렵다. 성가대가 없는 교회라고 해서 '이단'이라고 말할 정도로 무지하다. 사람들은 성경이 아니라, 자신이 익숙한 시스템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물론 세속화된 종교인들의 논리는 늘 그럴싸하다. 당시에도 비둘기나 소나 양을 하나님께 희생물로 바칠 때 멀리서 오는 사람들은 이것을 끌고 오기가 너무나 불편하니, 대부분 성전 부근에서 돈을 주고 샀다. 제사장들은 이것에 착안하여 장사치들과 결탁해서 성전 뜰 안에서 이것을 팔게 해주고 수수료를 챙겼다. 명분은 구매자의 편리를 위해서이지만, 이로써 성전은 양과 소와 비둘기를 매매하는 시장터로 북새통이 되었다.
탐욕스러운 종교권력자들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어왔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기말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문제는 일반 신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시스템에 순응하고 젖어 드는 것이다. 온갖 종교적 술수에 평생 당하고 살다가 그들이 향하는 지옥에 함께 동행하는 것이야 말로 끔찍한 일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가증스러운 일이 계속 자행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양과 소들을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셨다(요 2:15). 예수님의 명분은 제사장들보다 더 분명했다. 명확한 성경 말씀을 내세우셨기 때문이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우리도 세상의 종교권력자들이 세운 그럴싸한 전통 논리를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잘 비추어보아서 분별하여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어떤 성도들을 보면 각종 불의에는 아무런 죄책감없이 살면서 십일조를 안 바치는 것에는 큰 죄책감을 느낀다. 길들여진 것이다. 올바른 성도라면 불의나 거짓말에 더 민감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세속화된 종교적인 관행들을 거절해야 한다. 말씀에 따라서 내 속에 있는 각종 잘못된 관습들을 분별하여 버리고 올바른 신앙을 정립하도록 하자.
주님,
나도 모르게 젖어 든 세속종교의 모습이 어떤 것입니까?
분별력을 주셔서 성도로서의 거룩함과 진실함을 회복하게 하시고,
세속화된 종교 관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