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2월7일(화)■
(누가복음 20장)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묵상/눅 20:9-19)
◆ 포도원 비유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이 비유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그 주간에 하신 것들이다. 추정하자면 화요일 정도 될 것이다. 사흘 후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다. 따지고 보면 무척 긴장되는 나날이다.
이 비유 속에는 포도원 주인과 농부와 종과 아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누구를 비유하고 있을까?
이스라엘은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선지자가 있었던 나라다. 자기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예언이 있고, 그것의 성취를 맛본 매우 독특한 나라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나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은 나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인 유일한 나라다.
이런 역사를 알고 이 비유를 들으면 주인은 하나님이고, 농부는 이스라엘 백성, 종은 선지자,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유에서 등장인물과 더불어 놓치면 안 될 중요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포도원은 농부들의 소유가 아니라, 주인 것이며, 세로 준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비유에서 이 사실은 매우 의미깊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가 자기들의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오늘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주신 것이지, 이스라엘에 준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면 고기 한 점은 커녕 국물도 없다.
주인에게 반항하는 농부들은 결국 포도원을 빼앗기고 진멸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거기에 합당한 백성이 이어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란,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이다. 교회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 자들로 채워진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이 없다. 오로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만 있다.
◆ 모퉁이의 머릿돌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청중들은 포도원 비유에서 농부들이 자기들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그들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서 예언된 일이라고 하신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라는 말씀은 시편 118편 22절의 말씀이다. 당시에 집을 건축하려면 네 모퉁이에는 가장 크고 반듯한 돌을 놓았다. 거기에 기둥을 세우고, 골격을 만든 후에 벽과 지붕을 만들었다. 따라서 건축할 때 가장 중요한 돌은 모퉁잇돌이었다. 이게 없으면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쓸모없다고 판정된 돌인데, 그게 가장 중요한 모퉁잇돌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이 예언됨은 어찜인가? 이런 돌을 몰라보고 버린 건축자들은 어리석고, 이런 돌을 알아보고 모퉁잇돌로 사용한 건축자는 진정으로 지혜롭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버린 바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삼으셨으며,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셨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33)
◆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머릿돌을 말씀하시다가 이어서 깨어 부수는 돌을 비유로 드신다. 이 돌 위에 떨어지면 죽는다. 이 돌이 그 사람 위에 떨어져도 죽는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돌이 날아오면 피하지, 머리로 들이받지 않는다. 아무도 돌이 왜 내 머리보다 단단한지를 불평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대적하면, 그는 돌에 부딪히는 것처럼 될 것이다. 돌이 깨지지 않고 자신이 깨질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예수님을 깨려고 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한 자들은 모조리 깨어졌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강한 돌이시다.
우리 중에는 아무도 만유인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만유인력 법칙을 거슬려 보겠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용기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다. 오히려 만유인력을 깨달았으면, 거기에 적응하고 응용하며 사는 것이 지혜다. 이런 예는 무수히 들 수 있다.
이런 장황한 말을 왜 하는가?
하나님은 만유인력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만유인력보다 더 확고한 법칙이시며, 더 불변의 속성을 가지신 존재이시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증명할 일이 아니라, 믿어야 할 일이다.
창조주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이며, 우리가 경외할 분이시다.
하나님을 판단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잘 파악해서 순종하며 사는 자가 최고로 지혜로운 자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것은 전혀 논쟁거리가 안된다.
오, 당신이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라고 진짜 믿는다면,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옳다고 말해야 한다. 그분은 모든 선과 악의 기준이시다. 악이란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든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굴복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