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3월25일(토)■
(아모스 4장)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8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13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묵상/암 4:6-13)
◆ 고난을 당할 때 취해야 할 태도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teeth)를 깨끗하게 하며'라는 말씀은 양식이 다 떨어져서 씹을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문학적 표현을 쓰셨다는 것이 흥미롭다. 하긴 인간의 모든 문학적 소질도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음이니 당연한 일이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된 고난만 해도 대단하다.
기근, 가뭄, 깜부기 재앙, 메뚜기 재앙, 전염병, 전쟁...
도대체 고난의 원인은 무엇인가?
고난의 원인은 분명히 인간의 죄와 악함때문인데, 그것이 꼭 개인이나 소수의 집단을 콕 집어서 선별하여 내리지 않기 때문에 해석이 어렵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배에서 주무실 때, 광풍과 파도가 밀어닥쳤다. 이런 고난이 왜 오는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악해서인가? 그럴 리가?
그렇다면 이런 것은 하나님과 무관한가?
아니다. 종종 인간의 죄악과 사탄의 악함으로 생성된 고난일지라도 그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고난의 원인은 인간의 죄에 있기에 책임을 하나님께 물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손으로 통제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조화시킬 길이란 없다. 수많은 석학들이 고난을 논리적으로 멋지게 해석하려고 애를 썼지만, 모두 실패했다. 너무 반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머리가 나뻐서 이해를 못한다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 벼락을 맞아서 죽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로우심은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고난은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써 이 세상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에 죽음과 고난은 개인의 선함과 악함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다가왔다(롬 5:17). '무차별'이라는 말이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조금 위로가 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추수하기 석 달 전(12월-2월)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하는데, 이것은 알곡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늦은 비가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밀 수확량의 차이가 크게 났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밀 추수는 유월절인 4월 초부터 시작해서 오순절인 5월 중순에 끝난다.
그런데 어느 지역은 늦은 비가 알맞게 내렸지만, 다른 지역은 비가 하나도 내리지 않았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지역 사람들이 저 지역 사람들보다 더 악하기 때문일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렇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비가 안 내린 곳 사람만 돌아올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것을 교훈 삼아서 돌아올 것을 촉구하셨다(8).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4,5)
외려 고난 겪는 당사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 자일 수 있다. 욥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고난 당하는 자들은 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우리보다 더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교훈 삼아서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려고 해야 한다.
나의 누님은 주식투자로 꽤 돈을 벌었다. 신앙심이 깊고, 성품이 올곧기는 하지만 제법 돈을 많이 쥐게 되자 점점 자만심과 고집이 강해졌다. 그런데 IMF가 터지자 그 모든 주식이 휴지로 변하면서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다. 고난이 닥친 것이다.
어머님 집에 올 때마다 선물을 한 아름씩 들고 왔던 누님이 어느 날 빈손으로 왔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콜라 하나를 살 돈이 없다고 했다. 늘 자신만만하고 고집이 셌던 누님이 풀이 죽고 우울해 있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갑자기 하나님의 감동이 와서 누님에게 그동안의 자만심을 회개할 것을 권했다. 평소 같으면 반발했을 누님이지만, 놀랍게도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정말 누님은 회개했다. 그동안 사이가 안 좋았던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진실로 겸손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게 되었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의식이 없었다. 나는 누님의 귀에 대고 예수님을 꼭 붙잡으라고 말했다. 끝내 소천했을 때, 아버님 죽음 때보다도 훨씬 더 슬피 울었다.
누님에게는 모든 재산을 날린 것이 고난이었지만, 나는 누님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죽기 전에 회개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얻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굶어 죽는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나 진짜 비참한 사람은 배부른 가운데 교만하여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죽는 사람이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고난 없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는 것보다 낫다.
오늘 본문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고난과 환난이 종종 죄 때문에 생기지만, 그 목적은 형벌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시는 선도라는 것이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9)고 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돌이키려고 하심에도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는 '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12)고 하신다. 그 만남은 결코 복된 만남이 아닐 것이다. 그 만남은 심판대 앞에서의 만남이며,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는 만남이다. 회개하고 싶어도 이미 지나가 버린 기회이며, 피하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
그러므로 내가 환난을 당하든, 남이 당하든 우리는 그런 것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 경외하기를 교훈 받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께서는 주의 종인 나를 잘 대해 주셨습니다.
내가 주의 계명을 신뢰하니, 올바른 통찰력과 지식을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킵니다.
선하신 주님, 너그러우신 주님,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시 119:6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