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절七絶을 지닌 감柹과 한시 이야기
조영임
반시, 곶감, 건시, 홍시, 연감, 연시, 삽시, 떫은 감, 땡감, 청시, 풋감, 물감, 침
시, 단감
이것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감을 부르는 이름이다. 납작하게 생긴 것은
반시라 하고 물렁하게 잘 익은 감은 홍시 및 연시라 하고, 꾸덕꾸덕 건조시킨
것은 건시 및 곶감이라 하였다. 또한 좀 일찍 나온 것은 청시 및 풋감이라 하였
고, 그 맛이 덜 익어 떫은맛이 나는 것은 삽시 및 땡감이라 하였다. 먹었을 때 물
이 많으면 물감이요, 삭힌 감은 침시요, 떫은맛이 없이 단맛이 나는 것은 단감
이라 하였다. 감은 감이로되, 모양에 따라 성숙에 따라 맛에 따라 이렇듯 이름이
다양했다. 이것은 감이 우리의 식생활과 그만큼 밀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감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만 나는 동아시아 특수 과일이다. 감은
한자로 시柹라 한다. 한자 시柿는 시柹의 속자이다. 혹 음이 같은 감柑으로 오인
할 수 있으나, 감柑은 감귤의 종류를 지칭하는 한자이다. 중국에서는 주과朱果
혹은 후조猴枣라는 감의 이칭이 있다. 감은 영양이 풍부하여 사과와 비교되기도
한다. 서양 속담에 “하루에 사과 한 알을 먹으면 의사를 가까이할 일이 없다.”
라는 말이 있다지만, 감은 심장병을 예방하고 혈관을 강화하는데 사과보다 훨
씬 효과가 크기 때문에 심장을 건강하게 하는 과일 중의 으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매일 사과 하나를 먹는 것보다 매일 감 하나를 먹는 것이 낫
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감은 의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폐와 위를 건강하게
하고, 허약한 기를 보충해 줄 수 있으며,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고, 열을 제거하고,
지혈에 도움이 되는 과일이라고 한다. 감에 이렇듯 다양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매일
하나씩 먹는다면 정말 병원에 갈 일이 없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옛 문헌에도 감에 관한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그중에 몇 편의 한시를 소개해 본다.
전에는 꾸러미에 싼 홍장을 마시고
지금은 꼬챙이에 꿴 유옥을 먹게 되니
늙은 치아에 무른 홍시가 맞고
병든 입에는 마른 곶감도 더욱 좋다오
칠절을 겸했으니 이름이 두루 알려졌고
세 번씩이나 보내 주었으니 고맙기 그지없구려
몹시 우스운 건 다 먹고 남은 꼬챙이를
손에 들고 남은 찌꺼기까지 씹고 있는 것이오
解苞昔作紅漿吸 盈貫今將黝玉呑
老齒不關含濕冷 病脣尤快咀乾溫
物兼七絶名偏重 恩及三投感可言
堪笑啖終唯串在 手持猶自齕餘痕
―「하낭중이 보내온 곶감에 사례하다〔謝河郞中惠送乾杮子〕」 『東國李相國文集』
위의 시는 고려시대에 활동한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작품이다. 하낭
중이라는 분이 앞서 두 번이나 홍시를 보내고 이번에는 곶감을 보내주었음을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수련의 홍장紅漿은 홍시를, 유옥黝玉은 곶감을 지칭한다.
연치가 높은 시인이 먹기에는 물렁물렁한 홍시가 입에 맞지만, 또 병이 든 몸에는
곶감 역시 좋다고 하였다. 홍시는 먹기 좋고 곶감은 몸에 좋다는 것이니 모두 좋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경련의‘칠절七絶’이란 어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칠절이 무엇인가?
감나무가 지닌 일곱 가지 덕을 일컫는 말이다. 첫째는 장수[多壽]요, 둘째는 감나무
그늘이 많음[多陰]이요, 셋째는 새가 둥지를 틀지 않음[無鳥巢]이요, 넷째는 나무에
벌레가 없음[無蟲]이요, 다섯째는 서리 맞은 감잎이 완상 할 만하다는[霜葉可玩] 것이요,
여섯째는 열매가 아름답다는[佳實] 것이요, 마지막 일곱째는 감잎이 크고 두껍다[落葉肥大]
는 것이다. 위의 글은 송나라의 나원羅愿이 지은 『이아익爾雅翼』에 나온다.
감나무는 그 수령이 100년이 되는 것도 있으니 족히 장수하는 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한 번
심어놓으면 여러 대에 걸쳐 감나무가 주는 이로움을 누릴 수 있다. 봄날 앙상한 가지 끝에
돋아나오기 시작한 여린 연두 빛의 감잎은 다인茶人들이 사랑하였으며, 여름이 되어 무성해진
감나무 잎은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기에 족할 정도의 그늘을 제공한다. 감나무 밑 평상에서 차를
마시는 일도 즐길 만한 흥취 중의 하나이다. 새가 둥지를 틀지 않는 나무가 없건마는 유독 감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하였으니 나무의 신성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감나무에 벌레가 없다 함은
단단한 육질을 자랑할 만한 것이다. 그 단단한 육질이 주방의 도마로 변신하거나 또 다른 가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감나무의 초록 잎은 가을이 되면 붉은 단풍으로 물든다. 붉게 물든 감잎은 화려한
봄꽃이 주는 아름다움보다 훨씬 고즈넉하고 깊다. 그러니 완상할 밖에. 그리고 감나무의 열매인 감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과실이다. 감나무는 그 잎이 크고 두꺼워서 종이 대용으로 쓸 수 있다.
‘정건삼절鄭虔三絶’이라 일컬어졌던 당나라의 정건鄭虔은 글씨를 연습할 종이가 없었을 때 감잎에
글씨를 썼다고 한다. 감나무가 지닌 덕이 어찌 일곱 가지뿐이겠는가. 감나무의 덕을 새겨 볼수록
기특하다. 다시 이규보의 한시로 돌아가 보자. 미련의 표현이 솔직하고 재미있다. 곶감이 얼마나
맛있으면 곶감을 꿴 꼬챙이까지 씹고 있을까. 곶감의 맛과 상대방에 대한 사례의 뜻을 이 한
구절에 농축하였다.
어젯밤 동쪽 이웃에서 취하였고
아침에 일어나 창을 밀쳐 여노라
숙취가 덜 깨어 물 길어라 재촉하노니
갈증이 나서 꿈속에 강이라도 삼키고 싶다
새로 난 신선 과일 광주리에 담아 오니
홍시의 붉은 즙으로 뱃속이 시원하여라
정녕 고맙게도 벗님이 주신 것이라
찾아와 준 것보다 더욱 반갑구나
昨夜東隣醉 朝來起拓窓
餘酣催汲井 渴夢欲呑江
仙果新傾篚 瓊漿爽滿腔
丁寧故人惠 不啻足音跫
―「석양공자가 때 이른 홍시를 보내왔기에 편지 끝에 적어서 사례하다.
〔石陽公子送早紅書簡尾謝之〕」『月沙集』
위의 시는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작품이다. 그는 조선 중기 때의 문신으로 그의 문장은
장유張維, 이식李植, 신흠申欽과 더불어 이른바 한문 사대가로 일컬어졌다. 시인은 어젯밤 통음을
한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도 작취미성昨醉未醒인지라 그 갈증이 얼마나 심했으면 강물이라도
마구 삼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괴롭던 차에 갓 들여온 홍시를 먹고 나니 그제야 뱃속이 시원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위의 시에 등장하는 홍시는 다름 아닌 숙취 해소 음료에 해당되는 것이다.
홍시가 주는 시원한 맛도 맛이려니와 감에 해독작용이 있으니 틀림없이 몸에 이로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술 권하는 한국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꼭 챙겨야 할 과실 중의 하나가 감이 아닐까 싶다.
반시도 좋고, 홍시도 좋고, 곶감도 좋은 것이니 입맛에 맞는 것으로 상비함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한국에서 곶감은 단연 상주곶감을 상품上品으로 친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상주곶감보다 보은 서당에서
훈장님 몰래 먹은 곶감 맛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훈장님은 회초리를 들고서
학동들에게 “이놈들, 곶감이 먹고 싶어도 하루에 딱 하나씩만 먹어라. 내가 감의 숫자를 세어 놓았으니
알아서 하여라.”라고 준엄하게 말씀하셨지만, 기가 막히게 맛있는 곶감 앞에 훈장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늘 곶감은 훈장님의 셈보다 일찍 동이 나곤 했다.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상주곶감보다 특등의 곶감은 훈장님 몰래 먹는 서당 곶감이라고.
세상의 모든 맛이란 저마다의 경험과 추억으로 버무려져 새로 탄생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그 맛의 여운을 찾아 과거로의 회상을 거듭하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