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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숨소리」 「봄의 뿌리」 등 18편의 시가, 2부에는 「그늘의 색을 본 적이 있다」 「통증을 버린 새」 등 17편이, 3부에는 「골목의 육아」 「피에타」 등 18편이, 4부에는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과 「동백꽃」 등 17편이 섬세하고 안정적인 필치로 그려진다.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에 실린 70편의 시 가운데 상당수의 시가 죽음을 통한,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마주한 순간의 안타깝고 슬픈 심정을 절절하고 애타게 부르짖으며 소리 높여 서럽게 울기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담담한 어조로 펼쳐 낸다. 오랜 시간 동안 가슴속에서 발효된 이별의 정념이 담긴 깊은 한숨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자연 만물과 함께 공명하고 있다.
■ 출판사 서평
죽음을 관조하다
강우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숨소리」 「봄의 뿌리」 등 18편의 시가, 2부에는 「그늘의 색을 본 적이 있다」 「통증을 버린 새」 등 17편이, 3부에는 「골목의 육아」 「피에타」 등 18편이, 4부에는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과 「동백꽃」 등 17편이 섬세하고 안정적인 필치로 그려진다.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에 실린 70편의 시 가운데 상당수의 시가 죽음을 통한,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마주한 순간의 안타깝고 슬픈 심정을 절절하고 애타게 부르짖으며 소리 높여 서럽게 울기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담담한 어조로 펼쳐 낸다. 오랜 시간 동안 가슴속에서 발효된 이별의 정념이 담긴 깊은 한숨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자연 만물과 함께 공명하고 있다.
■ 출판사 서평
죽음을 관조하다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은 강우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70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집을 관류하는 주된 정서는 죽음에 관한 관조적인 의식이다. 간혹 환한 햇살처럼 따스하고 밝은 시도 보이지만, 대부분의 시는 죽음을 겪는 존재들의 상실감을 다루고 있다.
존재의 부재에 대한 관찰은 어쩌면 시인의 숙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에서 시인은 안타까움, 슬픔, 절규 등이 시간이 지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삭이고 삭인 죽음의 이별을 낮은 한숨에 담아 노래한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죽음을 단순한 소재로 다루지 않고, 삶과 죽음이 서로 얽혀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강우현 시인에게 슬픔은 익어 고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자의 사리처럼 반짝이는 구슬이 되어 영롱한 빛을 발한다.
극복되지 않는 슬픔이란 없다. 받아들이고 긍정하고 적응하다 보면 죽음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된다. 강우현 시인이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에서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런 깨달음인 듯하다. 그런 마음의 눈으로 보기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과 슬픔은 작은 곤충이나 새, 짐승이나 꽃 같은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들의 죽음마저 예사롭지 않게 바라본다.
강우현 시인이 사용하는 시적 언어는 매우 자유롭다.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는 고정된 형태로 표현되지 않고 비유는 경이로울 만큼 자유로워서,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언어의 틀을 벗고 상상 속을 날아다닌다. 가지런하고 깔끔한 은유로 무장한 시인의 정신과 감각이 자연 속에 스며, 한 편 한 편 강우현 시인만의 고유한 아우라가 빛나는 까닭이다.
“강우현의 시는 현란한 말투의 가지나 가벼운 혀의 잎을 쳐낸 한 송이 꽃이다. 더는 덜어낼 것 없는, 그의 봄 꿈과 세상에 건네는 잔잔한 시선과 골목을 감싸는 따뜻한 언어를 거두어 서쪽으로 보내는 편지가 참 곱다.”(해설에서)
이팝나무 아래 새 울음소리
가늘게 이어지는 음의 파동을 따라간다
입이 몸의 반쯤이나 차지한 어린 새가
뒤뚱거리며 나무 발치를 맴돌고 있다
햇살 내리꽂히는 칠월 정오
깃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몸이
왜 바닥으로 내려왔을까
쉬어갈 그늘막 하나 없고
사마리아인의 손길도 보이지 않는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산 채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를 어린 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세주 어미는
더위 무성한 시간을 어디에서 헤매는지
한쪽 눈 감고 이팝나무를 지나왔다
사거리 녹색 신호등 건너
커피전문점을 지나 마트까지 다녀왔는데
왜 자꾸 그 작은 알몸이 떠오를까
어린 새의 바짝 마른 주검을 껴안고
목놓아 우는 어미 새의 모습
피에타의 조각상으로 부서져
저녁상 이밥 앞에 앉은 나를 찌른다
- 「피에타」 전문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의 죽음을 맞은 성모마리아의 슬픔을 뜻한다. 예수의 주검을 안고 비통에 잠긴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 중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절정으로 평가된다. 절통한 심정을 오열이 아니라 절제된 숭고미로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예술적 영감의 대상으로 다루어졌다. 피에타의 형상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강조되는 감정이 다르다. 강우현 시인의 「피에타」는 채 피어나지 못하고 져버린 어린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비탄의 어조로 전개되고 있다. 피에타 조각상이 부서졌다는 것은 어머니의 슬픔이 너무나 커서 가슴이 산산이 부서질 만큼 아프다는 의미이다. 위험에 처한 어린 새를 도와주지 못하고 지나쳐 온 자신에 대하여 부서진 피에타의 조각상이 칼날이 되어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시인의 관심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 만물에 있다. 가족과 친지, 동료 외에도 나무와 꽃, 새, 거미, 지렁이 등 작은 것들에게까지 무한하다. 자연물을 향한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다.
9월의 걸음 소리
싱그럽게 포장한 소란을 맑음으로 읽으면
귀뚜라미 울음이 사는 집 한 채
날개 달린 밤이 되지
아무나 들었다 가도 좋은
넉넉한 바위틈에
눈길 주지 않는 강아지풀처럼
누가 더 예쁜 신부를 맞나 궁금해서
귀를 빳빳이 세우고
고민 없이 일 저지르는 소리 듣고 싶지
오늘과 내일은 같은 색깔이 아니라고
소리 밀대로 어둠을 밀어내는 것들
가로등 피해 내려앉은 어둠을
다 건너기까지 깨어있는
밤이 키우는 민낯의 손바닥은
아슬아슬 살다 가는 운명선을 가졌거든
눈물이 흐르지 않는 울음도 울음은 울음
노래로 오해하도록
목숨 내놓고 다녀가는 길목이지
- 「아슬아슬한 길목」 전문
바위틈에 들었다가 가는 손님은 누구일까? 강아지풀 혼자 새초롬하게 서 있는데 바람이 들어와 서늘한 가을을 놓고 간다. 바람 따라 들어온 다른 이가 또로록 또로록 누군가를 또 부른다. 밤 깊어 어둠 짙은데, 잠들지 못하고 시인은 작은 굴에서 쉼 없이 밤을 밝히는 이들의 삶을 읽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만 읽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듯, 온몸의 세포가 청각기관으로 몰려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간다. “소리 밀대로 어둠을 몰아내는 것들/ 가로등 피해 내려앉은 어둠을/ 다 건너기까지 깨어있는” 자들은 밤을 잊은 자들이다. 생산은 낮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밤의 의식을 치르는 대상들에게서 생명의 창조가 이루어지듯이, 대상을 읽는 데에 몰두한 시인에게서도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
‘소란騷亂’은 보통 ‘밝음’의 것이다. ‘어둠’에는 ‘고요’나 ‘적막’이 어울린다. 가을밤을 소란으로 물들이는 것은 아주 작은 귀뚜라미들의 생명 활동이다. 어둠은 은밀한 시간이며 휴식의 시간이지만, 밤의 정적을 몰아내는 것은 귀뚜라미의 축제, 생의 환희를 창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란’과 ‘맑음’ 두 명사가 대구對句를 이룬 행에서, ‘소란스럽다’와 ‘청아하다’라는 형용사보다 더 자세하고 간곡한 ‘소란’과 ‘맑음’이라는 명사를 쓴 시인의 의도를 읽는다. 곡진한 밤의 행사에 몰입하는 대상을 통해 삶의 철학을 읽어내는 시인의 안목眼目은 그를 통해 시를 읽는 자 또한 그 통찰 속으로 이끈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울음도 울음은 울음/ 노래로 오해하도록/ 목숨 내놓고 다니는 길목”을 읽어내는 시인의 마음이 촉촉하다. 소란하여 잠 깨우는 성가신 소리도 ‘맑음’으로 읽으면, 다른 생명의 굴곡진 삶이 보인다.
작가 소개
강우현 시인은 2017년 《애지》로 등단하여 2021년에 첫 시집 『竹, 경전이 되기까지』를 냈고, 2021년 월간 《우리詩》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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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강우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70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집을 관류하는 주된 정서는 죽음에 관한 관조적인 의식이다. 간혹 환한 햇살처럼 따스하고 밝은 시도 보이지만, 대부분의 시는 죽음을 겪는 존재들의 상실감을 다루고 있다.
존재의 부재에 대한 관찰은 어쩌면 시인의 숙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에서 시인은 안타까움, 슬픔, 절규 등이 시간이 지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삭이고 삭인 죽음의 이별을 낮은 한숨에 담아 노래한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죽음을 단순한 소재로 다루지 않고, 삶과 죽음이 서로 얽혀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강우현 시인에게 슬픔은 익어 고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자의 사리처럼 반짝이는 구슬이 되어 영롱한 빛을 발한다.
극복되지 않는 슬픔이란 없다. 받아들이고 긍정하고 적응하다 보면 죽음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된다. 강우현 시인이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에서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런 깨달음인 듯하다. 그런 마음의 눈으로 보기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과 슬픔은 작은 곤충이나 새, 짐승이나 꽃 같은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들의 죽음마저 예사롭지 않게 바라본다.
강우현 시인이 사용하는 시적 언어는 매우 자유롭다.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는 고정된 형태로 표현되지 않고 비유는 경이로울 만큼 자유로워서,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언어의 틀을 벗고 상상 속을 날아다닌다. 가지런하고 깔끔한 은유로 무장한 시인의 정신과 감각이 자연 속에 스며, 한 편 한 편 강우현 시인만의 고유한 아우라가 빛나는 까닭이다.
“강우현의 시는 현란한 말투의 가지나 가벼운 혀의 잎을 쳐낸 한 송이 꽃이다. 더는 덜어낼 것 없는, 그의 봄 꿈과 세상에 건네는 잔잔한 시선과 골목을 감싸는 따뜻한 언어를 거두어 서쪽으로 보내는 편지가 참 곱다.”(해설에서)
이팝나무 아래 새 울음소리
가늘게 이어지는 음의 파동을 따라간다
입이 몸의 반쯤이나 차지한 어린 새가
뒤뚱거리며 나무 발치를 맴돌고 있다
햇살 내리꽂히는 칠월 정오
깃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몸이
왜 바닥으로 내려왔을까
쉬어갈 그늘막 하나 없고
사마리아인의 손길도 보이지 않는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산 채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를 어린 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세주 어미는
더위 무성한 시간을 어디에서 헤매는지
한쪽 눈 감고 이팝나무를 지나왔다
사거리 녹색 신호등 건너
커피전문점을 지나 마트까지 다녀왔는데
왜 자꾸 그 작은 알몸이 떠오를까
어린 새의 바짝 마른 주검을 껴안고
목놓아 우는 어미 새의 모습
피에타의 조각상으로 부서져
저녁상 이밥 앞에 앉은 나를 찌른다
- 「피에타」 전문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의 죽음을 맞은 성모마리아의 슬픔을 뜻한다. 예수의 주검을 안고 비통에 잠긴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 중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절정으로 평가된다. 절통한 심정을 오열이 아니라 절제된 숭고미로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예술적 영감의 대상으로 다루어졌다. 피에타의 형상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강조되는 감정이 다르다. 강우현 시인의 「피에타」는 채 피어나지 못하고 져버린 어린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비탄의 어조로 전개되고 있다. 피에타 조각상이 부서졌다는 것은 어머니의 슬픔이 너무나 커서 가슴이 산산이 부서질 만큼 아프다는 의미이다. 위험에 처한 어린 새를 도와주지 못하고 지나쳐 온 자신에 대하여 부서진 피에타의 조각상이 칼날이 되어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시인의 관심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 만물에 있다. 가족과 친지, 동료 외에도 나무와 꽃, 새, 거미, 지렁이 등 작은 것들에게까지 무한하다. 자연물을 향한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다.
9월의 걸음 소리
싱그럽게 포장한 소란을 맑음으로 읽으면
귀뚜라미 울음이 사는 집 한 채
날개 달린 밤이 되지
아무나 들었다 가도 좋은
넉넉한 바위틈에
눈길 주지 않는 강아지풀처럼
누가 더 예쁜 신부를 맞나 궁금해서
귀를 빳빳이 세우고
고민 없이 일 저지르는 소리 듣고 싶지
오늘과 내일은 같은 색깔이 아니라고
소리 밀대로 어둠을 밀어내는 것들
가로등 피해 내려앉은 어둠을
다 건너기까지 깨어있는
밤이 키우는 민낯의 손바닥은
아슬아슬 살다 가는 운명선을 가졌거든
눈물이 흐르지 않는 울음도 울음은 울음
노래로 오해하도록
목숨 내놓고 다녀가는 길목이지
- 「아슬아슬한 길목」 전문
바위틈에 들었다가 가는 손님은 누구일까? 강아지풀 혼자 새초롬하게 서 있는데 바람이 들어와 서늘한 가을을 놓고 간다. 바람 따라 들어온 다른 이가 또로록 또로록 누군가를 또 부른다. 밤 깊어 어둠 짙은데, 잠들지 못하고 시인은 작은 굴에서 쉼 없이 밤을 밝히는 이들의 삶을 읽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만 읽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듯, 온몸의 세포가 청각기관으로 몰려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간다. “소리 밀대로 어둠을 몰아내는 것들/ 가로등 피해 내려앉은 어둠을/ 다 건너기까지 깨어있는” 자들은 밤을 잊은 자들이다. 생산은 낮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밤의 의식을 치르는 대상들에게서 생명의 창조가 이루어지듯이, 대상을 읽는 데에 몰두한 시인에게서도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
‘소란騷亂’은 보통 ‘밝음’의 것이다. ‘어둠’에는 ‘고요’나 ‘적막’이 어울린다. 가을밤을 소란으로 물들이는 것은 아주 작은 귀뚜라미들의 생명 활동이다. 어둠은 은밀한 시간이며 휴식의 시간이지만, 밤의 정적을 몰아내는 것은 귀뚜라미의 축제, 생의 환희를 창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란’과 ‘맑음’ 두 명사가 대구對句를 이룬 행에서, ‘소란스럽다’와 ‘청아하다’라는 형용사보다 더 자세하고 간곡한 ‘소란’과 ‘맑음’이라는 명사를 쓴 시인의 의도를 읽는다. 곡진한 밤의 행사에 몰입하는 대상을 통해 삶의 철학을 읽어내는 시인의 안목眼目은 그를 통해 시를 읽는 자 또한 그 통찰 속으로 이끈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울음도 울음은 울음/ 노래로 오해하도록/ 목숨 내놓고 다니는 길목”을 읽어내는 시인의 마음이 촉촉하다. 소란하여 잠 깨우는 성가신 소리도 ‘맑음’으로 읽으면, 다른 생명의 굴곡진 삶이 보인다.
* 작가 소개
강우현 시인은 2017년 《애지》로 등단하여 2021년에 첫 시집 『竹, 경전이 되기까지』를 냈고, 2021년 월간 《우리詩》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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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거듭 축하합니다. 강우현 시인님,
날 잡아서 다시 읽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답글 인사가 늦었습니다.
출판사 서평을 읽고, 나도 듣고 싶은 서평임을!!!
시간이 지나서 읽어도 마음으로 드는 서평입니다.
감사합니다. 늘 부족함을 느끼는 시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시라는 분을 만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