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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동자의 가피력
옛날 월성(지금의 경주)땅에 떠꺼머리총각이 살고 있었다. 30세가 다 되도록 장가를 못가고 홀어머니를 극진히 잘 모시면서 마땅한 농사꺼리가 없어서 산에 올라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떠꺼머리총각은 인사성 밝아 밤이나 낮이나 만나는 사람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항상 명랑하고 싹싹하게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아니하고 먼저 달려가 인사부터 하는 착한 심성(心性)을 가진 총각 이였다. 이런 총각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아무나 보고 싱글벙글 웃고 말을 잘 걸어온다고 해서 ‘덕구(德求)’라는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얕잡아보고 ‘덕구’보다는 ‘싱겁이’이라고 불렸다. ‘싱겁이’이름은 애들이나 어른이나 온 동네 사람들이 장난삼아 함부로 다 불러댔다. 사람들의 놀림감이 된 것이다. 그래도 ‘싱겁이’는 싱글벙글 댔다. 심지어 극진히 모시고 살아왔든 어머니가 돌아 가셨는데도 장례기간을 지나서는 언제 그랬나? 하고 나무지게를 짊어지고 싱글벙글 산길을 헤집고 다녔다. ‘싱겁이’의 나무길 은 언제나 일정했다. 토함산 중허리를 올랐다가 나무를 한 짐 하고는 다시 중허리를 돌아 하산하는 길이 일과이다. 토함산 중허리에는 맑은 샘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 가지고간 주먹밥을 챙겨 먹으면서 잠깐 쉬어가기에는 안성맞춤 이였다.
“고수레! 어이 동자! 배 고퍼지? 너도 좀 먹어라.”
먹기 전에 보리밥 한 덩이와 시커멓은 무김치 한 조각을 땅위로 살포시 드러난 바위덩이를 향하여 휙! 하고 던져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곳 새파란 이끼로 둘러싸인 돌(石)덩어리에는 양쪽으로 머리를 묶어 올린 동자상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조각상이 있었다. 그래서 ‘싱겁이’는 매일 같이 이곳에서 주먹밥을 먹으면서 10년 세월을 지극정성으로 고수레를 하고 있었다.
“싱겁아! 장가갈래? 위 마을 덕순이 한데 장가 보내줄까.”
어느 햇살이 따뜻한 봄날 고수레와 함께 주먹밥을 챙겨먹고 그날따라 식곤증(食困症)인지 피로가 몰려왔어 양지(陽地)바른 둔덕에서 잠시 낮잠에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양쪽으로 머리를 묶어 올린 예쁘장한 동자가 나타나 꿈에도 그리든 ‘덕순이’에게 장가운운 하는 것이 아닌가? ‘덕순이’는 시집간 첫날밤에 초야(初夜)도 치루기전에 신랑이 급살(急煞)하는 바람에 시가집으로 부터 ‘신랑 잡아먹은 재수 없는 년!’ 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소박(疏薄)맞고 쫓겨난 청상(靑孀)과부이다. 당시만 해도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고 하여 시가집에서 소박 받아 쫓겨난 여인은 친정집에서 받아주지 않든 시절이라 ‘순덕이’도 아랫마을 친정집에서 멀리 떨어진 위 마을에서 홀로 움막살이를 하고 있는 젊은 여인이었다. 보름달 같은 얼굴에 후덕한 몸매는 당시기준으로서는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라고 시집가기 전까지만 해도 월성(경주)제일의 소문난 규수(閨秀)이었다. 지금도 비록 소박맞은 청상과부이나 남자라면 모두가 눈독을 덜이고 보쌈기회만 노리고 있는 여인인데 어린 동자 녀석이 ‘순덕이’를 들먹이며 장가 운운하는 것이었다.
“응 장가 갈란다, 보내만 주라! 장가 갈란다.”
‘싱겁이’이는 동자가 제의하는 장가소리에 와락 구미(口味)가 당기는지라 얼른 승낙하고 반긴다. 재촉까지 해댄다.
“그럼 나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할래?”
동자는 ‘싱겁이’귀에 뭐라고 소곤소곤 하고는 사라졌다. 꿈이 이었다. 말 그대로 춘몽(春夢)을 꾼 것이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을 꾼 것이다. 그러나 일장춘몽 개꿈으로 취급하기로는 너무나 생생한 꿈인지라 ‘싱겁이’는 꿈속의 동자가 시키는 대로 저녁밥을 챙겨먹고 혹시나 하고 ‘순덕이’가 살고 있는 위 동네를 찾아갔다. 헌데 아니나 다를까? 저쪽 어둠속에서 양쪽갈래머리 동자가 싱긋하고 신호를 보내온다. 그리곤 꿈속에서 약속대로 ‘순덕이’집 사립문간에 떡하니 버티고 서더니
“싱겁아! 싱겁아!”
목청을 높여 외쳐 불러댔다. ‘순덕이’는 청상과부인지라 보쌈에 대비해서 움막에 어울리지 않게 사립문만은 완벽했다. 그 사립문은 하루해가 지기 무섭게 굳게 닫혀졌다. 그 후로는 적막(寂寞)강산(江山)이다. 그런데 동자가 느닷없이 나타나 싱겁아! 를 목청껏 외쳐대고 있으니 처음에는 ‘순덕이’이도 잘못 찾아온 것이겠지? 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사립문 앞에서 계속 불러대는 것으로 봐서 그냥 무시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방문을 열고 대꾸를 했다.
“그런 사람 없다.”
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동자는 못 알아들은 척 줄곧 외쳐댄다.
“싱겁아! 싱겁아! 싱겁아!”
목청이 얼마나 커고 높은지 천지(天地)가 진동하는 소리를 낸다.
“싱겁아! 싱겁아! 싱겁아!!!!!!!!”
아예 걸어놓은 사립문을 와락 부수고 쳐들어 올 듯이 다가와 줄기차게 흔들어 댄다. 좀처럼 돌아갈 기색을 안 보인다.
“처음 보는 아이인데 니가 누구인데 여기 와서 싱겁이를 찾고 있노?”
방안에서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든 ‘순덕이’이가 어린아이 혼자임을 확인하고 방문을 열어젖히고 약간 짜증난 경상도 사투리로 물어 왔다.
“뒷산 문동(文童)이인데요? 싱겁이가 여기 왔다 고해서 찾아왔습니다.”
“싱겁이가 누구지 몰라도 그런 사람 안 왔다.”
천성이 원래 착한 ‘순덕이’ 인지라 안 왔다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참! 이상하다 분명히 싱겁이가 이집에 갔다고 했는데?”
좀처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끼우뚱하고 다시 ‘싱겁이’를 불러댄다. 이번에는 화라도 난 것처럼 짜증석인 목소리이다.
“싱겁아! 싱겁아! 싱겁아!!!!!!!!”
순덕이가 방에 들어가다 말고 돌아와서 큰소리로 다그친다.
“이 애가 와 이라노? ‘싱겁이’인지 벙글인지 안 왔다는데도 왜 짜꾸 이라노!”
무서운 기세로 동자를 겁박한다. 동자는 그래도 아량 곧 않고 연신 싱겁이를 외쳐댄다. 화가 난 순덕이가 따귀라도 한 대 올릴 기세로 걸어 잠가놓은 사립문을 열고 동자에게 달려왔다. 동자는 뒷걸음쳐 비실비실 도망을 가면서도 싱겁아! 싱겁아! 를 외쳐댄다. ‘순덕이’가 달리면 동자도 달리고 ‘순덕이’가 멈추면 동자도 멈추는 희한한 술래잡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싱겁이’이는 동자와의 낮 꿈속의 약속대로 청상과부 ‘순덕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이불속에 몸을 숨겼다. 쫓고 쫓기든 희한한 술래잡기도 싱겁아! 싱겁아! 를 외치고 도망가든 동자가 힘에 부쳤는지 그만 ‘순덕이’ 손에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안 왔다는데도 왜 자꾸 싱겁이를 찾느냐? 그런 사람 없다.”
‘순덕이’도 지쳐는 지 숨을 헐떡이며 동자를 설득해본다.
“아니란 말 이예요 ‘싱겁이’가 그 집안에 있다고 했단 말 이예요.”
그러나 동자는 막무가내다. 동자의 고집에 ‘순덕이’가 기가 막혀왔다.
“그럼 네 눈으로 한번 확인해 봐라! 없으면 혼날 줄 알아라.”
‘순덕이’는 화가 나서 씩씩 거리는 동자를 데리고 집으로 행했다.
“자! 한번 확인해봐라 싱겁인지? 벙겁인지? 있는지 찾아봐라!”
마당에 들어선 ‘순덕이’가 자신 차게 말했다. 쫍디 쫍은 마당과 마루 밑을 한 바퀴 돌아 보고나서 동자는 풀죽은 목소리로
“이상하다 분명히 이집에 간다고 했는데? 혹시 방안에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다.
“이 애가 점점 이상해지네! 혼자 사는 여자 방을 어디 함부로 들어간단 말이냐?”
질겁한 ‘순덕이’ 방문을 막아선다. 그리곤 동자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러나 동자는 ‘순덕이’의 손길을 뿌리치고 잽싸게 방안에 들어섰다. 두리번거리든 동자는 ‘싱겁이’가 보이지 않자 방바닥에 깔아둔 무명 이불에 눈길을 두었다. 꽤나 정갈한 이불이 불룩 솟아 있었다. 순덕이도 이상하다 싶었지만 동자의 손길이 더 빨랐다. 획~하고 이불이 들쳐지는 순간 동자가 움막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렸다.
“싱겁아! 응? 여기 있네요! 여기 이불속에 싱겁이를 숨겨 두었네요.”
놀란 것은 ‘순덕이’ 마찬가지 이였다. 언제 ‘싱겁이’이가 들어왔단 말인가? 그것도 혼자 사는 청상과부 이불속에 속옷 바람으로 숨어 있단 말인가? 말문이 막혀 멍하고 있는 ‘순덕이’에게 동자가 말을 건네 왔다.
“보세요. ‘싱겁이’가 여기 왔다는 것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혹시 결혼했어요? 그럼 헛소문이 아니네요. 동네 사람들에게 얼른 알려야지!”
동자가 서둘러서 방문을 뛰쳐나가려고 했다. ‘순덕이’이가 화급지게 동자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동자가 이번에는 순순히 잡혀준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한다. ‘순덕이’는 아무른 영문도 모른 채 우선 동자의 입부터 막아야 해다. 동자를 달래본다.
“동자야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현장을 목격한 동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이다.
“그럼 동네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나 봅시다. 동네 사람들! ‘싱겁이’이가 여기 있어요. 정말로 혼인했나 봐요.”
동네사람 들으라는 듯이 고래고래 외쳐댄다. 천지가 진동한다.
“정말 나는 모른다. 나와는 아무른 관계가 없는 일이다.”
‘순덕이’는 손으로 동자의 입을 틀어막고 애걸복걸 하소연 해본다.
“동자야 좀 조용히 해라! 동네사람 다 듣겠다. 무슨 소원이라도 다 들어 줄 것이니 조용히 좀해라!”
소원을 들어 준다는 말에 동자는 조금 수굿해지는 기미를 보였다.
“뭘 해줄 건데요? 그럼 맛있는 떡 3되만 해주세요.”
동자 녀석이 ‘싱겁이’ 찾느라고 ‘순덕이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배가 고팠든지 떡3되를 요구하는 것이다. ‘순덕이’는 마침 친정집에서 얻어온 찹쌀이 있는지라 급하게 콩을 복고 쌀을 찌서 절구에 쳐 인절미를 만들어서 동자에게 받쳐다.
“절대 비밀이다 절대 비밀이다.”
불안해하는 순덕이의 안절부절 배웅을 동자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아래 마을을 향하였다. 그리고는 작업에 들어갔다.
“안동어른! 안동어른! 뒷산 문동이인데요. 오늘저녁 아랫마을 ‘싱겁이’이 윗마을 ‘순덕이’한데 장가들었어요. 잔치 떡 여기에 가져다 놓았으니 나중에 잡사보세요.”
“영천 댁! 영천 댁! 뒷산 문동이인데요. 오늘저녁 아랫마을 ‘싱겁이’이 윗마을 ‘순덕이’한데 장가들었어요. 잔치 떡 여기에 가져다 놓았으니 나중에 잡사보세요.”
‘순덕이’ 와 약속과는 달리 동자는 아랫마을 윗마을을 가가호호 소리쳐 방문하여 인절미를 돌리고 다녔다. 어떤 집은 자다가 일어나서 나가보니 사립문기둥에 정말 떡이 떡하니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인가 보다? 싱겁이와 순덕이가 혼인을 해? 잘되었네.”
어떤 집은 아침에 일어나 대문을 열고 보니 대문간 설주에 인절미가 정말로 얌전히 올려 져 있었다.
“‘싱겁이’와 ‘순덕이’ 혼인을 해 잘 됐네! 급하긴 급했는가 보네! 떡쌀이 제대로 찌어지지 않았네!”
동네사람 모두들 잘되었다고 축하하고 아예 인정(認定)하고 있었다. 아랫마을 ‘순덕이’ 친정집에도 동자는 예외(例外)없이 돌렸다.
“순덕이 아버지! ‘순덕이 어머니! ‘순덕이’와 ‘싱겁이’ 오늘 혼인했어요. 잔치 떡 대문간에 두고 갑니다. 나중에 잡수세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누가 장난을 치는지 이놈을 잡히기만 해봐라! 혼쭐을 내놓을 것이다.”
부모인지라 다른 집과는 달랐다. ‘순덕이’ 친정집 부모는 혼자 사는 한 맺힌 자식일이라 즉각 반응하고 달려 나왔다. 그러나 동자는 이미 사라지고 대문간에는 떡만 덩그러니 얹혀 있었다. 없었다.
“아니 이 애가?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해.”
‘순덕이’부모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경쟁하듯 한걸음에 ‘순덕이’집으로 달려갔다. 대(竹)로 얽은 문살 틈사이로 방안에서 남녀 두 사람의 그림자가 불빛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순덕아! 순덕아! 문 열어라. 어서 문을 열어봐라!”
동네방네 소문낸다고 방방 뛰든 동자를 겨우 달래고 떼보내고 나서 이불속 속옷차림의 ‘싱겁이’와 이불속에 들어가기 된 사연을 자초지종 따지고 있는 와중에 친정집 부모님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왔으니 ‘순덕이’는 창피하고 겁부터 났다. 다행히 동자를 내보내고 동자가 다시 올까봐 사립문을 굳게 동여매어 두었기에 망정이지 부모님이 쉽게 사립문을 열고 들어와 들키게 되는 날이면 예삿일이 아니다. 두려움을 느낀 ‘순덕이’는 싱겁이를 설득해서 내보내고 내일 부모님에게 전후(前後)사정을 말씀드리기로 하고 방안의 호롱불을 확~ 입으로 불어서 꺼버렸다. 소낙비는 우선 피하고 보자는 심산(心算)이다.
“아니 이 애가?”
‘순덕이’ 아버지는 순덕이 어머니를 옷소매를 끌어당기면서 발길을 돌려버렸다. 순간 평생골칫덩어리가 해결되는 듯 가슴이 훅~하고 뚫려 내리는 기분이다. 첫날밤도 못 치루고 소박맞고 쫓겨 온 딸이 마음에 걸려있었는데 이제야 해결되는 기미였다. ‘싱겁이’정도면 재산이 없어서 그렇지 천성(天性)이 착하겠다! 사대육신(四大六身)이 멀쩡하겠다! 사윗감으로는 조금도 손색이 없어보였다. 다만 너무 웃음이 헤퍼서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는 것이 마음속으로는 좀 찝찝하기는 했으나 ‘순덕이’의 허물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약과(藥果)였다.
“고맙네! 싱겁이 고마워!”
‘순덕이’아버지의 속마음을 알아챈 ‘순덕이’어머니도 떨어지지 않는 발길이지만 얼른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새벽부터 동네 우물가는 동네 아낙들의 킥~ 킥~꺼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수다 판이 길게 널어졌다.
“어제 밤 싱겁이와 순덕이가 잔치했다며? 떡들은 다 얻어먹었나.”
“그래 집집마다 다 떡을 돌렸다 하드라!”
“그런데 잔치 떡 돌린 문동이는 누구고? 처음 보는 아이 든데”
“아따 그 아이 똑똑하되! 예쁘기는 어찌 그리 예쁘누?”
저마다 한마디씩 긴 수다들을 널어놓는다. 한편으로는 물지게를 지고 물 길으러 우물가를 찾아든 동네 머슴들은 보쌈기회를 놓치다든 듯 죄 없는 물동이를 발로 차고 아쉬운 한숨만 푹! 푹! 내쉬면서 우물을 점유한 아낙들의 수다에 밀려나 한쪽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날개 없는 소문은 삽시간에 아랫마을과 윗마을을 점령하더니 ‘싱겁이’와 ‘순덕이’의 혼인잔치를 기정사실화 시켜버렸다. ‘싱겁이’의 일장춘몽이 현실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온 동네방네 다 퍼져버린 ‘싱겁이’와 ‘순덕이’의 혼사소문에 동네 사람들이 제일처럼 너도 나도 발 벗고 나서서 이튿날 백년해로의 정식가약(佳約)을 맺어 주었다. 그리고 ‘싱겁이’와 ‘순덕이’의 백년해로를 맺어준 ‘싱겁이’꿈속의 동자를 찾아 나섰다. 동자가 말하기를 자신을 뒷산 문동(文童)이라고 있다. 뒷산 토함산에도 집도 절도 없는데 도대체가 어디에 산단 말인가? 다음날 마을 사람들을 총동원하여 뒷산 토함산에 올라 사사치 찾아봤으나 허사였다. 허탕을 친 마을 사람들은 ‘싱겁이’의 꿈을 단서로 찾아보기로 했다. 자초지종 꿈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싱겁이’가 꿈속에서 동자를 만났던 둔덕주변을 살펴봤다. 큰 바위산이 무너졌는지 수많은 바위덩어리들이 군집(群集)을 이루고 있었다. 꽤나 오래된 바위인지 파란이끼에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의 손으로 다듬어 진 것처럼 예사롭지 면모들을 갖추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이상하네! 어제 저녁 그 동자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몰려가보니 양쪽으로 머리를 묶어 올린 동자(童子)형상의 조각이 파란이끼 속에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헌데 동자의 손에는 어제 밤 ‘순덕이’이가 쳐준 인절미의 팥고물이 묻어있어 더욱 형상을 뚜렷이 하고 있었다. 그 바위조각은 10년 세월 점심때 마다 ‘싱겁이’가 고수레를 해오든 곳이다. 그렇다 그 바위의 조각상은 문수사리보살님 이였다. ‘싱겁이’는 10년 세월을 문수보살님에게 공양을 올린 것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싱겁이’의 10년 공양에 감응하여 문수보살님이 동자로 화현(化現)하시어 ‘싱겁이’에게 가피(加被)를 내려주신 것이다. 이를 우리는 꿈에서 받은 몽중(夢中)가피라고 한다. 또한 저녁에 문동으로 현신(現身)해서 베푼 현실(現實)가피라고 한다. 또한 착한마음 웃는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싱겁이’ 아니 이젠 ‘덕구(본명)’에게는 명훈가피력이 내리신 것이다. 참 문동(文童)은 문수동자(文殊童子)의 준말인데 이때부터 경상도사람들을 보리(진리)문둥이 라고 불렀다한다. 별명의 어원(語源)이 되기도 한 것이다. ‘덕구’에게 가피를 준 문수보살조각상은 지금의 석굴암 문수보살상이라고 한다. 군집을 이루고 있든 바위군집들은 석굴암의 무너진 파편일지도 모른다.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성 건립된 석굴암은 우리 불교역사와 함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였는데 조선 말기에 와서 울산 병사 조순상(趙巡相)이 석굴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그 이전에 파손된 적이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되기도 한다. 한일합방 후 일제는 1913~1915년에 걸쳐서 석굴암을 완전 해체 보수하면서 수많은 돌 조각상들을 남기고 폐기했다. 지금도 석굴암 주변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조각상들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양쪽으로 머리를 묶어 올린 동자상은 볼 수가 없다. 다만 석굴암 전실에서 사천왕이 서 있는 비도를 지나 원실(主室)의 오른쪽 두 번째 상을 문수보살로 보고 있다. 학설에 따라서는 관음상으로 보기도 하는데 화려한 십일면관세음상이 본존불 뒤에 모셔진 것으로 보아 문수보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체높이 248cm. 보살상 높이 202cm. 머리높이 37.6cm.크기 이다. 몸을 살짝 굴 안쪽으로 틀었고 늘씬한 몸매에 오른손을 들어 찻잔을 받들고 왼팔은 내리고 있는데 어깨에서 손등으로 이어지는 우아한 곡선미가 생동감을 높여준다. 갸름한 미인형 얼굴에 목걸이와 영락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얇은 천의로 감추어진 풍만한 몸매도 부드러움을 더해준다. 지혜의 상징 문수동자님을 친견하자! 문수보살님을 신앙하여 사바세계중생들을 구제해보자.
문수동자! 문수동자! 문수보살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