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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보문품 제6
若有女人 設欲求男 禮拜供養 觀世音菩薩 便生福德智慧之男, 設欲求女 便生端正有相之女 宿植德本 衆人 愛敬.
약유여인 설욕구남 예배공양 관세음보살 변생복덕지혜지남, 설욕구녀 변생단정유상지녀 숙식덕본 중인 애경.
無盡意, 觀世音普薩 有如是力.
무진의, 관세음보살 유여시력.
若有衆生 恭敬禮拜 觀世音普薩 福不唐損 是故 衆生 皆應受持 觀世音菩薩名號.
약유중생 공경예배 관세음보살 복불당연 시고 중생 개응수지 관세음보살명호.
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을 낳기 위하여 관세음보살께 예배공양하면 문득 복덕과 지혜를 갖춘 훌륭한 아들을 낳을 것이며, 만일 딸 낳기를 원하면 단정하고 용모를 갖춘 딸을 낳을 것인데 전생에 덕을 심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무진의야, 관세음보살은 이와 같은 힘이 있느니라.
또 어떤 중생이 관세음보살에게 공경하고 예배하면 그 복은 헛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중생은 모름지기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닐지니라.
*웅봉법사 해설*
관세음보살님의 위대한 위신력이 다시 한번 강조되는 단원이다.
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을 낳기 위하여 관세음보살께 예배공양하면 문득 복덕과 지혜를 갖춘 훌륭한 아들을 낳을 것이며! 복덕과 지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이다.
귀의(歸依)불(佛)양족존(兩足尊)삼귀의례의 첫 게송으로 복덕과 지혜를 두루 갖춘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말이다.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칭송하면 내 자신이 지혜와 복덕이 갖추어지고 끝내는 부처님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만일 딸 낳기를 원하면 단정하고 용모를 갖춘 딸을 낳을 것인데!
이 게송역시 귀에 익은 게송이다.
귀의법(歸依法)이욕존(離慾尊)삼귀의례의 두 번째 게송이다.
욕망(慾望)을 버리면 진리(法)가 눈앞에 나타나 보인다는 것이다.
진리를 볼 줄 알고 진리가 확연히 보이면 삶이 청정해지고 용모가 단정해 진다는 뜻이다.
옛말에 수상(手相)손금이 좋으면 잘산다고 한다.
그러나 수상이 제아무리 좋아도 복상(腹相)이 좋은 것보다는 못산다고 한다.
배(腹)상(相)이 두루뭉술하게 잘생겨야 식복(食福)이 있어 잘산다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복상이 제아무리 좋아도 배상(背相)좋은 것보다는 못산다고 한다.
등(背)이 엉거주춤하고 어께 죽지가 축 처져있으면 기(氣)가 빠져 못산다는 것이다.
등(背)을 곧추세우고 어께를 활짝 펴고 당당한 사람이 잘산다는 것이다.
또 배(背)상(相)이 제아무리 잘생겨도 심상(心相)이 잘 생긴 사람을 당할 수가 없단다.
사람은 심상이 곱고 잘 생겨야 한다. 심상이 좋으면 얼굴모습이 변한다.
심상은 얼굴에 나타난다. 얼굴은 얼꼴의 변형된 말로 순수한 우리말이다.
얼굴의 원래 어원(語原)은 얼꼴이다. 얼꼴은 얼(心)모습(형상)이다.
심상(心相)이 바꾸면 얼굴이 바뀌다.
얼굴이 맑고 깨끗하고 온화한 자비의 모습으로 바뀐다. 얼굴이 바뀌면 배(背)상이 바뀐다.
배상이 바뀌면 복(腹)상도 바뀐다. 복상이 바뀌면 수(手)상도 바뀐다.
용모가 단정해지고 밝고 깨끗하고 복과지혜를 겸비한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을 일심으로 칭송하고 예배하고 공경하면 욕망을 떠난 진리(法)를 증득하고 부처님을 이루리라는 깊은 뜻의 가르침이다.
전생에 덕을 심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귀의승(歸依僧) 중중(衆中)존(尊)이다. 이 게송역시 삼귀의례에 등장하는 게송이다.
중생들의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이를 부처님께서는 상인상관의 관계라고 설하셨다.
더욱 인간을 사회적동물이라고 표현들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덕을 심어면 복을 받는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공경을 한 몸에 다 받을 것이다.
평범한 진리이다.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덕을 심는 기본마음이다.
이 기본마음을 불교에서는 감사(感謝)보다는 덕분(德分)이라고 표현한다.
덕(德)을 서로 서로 나누어(分) 가지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슬픔을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을 나누면 두 배로 늘어난다.” 고 설(說)하셨다.
자비(慈悲)희사(喜捨)를 덕분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근래 들어 기독교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감사라는 말에 묻혀 ‘덕분입니다’ 라는 말은 사라져가는 말이 되어 버렸다.
“덕분입니다.” 서로 서로 양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중생들의 이상향인 불국정토이다.
전생에 복덕을 심었으므로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관세음보살의 대자비의 가르침이다.
관음신앙에서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의 득남(得男)득녀(得女)의 내용을 직설(直說)하기도 한다.
때문에 관세음보살님은 자식 없는 중생에게 자식을 점지해주는 보살님으로 통하기도 한다,
여기서 관세음보살님과 득남(得男)에 관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신라 말 천성(天成)년간에 최은성(崔殷誠)이라는 불교신자가 있었다.
늦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여 안타까움 속에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 찾아온 한 스님을 만나 자식을 구하려하면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라는 법문을 듣고 관음신앙에 첫눈을 떴다. 그는 아내와 함께 신라의 서울 서라벌(경주)남산에 있는 중생사(衆生寺)관세음보살상 앞에 나아가 대를 이를 아들을 점지해 주십사하고 지극정성을 다해가며 백일기도를 올렸다.부부의 간절한 기도는 관세음보살님께서 감응(感應)을 일으켜 기도의 응답이 왔다. 백일기도를 마치는 회향 전날 밤, 부부는 똑같이 신비한 꿈을 꾸었다.
새하얀 옷을 입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백의관세음보살님이 귀여운 옥동자를 안겨 주는 것이었다. 부부는 감격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옥동자를 받아 안으며 백의관세음보살님께 감사의 절을 올렸다. 신비한 꿈을 꾼 그날부터 최은성의 아내는 태기가 있었고 드디어 소원하든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지 채석달이 못되어 백제의 견훤(甄萱)이 대군을 이끌고 서라벌에 쳐 들어왔다. 성안은 난리를 당하여 모든 사람들이 백제군의 무자비한 창칼을 피하여 피난가기에 급급하여 제정신이 아니었다. 최은성도 아이를 안고 피난길에 나섰다. 피난길에서 아이의 엄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혼자 아이를 안고 적군을 피해 달아나던 그는 중생사에 뛰어 들어 어린애를 안고 관세음보살상 앞에 울며 절하면서 이렇게 간원(懇願)의 말을 하였다.
“대자대비 하옵신 관세음보살님! 지금 서라벌은 적군의 무서운 창칼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피난을 떠나야 하는데 어린 것을 적병의 창칼에 살릴 수 있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 아이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점지하여 주신 자식이므로 관세음보살님이 살려주실 것 같아 데려 왔사오니 후일 저희 부자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가호하여 주시옵소서!…” 최은성은 울면서 절을 올리고 아이를 강보에 싼 채로 관세음보살살상 앞의 불탁(佛卓)속에 넣고는 애통한 심정으로 적군을 피해 피난길에 나섰다. 그 후, 반달이 지난 뒤에 적군은 물러났다.
최은성은 구사일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다행히 살아서 돌아오는데 오직 아이의 생사(生死) 여부의 생각 때문에 안절부절 한걸음에 중생사로 달려왔다.
아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불탁을 살펴보는데 아아......기적이 일어났다.
관세음보살상이 앉아 있는 불탁 위에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들이 바동거리며 건강히 놀고 있지 않는가. 아이는 포동포동 살이 찌고 입에서는 젖 냄새가 물씬 풍겨오기조차 했다.아아, 관세음보살님!…. 최은성 아이를 안고 꿈만 같은 현실에 너무도 감격하여 울음을 터뜨리며 관세음보살상 앞에 무수히 절을 올리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최은성이 자식을 안고 감격에 흐느낄 때, 홀연히 법당 입구 쪽에 기품 있어 보이는 고운 젊은 부인이 나타나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히 미소 지었다. 그녀는 최은성의 아이와 비슷한 아이를 기르는 사대부 집의 부인으로 피난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알 길이 없게 되고 홀로 아이를 안고 중생사 앞을 지나다가 자력(磁力)에 이끌리듯 관세음보살상 앞에 서게 되었다.
부인은 자신의 아이를 법당 바닥에 놓고 관세음보살상에 절을 하면서 기도 하는데 불탁 속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부인은 홀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안아들고 관세음보살상을 우러러보았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상은 대자대비의 미소 속에서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불자여, 내가 적군의 화를 피하게 해 줄 터이니 중생사에 머무르면서 아이에게 젖을 주고 돌보아 주어라." 그날의 최은성의 아들의 이름은 최승로(崔承魯)이고 훗날 벼슬이 정광(正匡)에 까지 올라 나라의 동량이 되었다. 최승로는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관세음보살님의 대자 대비한 영험에 인연한기적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나서 일평생 관음신앙과 함께 고해 대중에게 대자대비를 실천하였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無盡意, 若有人 受持 六十二億恒河沙 菩薩名字,
무진의, 약유인 수지 육십이억항하사 보살명자,
復盡形 供養飮食依服臥具醫藥 於汝意云何. 是善男子善女人 功德 多不”
부진형 공양음식의복와구의약 어여의운하. 시선남자선녀인 공덕 다부”
無盡意言. “甚多 世尊”
무진의언. “심다 세존
”佛言. “若復有人 受持觀世音菩薩名號 乃至 一時 禮拜供養 是二人 福 正等無異 於百千萬億劫 不可窮盡.
불언. “약부유인 수지관세음보살명호 내지 일념 예배공양 시이인 복 정등무이 어백천만억겁 불가궁진.
無盡意, 受持觀世音菩薩名號 得如是無量無邊福德之利.”
무진의, 수지관세음보살명호 득여시무량무변복덕지리.”
무진의야, 또 어떤 사람이 육십이억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보살의 이름을 지니고,
또 그 목숨이 마치도록 음식과 의복과 침구와 의약으로 공양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선녀인의 공덕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느냐?”
무진의 보살이 말했습니다. “아주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고 단 한때라도 공양하였다면 이 두 사람의 복은 꼭 같아 다름이 없어서 백천만억겁에 이르도록 다함이 없을 것이다.
무진의야,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면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없는 복덕의 이익을 얻느니라.”
*웅봉법사 해석*
기도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관경(觀經) 염불(念佛) 주력(呪力) 사경(寫經) 독경(讀經) 등 이다.
불교에는 신앙방법도 다양하고 신앙의 대상도 엄청나고 많이도 등장한다.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데 깨달음의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모두가 다 부처님이 초기불교시절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서 설법하신 대기법문이시다.
어지간한 범부들은 화엄경 법화경등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부처님의 명호(名號)와 그 숫자를 제대로 다 기억할 수가 없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비롯해서 엄청난 보살님들이 등장한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신장님들도 그 수를 헤아릴 방법이 없다. 법화경에 등장하는 천신(天神), 해신(海神), 강신(江神). 산신(山神), 용왕(龍王)신(神)등 신(神)들도 끝도 없고 가도 없다.
“항하사 모래처럼 많은 62억의 불(佛)보살님의 이름을 칭명하고 목숨을 걸어놓고 그 목숨이 다 할 때 까지 음식과 의복과 와구(요와 이불 등)와 의약으로 공경과 예배와 공양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물음은 62억의 수많은 불보살님께 이 생명 다하도록 예배와 공양을 드리고 기도를 올린다면 그 기도공덕의 크기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부처님의 질문에 무진의 보살은 감격하여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라고 말씀을 올렸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있어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고 생각하며 내지 일시라도 예배공양하면 이 이 두 사람의 복이 꼭 같고 다름이 없어서 저 백천만억 겁에 그 복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가지면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이 없는 복덕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느니라.”
왜? 부처님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생각하며 한때라도 예배공양하면 두 사람의 복이 똑같고 다름이 없다고 설하셨을까? 왜? 백천만겁토록 그 복이 다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을까?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비 때문일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대자대비의 화신(化身)이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비는 모든 중생들의 선업을 이끌어내는 근원(根源)이 되기 때문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 모든 성인(聖人)들의 가르침은 자비를 근원으로 하고 있다.
요즘세상은 분열과 갈등의 세상이라고들 표현한다.
고부(姑婦)간의 갈등, 부자(父子)간의 갈등,
모녀(母女)간의 갈등, 부부(夫婦)간의 갈등, 세대(世代)간의 갈등, 지역(地域)간의............... 갈등 아닌 것이 없다. 모든 단어에 갈등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말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한 생각 되돌려 생각해 보라! 세상만사 인연화합의 결과임을 생각해 보자!
한번쯤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결과임을 깨달고 살펴보자!
나 같은 시어머니를 안 만나고 인자한 시어머니를 만났다면?
나 같은 부모를 안 만나고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났다면?
나 같은 남편(아내)를 안 만나고 좀 더 능력 있는 남편(아내)을 만났다면?
고부갈등도 없었을 것이고 부자(父子)갈등 모녀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세대갈등 지역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결론은 모두가 내 탓이라는 말이다.”내 탓으로 시작되는 부처님의 가르침!
짠! 하는 마음이다. 찡하는 마음이다. 남의 탓으로 돌고 남을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을 안 만났더라면!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로 하는 삶이 필요로 할 것이다.
짠! 하는 마음은 모든 부처님의 불설(佛說)의 근본(根本)이자, 대자대비의 근원(根源)이다.
찡하는 마음은 관세음보살님이 이 사바세계에 나투신 중생구제를 위한 불국정토건설의 근본이념이신 것이다. 우리모두 오늘도 짠! 하는 마음으로, 찡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나무 짠 보살마하살! 나무 찡 보살 마하살!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