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보문품 제5
若有衆生 多於淫欲 常念恭敬 觀世音菩薩 便得離慾.
약유중생 다어음욕 상념공경 관세음보살 변득이욕.
또 어떤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음욕을 여의게
된다.
若多瞋恚 常念恭敬 觀世音菩薩 便得離瞋 若多愚痴 常念恭敬 觀世音菩薩 便得離痴.
약다진에 상념공경 관세음보살 변득이욕 약다우치 상념공경 관세음보살 변득이치
만일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어리석음을 여의게
되느니라.
無盡意, 觀世音菩薩 有如是等大威神力 多所饒益, 是故 衆生 常應心念.
무진의, 관세음보살 유여시등대위신력 다소요익, 시고 중생 상응심념.
무진의야, 관세음보살이 이와 같은 큰 위신력이 있어서 이롭게 하는 일이 많으니, 그러므로 중생들은 항상 마음으로 생각할지니라.
*웅봉법사 해설*
관세음보살보문품 가운데 관세음보살의 위신력(威神力)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다.
무진의야, 관음보살마하살의 위신(威神)력이 이와 같이 훌륭하다.
어떤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음욕을 멀리하게 되고
또 성냄이 많더라도 관세음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그 마음에서 벗어나며,
또 어리석음이 많더라도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어리석음 여의느니라.
관세음보살의 이러한 위신력으로 이롭게 함이 많고 크니 중생들은 마땅히 한마음으로 생각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음욕, 성냄, 어리석음. 이건 보통 중생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탐욕(貪慾), 성냄(嗔), 어리석음(痴). 다시 말해서 삼독(三毒)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삼독심도 우리가 관세음을 항상 생각하고 염(念)하고 송(誦)하고 관세음보살과 같은
대자비심의 마음가짐으로 공경하게 되면 중생들은 삼독심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다.
삼독심 가운데서도 가장 치성(熾盛)하고 대표적인 것이 음욕(淫慾)이다.
음욕은 12인연법에서 애(愛)로 명명되기도 하는데 이성(異性)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갈애(渴愛)로 불리우기도하는 이성에 대한 그리움 갈애(渴愛)는 유정(有情)무정(無情)일체 중생들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욕구로 종족(種族)유지와 번식을 위한 기초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종족유지와 번식을 위한 중생들의 욕구는 삶의 원천(源泉)이자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일수록 강(强)해지는 욕구가 음욕이다. 가난한 가정일수록 대체로 자녀들이 많다.
뽑히고 짚 밝히고 천대받는 잡초가 생명력이 강(强)한 것으로도 증명되는 바이다.
우리나라 제사상에 오르는 대표적 어종인 조기만 해도 그렇다. 제주도 남서쪽바다에서 월동한 참조기는 봄이 되면 우리나라 서해안의 연평도와 칠산도를 찾아 산란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은 칠산도나 연평도의 조기파시는 명성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연평도에 도달하기전에 덜 자란 조기가 제주도 근해에서 무자비로 남획(濫獲)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덜 자란 조기들이 알(卵)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참(암)조기들은 성장하여 철산도나 연평도에 도달하면 몸길이가 30Cm이상이나 된다.
그러나 제주도 근해를 지날 무렵이면 20Cm에 불과한데 그 몸으로 산란을 하는 것이다.
종족번식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자 강열한 대표적 욕망인 음욕의 표출인 것이다.
인간이 이성에 대한 그리움! 갈애(渴愛)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 소설이 춘원 이광수선생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사연을 번역 각색한 ‘조신의 꿈’ 아주 대표적인 일화로 전해온다.
이왕이면 춘원선생이 각색하기 이전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원문(原文)을 찾아보자.
옛날 신라(新羅) 경주가 서울이었을 때 조정에서 세규사(世逵寺.지금의 흥교사興敎寺)본사(本寺)에 중(僧) 조신(調信)을 보내서 장원(莊園)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이 장원에 와서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좋아하고 아주 반했다.
여러 번 낙산사(洛山寺) 관음보살(觀音菩薩) 앞에 가서 남몰래 그 여인과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로부터 몇 해 동안에 그 여인에게는 이미 배필이 생겼다.
그는 또 불당(佛堂)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생각하는 마음에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꿈속에 갑자기 김씨 낭자(娘子)가 기쁜 낯빛을 하고 문으로 들어와 활짝 웃으면서,저는 일찍부터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 되어 마음속으로 사랑해서 잠시도 잊지 못했으나 부모의 명령에 못 이겨 억지로 딴 사람에게로 시집갔었습니다. 지금 내외(內外)가 되기를 원해서 온 것입니다." 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하며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와 사십여 년 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지붕조차도 없는 네 벽뿐이고 생명을 유지해나갈 초근목피의 음식마저도 끼니를 계속해 갈 수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마침내 꼴이 말이 아니어서 식솔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십 년 동안 초야(草野)로 두루 다니니 옷은 여러 조각 누더기로 갈기갈기 찢어져 몸도 제대로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침 명주(溟洲)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십오 세 되는 큰아이가 갑자기 굶어 죽어 통곡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羽曲懸.지금의 우현(羽懸)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다. 이제 내외는 늙고 병들고 쇠약해졌다. 게다가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십 세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픈 것을 부르짖으면서 앞에 와서 누웠으니 부모도 목이 메어 눈물을 몇 줄이고 흘렸다.
부인이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불쑥 말을 꺼집어내었다.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습니다.한 가지 음식이라도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옷 한 가지라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집을 나온 지 오십 여 년 동안에 정(情)은 맺어져 친밀해졌고 사랑도 굳게 얽혔으니 가위 두터운 인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와서는 쇠약한 병이 해마다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욱더 닥쳐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나 하찮은 음식조차도 빌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수많은 문전(門前)에 걸식하는 부끄러움은 산더미보다 더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해도 미처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사랑에 있어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젊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초(芝草)와 난초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 같을 뿐입니다.
이제 그대는 내가 있어서 누(累)가 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옛날 기쁘던 일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根尋)걱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뭇 새가 다 함께 굶어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조(鸞鳥)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순경(順境)일 때에는 친하고 역경(逆境)일 때에는 버리는 것이 인정(人情)상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가고 머무는 것이 사람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에는 운명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여기서 서로 헤어지도록 하십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 나누어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하니 여인이,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십시오."
이리하여 서로 작별하고 길을 떠나려 하는데 꿈에서 깨었다.
부질없는 한바탕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고 한다. 아침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졌고 망연히 세상일에 뜻이 없다.
괴롭게 살아가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한평생의 고생을 다 겪고 난 것과 같아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에 관음보살의 상(像)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다. 그는 돌아와서 해현령에 묻어둔 죽은 큰 아이를 파보니 그것은 바로 돌미륵(石彌勒)이다.
물로 씻어서 근처에 있는 절에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 장원을 맡은 책임을 내놓고 사재(私財)를 내서 정토사(淨土寺)를 세워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다. - 삼국유사 -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조신의 꿈”이야기로 인생사 무상(無常)함을 설(說)하고자 함이다.
중생들의 모든 욕망의 뿌리이자 근원(根源)인 종족유지의 음욕(淫慾)마저도 부처님의 가르침 불법(佛法)앞에서는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탐(貪)하고 성(嗔)내고 쌓아두고 모아두고 악착같이 살아봐도 모두가다 부질없고 어리석은 한 조각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하하..........깨고(깨달고)보면 꿈인 것을 그렇게 매달리다니! 하하하........
일심으로 불러보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