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임진각 망배단에서의 추모제로 스톤워크 코리아2007는 남한에서의 일정을 일단 끝맺었습니다. 원폭피해자협회합천지부 등 지역협력단체에서 올라오신 분들, 나눔의집과 태평양전쟁피해자유족회 광주지부에서 오신 할머님들이 자리를 더더욱 뜻깊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노동가수 최도은, 한국무용가 서정숙 선생님 덕분에 그야말로 수준급 추모제가 되었고요. 망배단 앞까지 수레를 끌고 올라온 일본 참가자들이 “끝났다! 해냈다!”면서 서로 얼싸안고 눈물 뿌리던 광경이 못내 잊혀지지 않네요. 따뜻함, 감격, 자랑스러움, 시원섭섭함 등이 하루 왼종일 벅차게 차올랐습니다.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한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는 물론이고요.
일본 참가자들은 DMZ를, 한국 참가자들은 통일전망대를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안국역 근처 한식당에서 늦도록 술판 벌였는데, 무사히 잘 마쳤다는 생각에 다들 흥건히 취해버렸습니다, 재미난 노래도 여럿 나왔고요. 초반 사무국일을 열심히 도와준 최소영님, 감동적인 다큐를 제작한 김환태님도 합석했습니다. ‘팔십팔세여서 팔팔하다’는 소리를 듣고 다니시는 광주 유족회의 이금주 회장님이 광주 출발식 당시 돌에 손 얹고 묵도올리는 순간 스물 셋 나이에 강제징용당해 헤어진 남편 얼굴을 보았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유창한 일본어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하셨습니다(첫번째 dvf 첨부파일). 슈게스님은 밥상 사이를 다니시면서 참석자 거의 전원에게 손수 술을 따라주셨고요. 같은 절에서 온 마키노, 스즈키 스님은 좌중 선동해서 슈게 쇼닝을 위한 노래를 불러제꼈습니다(두번째 dvf 첨부파일).
창신동 최목사님 교회 숙소에서 마지막 소회 돌아가며 말하는데, 감격, 감사, 서글픔, 희망, 투지가 교차했습니다. 유난히 아름답고 쾌활하고 노래, 영어 다 잘하는 아키코상은 중국에서 나고자랐는데 어른이 될 때가지 일본이 중국 인민에게 저지른 흉악한 범죄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노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계속 흐느끼면서 작은 목소리로 재빨리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어요, 맘이 아렸습니다(세번째 dvf 첨부파일).
이튿날 핵심 분자 몇만 강원도 춘천으로 출발했습니다. DMZ생명평화동산추진위의 정성헌 선생님이 계신 물안마을에서 한 이틀 쉬고 생태지평연구소 황호석 선생님 안내로 양구 등 DMZ 지역을 둘러보고 나서 금강산으로 넘어갈 계획입니다. 금강산에서 또 한 사흘 머물면서 평화제까지 마치고나면, 그러고 나면 스톤워크 코리아2007은 정말로 오와리(끝)입니다. 구비구비 강원도 산길을 고속버스로 넘어가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른 채 넋 잃고 자고 있는 일행들 뒤돌아보고 오죽하면 강 대표님과 제가 “이 양반들 지금 강제연행당하는 거”라는 농담을 다 했습니다.
물안마을에서 마을분들 만나 직접 떡도 치고 융숭한 식사 대접 받고는 해발 3백미터 산자락에 자리잡은 정 선생님 별장(소박한 통나무집, 흙벽돌집 두 채)으로 갔습니다. 별세계였어요, 자연은 정말이지 즐거운 휴식이었습니다. 낮에는 계곡 내려가 탁족하고 와서 맞은편 산에다 야호 외치고, 밤에는 질탕 마시며 노래 부르고 나서는 이토상하고 창밖 보면서 별자리 공부하고, 시시때때로 (배우고 익힌 것이 아니라) 찐 감자, 매운탕, 수박 먹고, 졸리면 부푼 배 떼굴떼굴 굴리며 자고,.. 대충 어떤 식의 휴식이었을지 짐작들하시겠지요?
유난히 생태, 평화를 전략적으로 적극 개발 중인 지역이기도 해서, 산장 내려오면 10년 넘게 무농약, 우렁이 등 유기농법 쓰는 밭들이 널려있었습니다. 나무 1평방 센치미터에 미생물이 15억 마리가 산다나요. 모구라(두더쥐), 미미즈(지렁이) 등이 창궐하고 이노시시(멧돼지)도 자주 출몰한다는 곳이었습니다. 구와노미(오디), 야마이치고(산딸기)는 지천에 널려있었고요, 보는 대로 달려들어 따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모여 첫인사 나누는 시간에 정 선생님이 그곳 소개를 길게 하셨습니다. DMZ, 해양갯벌 살리기, 아토피ㆍ에너지, 생태도시 이렇게 네 가지 프로그램을 운용 중인 지평연구소 소개에서부터 민관협력이 주로 민 주도로 잘 벌어지고 있는 강원도의 지역적 특수성, “할 말 다하면서 진심으로 도와주자”는 신념 아래 북 미사일 문제도 먼저 끄집어내고 그러고 있는 강원도청 남북교류사업 현황, 한반도비핵화가 아니라 “동북아비핵화”가 되어야 한다는 결의를 이끌어낸 작년 한일시민사회포럼, 330만개 마을 중 작년 소요만 8만 군데에서 난 중국 농촌사회의 실상 등, 내용도 다양했습니다. 일 년에 두 번쯤 같이 팜플렛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무연고사망자 등을 평화동산에 모시면 어떨까 하는 실천적인 제안도 두어 가지 곁들이셨고요. 65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으로 처음 감옥 갔다고 하셔서 제가 이토상도 그렇다고 하니까 그럼 당신하고 ‘빵잽이 동기’라며 재미있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은 강원도청에서 출발식 갖는 생명평화결사 순례팀에 합류하기 전, 정 선생님의 도청 옆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도청 남북교류사업팀의 이동춘 선생님도 다시 합석해주셨고요. 북한을 공무 때문에 내집 드나들듯 드나드신다 해서 배동록 선생님이 옆에서 애처로울 정도로 부러워해마지 않던 분이기도 하지요, 배 선생님은 한국 국적이라 그토록 가보고파도 못가보는 땅이니까요, 후쿠오카 조선가무단 일원인 따님 배유향씨는 갈 수 있지만요. 파주, 임진각에서부터 ‘분단’은 내내 물귀신처럼 일행 뒤를 쫒아다녔습니다.
구와노미를 보면 구와노미 노래가, 하마나스(해당화)를 보면 하마나스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게 만드는(네번째, 다섯번째 dvf 첨부파일) 저 자연은 ‘분단’이라는 곧 불어닥칠 폭풍 한가운데 하늘이 뚫어놓은 임시 거처에 불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