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트숨 후기를 나누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야할지 잘 모르겠다. 지난 7월, 처음 트숨에 참여할 때는 일정상 최근보다 여유가 있었고 내 안의 좀 더 깊은 나를 만나기 위해 한동안 나름대로 준비 기도를 하고 갔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만날지 모르지만 내가 만나게 될 것들에게 마음을 모으고 싶었다. 첫 마음은 어디가고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가능할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참석한 두 번째 트숨, 여유 없는 아쉬움 속에서 내어맡기고 시작하는 트숨과의 만남은 어떻게 전개될지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있었던 것 같다.
경황없이 참석하게 되었지만 3개월 만에 들어서는 트숨의 장,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울컥, 하는 마음이 올라오면서 이번 여정을 시작했다. 첫 날, 브리딩은 의식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 어린 시절, 아픈 어머니의 부재와의 만남과 화해로 시작되었다. 이튿날, 시터로서의 경험은 나 자신의 직관에 대해 자연스럽게 내어 맡기고 따라가며 신뢰를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이 경험은 상담을 이제 막 시작한 내가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양육과 돌봄‘이라는 화두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사흘이 되고 두 번째 브리더를 하는 날도 달리 간절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서 의식은 모르지만 무의식은 알고 있을 것이라 여기고 시작했다. 다만 노력한 것은 체력 때문에 짧아진 호흡을 좀 더 깊이, 할 수 있는 한 오래 쉬어보자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네팔의 히말라야 설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가운데 하나의 설산 봉우리에 내가 있다. 나는 예닐곱 살 정도 된 동자승이다. 가슴에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처음엔 엄마에 대한 슬픔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스승님을 보고 싶은 슬픔이다. 스승님은 내가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산에 계신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로 가야 할지 모른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탑돌이를 하고 있다. 마음속에서 ’거기서 이곳으로 바로 올 수 있는 길은 없다. 네가 있는 산을 내려가서 다시 여기로 올라와야 한다’는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더 암담해진다.
그때 처음 트숨에서 만났던 설산의 늑대 한 마리가 언제 올라왔는지 내 곁으로 와서 앉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늑대는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바라보던 늑대가 이제 가자는 듯이 앞장서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바위가 여기저기 솟은 좁은 비탈길이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눈앞에 넓디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풀밭이다. 초원 한 켠에 오두막이 보이고 거기에 어머니가 계신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음식을 내오셨다. 늑대와 나는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고 푸른 초원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노는 중이다. 동자승인 나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설산 사이로 메아리친다. 행복한 마음이 넘쳐난다. 이렇게 행복한 느낌을 실제로는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장면이 바뀌어, 나는 스승님의 설산 정상에 와 있다. 설산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스승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한다. 아릿한 연민이 솟아오른다. 힘겹게 삶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 자신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스승님, 하고 부른다. 하지만 스승님이 돌아보지 않으신다. 다시 스승님, 하고 부르는 순간, 내가 청년이 되어 있다. 경이로움에 가슴이 울컥 솟는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알게 된다. 다름 아닌 내가 바로 그 스승님이라는 사실을. 놀라면서도 왠지 알고 있었던듯한 느낌에 가슴이 다시 한번 울컥 솟는다.
이제 내가 스승님의 자리에 서서, 설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런데 그 많던 설산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펼쳐진다. 어느새 나도 바닷가에 서 있다. 수평선 끝에서 붉고 환한 아침 해가 떠오른다. 나는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불에 스치는 바람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다. 온 몸의 세포들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두 팔 벌린 손바닥에 둥글고 환한 빛이 있다. 두 손바닥의 빛이 양쪽에서 팔을 타고 올라와 가슴에서 만나 황금 심장이 된다. 황금심장에서 나오는 빛은 내 가슴에서 시작하여 사방으로 환하게 퍼져나간다. 나는 알게 된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이런 황금 심장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빛나는 황금심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두 번째 브리더의 경험은 오랫동안 ‘내가 누구인지’를 물어온 것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얻었다는 느낌이다. 20대 이후로 간간이 잊혀지기는 했으나 나름 진지하고 치열하게 놓지 못했던 화두,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비로소 어떤 응답을 받은 느낌이다. 나는 내가 찾아갈 무엇이 아니라 나는 그저 길을 묻는 사람이고 길을 찾는 사람이고 길을 가는 사람이다. 나는 머무른 적 없이 늘 여기 머무는 존재이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스승님의 얼굴을 결코 내 앞에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고, 그는 곧 나 자신이므로.
이제 겨우 두 번 경험한 트숨을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통해서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내면으로의 여행에 진정어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트숨이 그를 더 깊은 내면의 길로 안내해 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오랫동안 내 안에 있던 슬픔의 근원이 무엇인지 트숨을 통해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지 못한 슬픔이었다. 말로 설명되지 않고 감각으로는 보여지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야 했던 것이다. 그동안 내 삶의 다른 시간에 다양한 방법으로 풍경이 다른 길들을 걸어왔었다. 트숨이 그 여정을 하나로 모아주었다. ‘작은 나’가 ‘큰 나’를 만나서 내 안의 얼어붙은 설산들을 녹여내고 빛의 심장으로 변화되는 이 길에서, 나는 더 이상 나를 찾는 그리움으로 슬프지 않다. 이제 도처에 있는 황금심장을 가진 존재의 눈부심과 그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만으로 충분하다. ‘길 없는 길’ 위에서는 모가 나고 깨진 흔적이 역력한 황금심장일지라도도 그저 눈부실 뿐이다.
p.s: 트숨이 주는 귀한 인연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여정을 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고 큰 품으로 함께 해주신 몰라, 아리, 바리, 야, 진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트숨의 장에서 함께 공명하며 서로의 길을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애정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김해영 님, 심오한 종교영화를 본 듯한 소감시간이었는데 이렇게 후기에도 나눠주시니 고맙고 벅찬 느낌입니다. 함께 한 트숨자리는 제게도 큰 은총이었습니다....황금심장과 함께 언제 또 뵙기를 바랍니다! ^^
트숨의 여운이 잔잔하게 일상에 함께 하며 흘러갑니다.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머리로 아는, 존재에 대한 뿌리를 경험하니 머물러 바라보는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푸르디푸르던 후박나무 낙엽이 쌓이는 오후 입니다. 또 뵈러 가겠습니다.^^
환타지 소설처럼 아름답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의 오래된 화두를 푸셨군요.
우린 모두 황금심장을 가진 존재이며 그저 길을 묻고 길을 찾고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것.
기억하겠습니다.
해영샘 축하드려요~
당신과 함께여서 참 좋습니다.^^
_()_ 함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