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47보> - 갑자기 온 국제전화 한 통화
11월 초 늦가을, 교내의 불타는 단풍을 뒤로하고 드디어 출발시간이 다가왔다.
모범학생이 불량학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요 며칠간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고 우리만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동료학생들이 알까봐 가슴 졸이며 숨겨 왔다.
공부 열심히 하는 선배와 후배 학생들의 마음을 괜히 흔들어 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필요한 먹거리 준비에다가 옷가지를 챙기고, 여행코스를 도상으로 답사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래도 저녁까지 시간을 기다리려니 하루란 시간이 얼마나 긴지를 모를 지경이었다.
서안(西安)으로 가는 기차는 베이징서(西)역에서 출발하는 관계로 학교에서 한 시간 이상이나 걸리는 거리를 버스로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했다.
퇴근시간이라 차가 엄청 밀렸다.
베이징의 교통상황은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래의 출발시간보다 두 시간 이상이나 당겨서 출발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차는 많이 밀렸다.
버스 안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혹시 갈아타는 버스 정류장이라도 놓칠까봐 우리 네 명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일찍 출발한 관계로 예상 시간보다 일찌감치 베이징서역에 도착했다.
저녁은 먹고 출발하자며 기차역 구내 KFC 가게로 들어갔다.
이 KFC는 중국 여행에서 우리의 먹거리를 제일 간편하게 해결해 주는 장소였다.
KFC 음식은 먹을 때마다 속이 느글거리기는 하지만 기름이 범벅이 된 중국 음식보다는 속이 편한 축에 속했다.
이곳에서 리필되는 콜라를 몇 번이나 마셔가며 두어 시간을 보낸 후 마침내 서안행 밤기차에 올랐다.
(베이징 어언대 교정의 아름다운 단풍. 잊지 못 할 것이다.)
침대칸으로 이루어진 중국내 밤기차 여생은 떠날 때마다 나 같은 외국인에겐 가슴을 설레게 한다.
좁은 공간이지만 그 속엔 여행이란 낭만과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기대가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4명은 다행이도 아래위 층으로 이루어진 4인용 한 칸에 들어가게 되었다.
같이 온 박 여사와 그의 언니는 이러한 기차여행이 처음이라며 멋지다, 너무 좋다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고 있었다.
그 둘은 이번 학기에 중국으로 유학 온 관계로 중국에 대한 자유여행뿐만 아니라 침대칸을 이용한 기차여행은 처음이라며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중국에 대한 이러한 자유여행이 몇 번 있었다는 자신감으로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기차여행의 좋은 점과 안 좋은 점, 여행하면서 만났던 중국인에 대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와 유명관광지에 대한 소감 등을 자랑하면서...
그때였다.
한국으로부터 국제전화가 들려왔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주인공은 대구흥사단 임병욱 회장.
“지금 뭐하시는고? 공부하고 있는가?”
이 분은 내가 중국 유학 와서 공부만 하고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중간고사 기간에 동료학생들 몰래 도망 나와 여행하는 줄도 모르고...
“아, 회장님, 저는 지금 중간고사 기간인데 시험 안 보고 서안으로 도망가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래? 정말 부럽군. 나도 같이 떠나고 싶은데...”
“같이 가면 좋죠 뭐. 지금이라도 따라 붙으실래요? 한 일주일 정도 진시황이 잠들어 있는 서안, 용문석굴이 있는 낙양, 그리고 영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소림사가 있는 정주로 여행가고 있거든요.”
“장윤자 군도 같이 있남? 부럽다, 부러워!”
장윤자 군은 벗씨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흥사단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군’이라고 호칭을 한다.
“예, 장 군은 중국 들어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 장 군은 학교 등록 안 하고 저하고 여행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지금 열차 안이라니까 길게는 얘기 못 하겠고 내 얘기 잘 듣기나 해 봐!”
“예, 말씀하세요.”
(이 차를 타고 밤새 달리면 아침에 서안에 도착한다.)
내가 한국에서 온 전화를 받고 있으니 옆에 있는 벗씨는 귀를 쫑긋 세우고 있고, 맞은편에 앉아서 같이 얘기를 나누던 박 여사 등도 얘기를 중단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김지욱 군 말이야, 지금 바로 유학 그만 두고 귀국 좀 해야겠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자초지종은 말 못 하겠고, 빨리 한국으로 들어와서 대구흥사단 사무처 좀 맡아 줘야겠어. 얼마 안 있으면 사무처장 자리가 빌 것 같아서...”
“예? 무슨 그런 말씀을...? 사무처장 자리가 비다니요? 저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최소 3년 계획으로 중국 유학을 왔는데 이제 반밖에 안 지났는걸요. 그리고 중국어 공부는 진도가 도통 나가지를 않았어요.”
“지금 중국어가 중요한 게 아니고, 빨리 와서 흥사단을 살려야 한다니깐... 사무처가 비면 대구흥사단은 공백상태가 된다 이 말씀이야.”
“어이구, 그래도 그렇죠. 한국에 있는 단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중국에 유학 와 있는 제가 들어가야 한답니까?”
“지금 적임자가 김지욱 군밖에 더 있어? 모두가 각자 일을 하고 있어서 대구흥사단을 맡아서 책임질 사람이 없단 말이야.”
“그래도 그렇죠. 찾으면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이면 중국 있는 제가 가야 합니까?”
“하여튼 듣기만 해 봐. 단순하게 네가 생각나서 전화한 것은 아니고, 대구흥사단을 걱정하는 여러 단우님들과 협의한 결과 김 군을 불러야겠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야. 너도 갑자기 받은 전화라서 놀라겠지만 잘 새겨듣고 빨리 귀국하기를 바라네.”
“저는 절대로 안 됩니다. 좀 쉬고 싶어서 중국으로 유학 온 사람인데 다시 일하러 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자리에 맞는 적임자도 아닙니다.”
“적임자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하는 거고, 하여튼 그렇게 알고 이번 여행 끝나면 바로 귀국하기를 바란다네. 자세한 얘기는 여행 끝나고 다시 해 보세나. 일주일 뒤에 전화 드릴 테니 마지막 여행이나 잘 하게.”
“그게, 저...”
(같이 여행을 한 박 여사와 그의 언니, 4인용 2층 침대)
전화는 이미 끊겨 버렸다.
국제 전화로 하는 얘기라서 길게는 얘기를 하지 못 하고, 간단하게 회장님의 말씀만 듣고 끊어진 형국이 되어 버렸다.
옆에 앉아서 내 전화에 귀를 기울이던 벗씨와 박 여사 등은 갑자기 온 전화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기차는 철커덕 철커덕 거리면서 깜깜한 밤을 헤쳐서 서안으로 잘도 나아가고 있었다.
잠시 내 입만 빤히 쳐다보고 있던 벗씨가 입을 열었다.
“왜? 한국으로 들어오래?”
“응, 대구흥사단 사무처장 자리가 빌 것 같다고 빨리 들어오라는데?”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 나는 아직 중국말을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이제야 서서히 중국에 정이 들고 중국여행에 한창 재미가 들어가는 중인데 한국에 들어갈 수가 없지!”
내가 단호하게 말을 잘라 버리자 벗씨는 머쓱한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맞은편 박 여사가 분위기를 깨고 나섰다.
“일하러 오라고 하는 전화라면 무조건 가야 하는 것 아니에요? 불러 줄 때 가야지요? 저라면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그게, 글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심사숙고해서 평생의 소원 풀어보겠다고 이곳까지 유학 오게 되었는데...”
분위기는 이렇게 해서 엄숙한 모드로 바뀌어버렸다.
저녁 8시 20분 출발해서 한 시간쯤 신나게 달려왔나 싶었는데 갑자기 차분한 기운이 흐르고 말았다.
여행에 대한 신바람으로 들떠 있던 내 마음이 갑자기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위기를 반전시켜 보려고 바리바리 싸 온 간식거리를 꺼내 놓고 캔 맥주까지 돌렸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갈등으로 가득 차 있는 바람에 좀처럼 신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네 명은 밖을 드나들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깜깜한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기나긴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내일 여행은 재미있으려나?’
2011년 11월 7일
베이징에서 멋진욱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