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통신 48보> - 택시 기사와의 기분 나쁜 경험
밤을 달려 기차는 13시간 만에 서안역에 도착했다.
오전 9시 반경이었다. 중국은 어느 기차역 할 것 없이 역전 광장은 한없이 넓다.
이곳 역시 넓고도 넓었고 평일이었지만 광장에는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현지 가이드들은 팻말을 들고 자기 손님을 찾는 것은 기본이고, 화청지, 진시황릉, 병마용으로 가는 일반관광객을 모집하느라 시끌벅적했다.
이 모두를 관광하기로 한 우리는 그런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최대한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가이드들이 여기저기서 찾아와서 소매를 끌며 자기네 버스, 자기네 택시를 이용하라는 성가심에 서서히 이성은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화청지까지 얼맙니까?”
“30위안입니다.”
“에이, 관광버스는 많이 싼데···.”
“우리는 택시니까 당연히 더 비싸죠.”
우리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가격흥정에 재미 아닌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결국은 관광버스를 이용키로 하고 병마용행 버스 5306호를 찾기 위해 더듬거리며 1시간에 걸쳐 끈질기게 따라붙는 여행사 끄나풀들을 일일이 떼어내고 겨우 우리가 탈 버스를 찾아 차량에 올랐다.
버스비는 1인당 7위안(약 1,260원).
화청지는 중국 당나라 태종이 그의 18번째 아들 현종의 비인 양귀비를 아내로 맞아 겨울이면 이곳에서 함께 지내던 곳이라 한다.
즉, 따뜻한 온천이 나오는 화청지는 당태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속삭이던 곳.
그래서 그런지 예쁜 정원, 별장 같은 느낌이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하얀 양귀비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오가는 사람마다 젖가슴과 배를 만져대는 바람에 하얀 동상은 손때로 꼬질꼬질 묻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30여 분 양귀비 유적인 화청지를 감상하고는 이제 병마용으로 가야 하는 시간.
우리 네 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버스를 타러 나왔다.
그때 우리 앞에 갑자기 택시 한 대가 나타났다.
“10위안, 10위안!”
“네? 얼마요?”
“네 명이서 10위안!”
택시 기사의 자신 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우리는 의논을 모았다.
“우리 이것 탑시다. 버스는 1인당 3위안(약 540원)이니까 네 명이면 12위안(약 2,160원)이잖아요. 이게 훨씬 쌉니다, 싸!”
우리는 어찌 이런 횡재가 있느냐는 식으로 얼른 택시를 집어탔다.
그런데 웬걸. 5분가량 달리면 가는 거리를 택시는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느낀 우리였지만 남자란 핑계로 내가 나서야 했다.
“지금 어디로 갑니까?”
“에? 지금 옥공장 가는 길입니다.”
택시 기사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거길 왜 가요? 우리는 병마용 박물관 가기로 했잖아요?”
“아뇨, 그리로 가기 전에 반드시 옥공장 들러야 합니다. 시간도 10분밖에 안 걸려요.”
“싫어요. 우리는 시간 없어요. 그리고 옥공장도 관심 없어요.”
“아니, 버스비보다 싼 택시를 탔으면 당연히 거기 들러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 정도는 양보해야죠. 안 사도 좋으니까 반드시 들렀다 갑시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뒤로 여산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산에는 수천 년 동안 중국이 자랑하는 옥인 란티엔위(藍天玉)가 난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 모습에도 온 산이 옥을 캐느라 벌집 쑤셔 놓은 듯 파헤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거기서 난 옥을 가공해서 파는 옥공장을 택시 기사가 강제로 데려 가려는 수작이었다.
우리는 버텼다.
절대로 갈 수 없다고.
택시 기사는 드디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싼 택시를 탔으면 그 정도는 양보해야지, 그냥 박물관으로 가는 게 어디 있어요? 우리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겁이 덜컹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네 명이나 같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지만 이곳은 중국이므로 어떤 해코지를 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자존심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시간도 없고, 약속 위반이므로 바로 박물관으로 갑시다.”
“그럼, 택시비 10위안은 너무 싸니까 15위안 주세요!”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우리는 버스 타려고 했는데 당신이 10위안이라고 했잖아요? 절대로 그렇게는 못 합니다.”
“아니,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요? 네 명이나 택시 타고서 10위안만 주겠다니?”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여성 세 명은 겁이 났는지 5위안 더 주고 말자고 나를 구슬렸다.
하지만 난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절대로 더 줄 수 없다고 버티면서, 언성을 서로 높이다가 기어이 목적지로 유도하고 말았다.
황급하게 돈을 던져주다시피 하면서 그 악덕 택시를 벗어났다.
5m, 10m, 30m를 멀어지면서도 혹시나 자기네들끼리 무전이나 치면서 위해를 가할까봐 뒤돌아봤다가 잰걸음으로 달렸다가 하면서 박물관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첫날부터 택시 기사의 5위안 사기 때문에 멋진 병마용 박물관 관람은 엉망이 되고 있었다.
진시황 병마용은 중국통일 후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병사와 말을 흙으로 빚어 구워 대규모 호위병 군단을 만든 것인데, 진시황릉에서 북동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규모가 거대하고 병사들 하나하나 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머리 모양을 갖고 있어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힌다고 한다.
이 병마용은 1974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 이후 현재에도 계속 발굴이 진행 중인데, 700여 개의 실물 크기 병사와 100여 개가 넘는 전차, 40여 필의 말, 10만여 개의 병기가 발굴되었고, 대부분이 실제 무기인 병기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렇듯 역사성 면에서나, 규모면에서나, 예술성 면에서나 매우 웅장하고 정밀한 병마용 박물관을 관람하면서도 우리는 내내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간 중국인에 의한 사기사건, 강도사건 등을 너무나 많이 듣고 있던 터라 혹시 우리한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지 매우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메라가 향한 곳은 위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지만 내 눈은 혹시 불량한 중국인들이 우리들 뒤를 따라다니다가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닌지 경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너무나 멋진 병마용 박물관을 두 시간에 걸쳐 돌아보는 와중에 점차 이런 분위기가 느슨해지기는 했지만 박물관을 나와 진시황릉으로 가는 버스 승강장에서 다시 경계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혹 진시황릉을 돌아보면서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정말 값싸게 파는 석류장사와 흥정할 때도, 점심을 사 먹는 식당 안에서도, 버스를 타는 순간에도 그저 빨리 이곳 병마용과 진시황릉이 있는 도시를 벗어나고픈 욕구밖에 없었다.
서안 시내를 들어와 중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만두집에 들러서 피곤한 심신을 달래며 내일 일정을 논의하고 나서야 겨우 안심을 할 수 있었다.
2011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