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시작한지 올해로 꼭 만 17년이 된다
1990 년 3월 5일에 7년 동안을 준비하고 다지면서 기어히 가게를 오픈했다.
처음 이 일을 하겠다고 했더니 친정 아버지께서는 걱정이 되실텐데도 "그럼 해보아라 너는 무엇을 하던지 남보다 뛰어나게 잘 할것이다"하고 용기를 주셨다.
대개가 처음 이 일을( 다른 일도 마찬 가지이겠지만 ) 하려면 남의 집에서 종업원을 거쳐서 충분하게 요령을 배우고 그렇게 해서 가게를 오픈하고 홍보도 하고 경력이 쌓여가는 것일게다. 난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운다. 난 그 때도 지금처럼 한복에 거의 내 정신을 뺏기고 있을때였으니까...
검정도 , 그 촌스러운 꽃분홍도 ,또 물비취색도 어쩜 그렇게 이쁜지 도통 눈앞에 한복 원단이 아른거려서 헛소리를 할 정도다.
길을 가다가도 한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저 색상보다 꽃자주와 아이보리 색상이 아주 잘 어울릴 뻔했는데..
이 신부는 이런 색상의 저고리가 너무 잘 어울리겠다.
저 신랑은 이런 배색이 아주 썩 잘 맞겠다 등등 다 이런식이다.
얼굴이 아주 희고 깨끗한 신랑에게 아이보리가 어울릴것 같은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도 있는 법이다.
어느 신부는 은행색의 저고리가 아주 잘 맞고, 어느 신부는 옥색이 신기하리 만치 잘 어울린다.
어떤 어머님은 화려해야 하고 그래야만 어울리고, 어느 어머님은 자연색으로 옷을 지어야만 어울리는 분도 있다.
키가 작은 신부는 치마를 앞단을 길게 타서 나비를 달아주고, 성격이 아기자기 이쁜 신부님은 치마 폭마다 10 센티 미터씩 타서 매듭을 달아주고, 또 키가 너무 커서 아담한 멋이 없는 신부는 어우동치마를 만들고 고급스러운 손수를 말기에 넣는다. 그러면 시각적으로 키가 아담해 보인다.
키가 크다고 무조건 어우동이 다 맞는건 아니다.
또한 키가 작아도 어우동이 멋지게 맞는 신부님도 계시다.
고객과 얘기하고 어떤 옷으로 하겠다고 해 놓고도 생각을 한다.
몇번을 생각하고 배색을 맞춰보고도 영 마음에 안들면 다시 전화를 해서 다른 걸로 하시도록 권장한다.
그러는 나를 보고 어느분은 세상을 어렵게 산다고한다.
고객이 고르고 그걸로 하겠다고 했으면 그만이지 뭘 힘들게 또 다시 전화로 그러느냐고 한다.
만약에 그렇게 좀 쉽게 살았다면.. 그렇게 열정과 성의 없이 고객을 대했다면 ,오늘의 나는 결코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을 구상하고 그 옷이 만들어져서 눈앞에 나왔을 때,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들게 지어졌을 때, 고객이 입으셨을 때, 색상과 디자인이 만족스러울 때, 그 보람은 말로 어떻게 다 할 수있을까...
단체복을 했는데.. 단 한벌도 치마 기장이 짧거나 길거나 그렇지도 않았을 때,
오히려 난 가만 있는데.. 고객께서 옷이 참 이쁘다고 어쩜 이렇게 이쁘냐고 권해 주신것 하길 잘했다고 그러실 때, 옷을 배달하고 정성으로 차려주신 음식을 먹을 때 등등 말로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당신의 일처럼, 멀리 팔당에서 당신의 차비를 들여서 손님을 모셔 오시는 승연씨 어머님, 내가 하는 말은 어느 말이던지 그럼요,그럼요 사장님이 더 잘하시지요 하시는 충정로의 전경자님, 나의 말은 다 신용을 하시는 구파발 홍해화원 권사님, 감리교회의 사모님,말이 활기차고 성격이 싹싹한 이민숙씨, 갈현동 송현순씨의 어머님, 부천의 곽호연 어머님, 나를 위해서 늘 새벽제단을 쌓으시던 지금은 미국으로 가신 서정연 권사님, 혜정이, 최계월 형님, 대성사의 나영엄마, 내 친구 심재희, 조현숙, 일산의 최영자 권사님 ,선희씨 어머님이신 이기만 권사님, 정능 전춘자님, 한수연씨,이상순집사,박진희씨, 영광단추의 집사님 그리고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나를 위한 기도를 하시는 김순자 집사님 이분들의 은혜를 어찌 다 갚을지..
나를 믿어주시고 최고로 알아 주시는 이분들이 계셔서 나는 일 할맛이 난다.
더욱 노력하고 열심을 다해서 기대에 보답하는 아름다운 우리옷을 지어서 송은경의 우리옷을 누구든지 찾을 수 있게 오늘도 나는 공부하고 최선을 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