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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합창워크숍 서칭페스티벌(Searching Festival) 원문보기 글쓴이: 하찬송
여름특강-2012
화성학의 재발견
제1장 서론
1. 조화의 세계
화성학은 조화의 학문이다.
공자는 중용에서 조화의 도를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치우치지 않는 것이 균형의 섭리다. 그 점에서 <음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음양의 조화”야말로 동양사유의 바탕을 이루는 현명한 지혜 이다.
화성학은 음악을 이루는 음들 상호간의 조화를 중시한다.
지나친 어울림(완전협화)이나 안어울림(불협화) 모두 조화를 해칠 수 있다. 따라서 적당한 어울림(불완전협화)을 중용의 기준으로 삼는다.
수평으로 연결되는 선율음의 경우에도 두 음사이의 불협화 혹은 지나친 거리감(큰도약)은 조화를 해친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적당한 어울림의 관계를 계속한다고 조화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경우에 조화는커녕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게 할 것이다. 즉 지나친 어울림 역시 치우침이며 그로 인해서 중용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두 성부 사이에 완전한 어울림이 계속된는 경우(완전음정의 병진행) 이를 경계한다. 이는 특정 음들의 관계가 유난하게 돋보여 역시 조화를 해치기 때문이다.
2. 자연의 섭리
우주는 조화와 섭리의 세계다. 그렇지 않다면 혼란을 일으켜 자멸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주는 아름답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 역시 우주의 조화와 섭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능력은 본래 자연에서 배운 것이다. 따라서 예술이야말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수학자는 자연의 조화를 수(數)로 나타낸다.
음악가는 조화를 소리(音로) 표현한다.
일찍이 수학자들은 音(소리)이 지닌 조화를 수(數)로 표현했고, 또 두음 사이의 조화관계 역시 수의 비례로 나타냈다. 음악가들은 이 조화의 섭리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결과 아름다운 음악이야말로 바로 자연의 질서이자 조화의 표현이다.
음악을 떠나서 화성학과 비슷한 저술을 찾아보면 공자의 “중용(中庸)”을 들 수 있다. 중용이야말로 삶의 조화를 서술한 학문이다. 실제로 공자가 해설을 붙인 주역(周易) 64 괘(卦)의 조합 원리가 화성학 화음조합의 원리와 일치한다.
화성법이 체계화된 17-8세기에 라이프니츠(Leipniz)는 미적분학을, 뉴턴(Newton)은 고전역학을, 헤겔(Hegel)은 변증법을 완성했다. 라모(Rameau)가 화성학 이론을 발표한 시기(1722년)에 바하(J. S. Bach)는 48 평균율곡집을 완성했다. 이른 바 서구역사의 “위대한 시대” 라는 17세기에 화성학이 완성되었고 이제까지 갇혀있던 대위법 선형양식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비선형 양식으로의 문을 열었다. 이런 결과로 인류의 의식은 차원을 넘어 무한의 세계로 비약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고전주의의 찬란한 전성기를 맞는다.
3. 자연 배음열
빛을 나누어(분광기로) 분해하면 무지개 같이 무한한 종류의 색깔(스펙트럼)을 얻는다.
자연음(自然音) 역시 분해하면 일련의 수(數)로 나열되는 소리의 스펙트럼(자연배음열)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음렬을 통해서 두 음 사이의 조화관계를 수의 비례로 알 수 있다. 이 비례관계로 나타나는 소리의 조화관계가 화성의 원리이자 음악 창조의 비밀이다. 나아가 이 조화관계의 인식 기준은 전적으로 특정 문화가치에 따른다.
정리하면, 자연의 조화로부터 문화적 조화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곧 예술의 창조이다.
위의 악보는 기준음 C 에 파생되는 배음열 16위까지 표기한 것이다. C 음이 울리면 이러한 일련의 파생 음(배음)들도 함께 울린다.(실제는 소리가 미미해서 듣기 어렵다.)
이 음렬은 기본음의 정수배(1,2,3,4...) 진동으로 구성되는데, 이들 중 2배수 진동은 한 옥타브 높은 음, 3배수 진동은 완전5도, 5배수 진동은 장3도...등등에 해당된다. 이렇게 음 진동에 파생되는 일련의 부분음들을 배음열(Overtone series)이라고 부르며, 음 진동 수직 성분의 조화음열을 이룬다. 만약에 이런 파생음이 없다면 음이 지니는 고유한 색깔 뿐 아니라 음들 간의 조화로운 결합이 있을 수 없다.
배음열의 첫 음은 밑음으로 부터 한 옥타브 위의 음이고, 둘째 음은 그 보다 5도 위의 음이다. 예컨대 기준 음 C(도)에서 제2배음은 c(도), 제3배음은 g(쏠)가 된다. 이때에 <쏠> 음은 배음열의 근음과 이름이 다른 첫 음이 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쏠-도>의 관계가 화성음악에서 조성의 바탕을 이루며, 뿐 아니라 음악 끝에서 화음의
밑음이 항상 <솔-도>로 진행하여 <마침>을 주재하게 된다.
제2장 화성의 원리
<1>
음은 수직성분의 음향을 갖는다.
단선율에서도 수직음향의 변화가 계속된다.
성부가 둘이면 음향관계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함께 울리는 두음 사이 진동의 어울림 관계만 아니라 배음의 음향도 화음 인식에 함께 작용한다. 이 보다 성부가 더 많아지면 수직 수평의 조화관계가 좀 더 복잡해지고 어렵게 된다.
<2>
동시에 울리는 둘 이상의 음을 화음(chord)이라고 부른다.
둘 이상의 선율이 함께 진행할 때에 각각의 선율이 지니는 음의 수평관계와 함께 울리는 성부 사이의 수직관계의 조화가 음악을 만든다.
화성학은 구성하는 화음들 사이의 질서 체계를 통해서 조화를 구명하는 학문이다.
<3>
단순한 노래(선율)에 화음을 곁들이면 전체 음악을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성부가 많아질수록 화음은 음악 이해에 도움을 준다. 복선율(polyphony)음악에 비해서 화성음악(homophony)이 쉬운 것도 이런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4>
화음의 성질은 화음을 구성하는 음정들 모두가 만드는 음향 관계이다.
3화음은 3개의 음정, 7화음은 6개의 음정, 9화음은 12개 음정으로 구성된다. 이 구성음들이 지니는 어울림의 정도가 화음의 성질을 결정한다.
<5>
작품에 사용되는 음들을 체계적으로 배열하면 일련의 음계(scale)를 얻을 수 있다.
서양의 고전음악은 7음으로 구성되는 온음계(diatonic scale)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온음계의 7개 구성음을 규칙적으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순환관계를 얻을 수 있다.
첫째 5도순환 : 완전협화 관계에 의해서 강한 화성감(조성)을 갖는다.
둘째 3도순환 : 불완전협화 관계로 인해서 선율 화성 모두 안정감을 준다.
셋째 2도순환 : 불협화로 인해서 수직(화성)관계는 약하고 수평(선율)관계가 강하다.
<6>
화성은 음계 음들 사이의 수직관계 조합에대한 조화체계로 정의될 수 있다.
이 화음들과 으뜸음(I) 사이의 총체적 관계를 조성(tonality)이라고 부른다. 으뜸음과 음계음들의 관계를 도식하여 그 직능에 따라 이름을 붙여보면 다음과 같다.
<7>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조성이란 으뜸음과 가족관계의 두음(V, IV)과 친구관계의 두음(III,VI), 그리고 이웃에 사는 두음(II,VII) 모두 7음이 만드는 사회에 비유될 수 있다.
이 중에서 딸림음 V는 으뜸음 배음열의 첫 자식(제3배음)이다. 역으로 말하면 I는 IV음의 자식인 셈이다. 으뜸음에서 보면 부모와 자식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같다. 따라서 I가 조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세 화음 (I-IV-V)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구성화음이다.
<8>
음악구문에서 <시작>은 으뜸화음(I) <마침>은 <V-I> 화음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고전화성의 심층구조는 으뜸화음(I)과 딸림화음(V)의 양극성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여기서 으뜸화음이 주체기능(주어)이라면 딸림화음은 서술기능(동사)을 담당하고, 남은 화음들은 수식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II, IV, VI 화음은 주로 V를 수식하고, III, VII화음은 V의 보조기능으로 사용된다.
<9>
결론적으로 음악을 이루는 음 소재들은
일차적으로는 선율의 수평관계는 음계조직에 바탕을 주고 있으며,
이차적으로 화음의 수직관계는 조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모든 관계가 이루는 조화의 체계가 화성이다.
3장 화성구문의 예
[예1] (찬송가 3장)은 가장 간단한 화성구문의 전형이다.
첫 악절은 첫 단의 <1/2+6>소절로, 네 소절의 I화음과 세 소절의 V화음과 I도 종지로 구성된다. 즉 주어와 동사 만 있고 수직어가 없는 문장이다.
둘째악절은 VI와 V의 반종지 세소절과 끝 <3+1/2>소절의 I와 완전종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V를 수식하는 VI가 전제 구문의 유일한 수식어로 조성을 확고히 한다.
선율 동기에서 계속 반복되는 보조적 4-6화음에서 IV화음이 지닌 온화한 느낌을 은근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노래의 특징이 되고 있다.
[예2](찬송가6장)는 조금 더 구성이 복잡하다.
첫 악절은 [I-V-I-V-I]와 [IV-I] 주요3화음을 제대로 갖춘 구문이다. 이를 언어구문에 비교해본다면 [주어-동사] 사이에 [보어] 또는 [목적어]가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둘째악절에서 뒤의 제4소악절과 제5소악절은 제1소악절과 화성구조가 같으며, 또 후렴처럼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노래에서 리듬의 반복과 선율이 만드는 대칭구도를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노래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예3](찬송가2장)에는 앞의 두 예에서 보다 한결 복잡한 화성진행이 나타난다.
첫 악절에서 <1-2>소절과 <3-4>소절은 [I-V]와 [V-I]로 서로 짝을 이루는 듯 하다가 <5-6>소절에서 조가 E조로 조바뀜 하여 마친다.
둘째 악절 첫 네 소절과 같은데 오히려 첫 악절에서 일지 못했던 정상의 [IV] +[V-I]의 화음 구조를 만든다.
셋째 악절 마지막 <11-14>의 네 소절은 마치 소종결(codetta)처럼 유니즌으로 노래하는데 여기서 순환하는 3도(A-F#-D)가 [VI-IV]화음처럼 들려 종지 V화음의 수식어로 기능한다.
[예4](찬송가 1장)은 간결한 Choral 풍의 4악절 노래로 구성된다.
이 네 개 악절의 선율에는 상하로 연속되는 순차진행의 통앨된 선율동기들을 볼 수 있다.
이와는 대조되어 저음 선율은 4도 또는 3도 도약이 자주 사용된다. 특히 첫 악절 시작에서 베이스 [I-V]+[VI-III-VI]-[V-I]의 4도 규칙진행은 강한결속력을 갖는 기능진행의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제4악절 제3음에 나타나는 부속화음은 딸림조의 수식어로 본 조성으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예5]는 본격적인 Choral의 예로 J.S. Bach의 "Ach Gott und Herr, wie gross und schwer"를 제시했다.
전체는 6악절로 구성되었다. 이 노래의 선율은 4음 동기(Tetrachord)가 주도한다.
제1-2악절은 C장조에 기초한다. 그러나 첫 악절 종지는 V도조(G조)를 연상케 한다 둘째 악절 시작에 F조의 속7화음이 수식되어 C조로의 회귀를 돕는다.
제3악절은 정격 G장조 화성을 이루고 있다. 서로 반진행하는 선율이 인상적이다.
제4-5악절은 제1-2악절과 비슷하다. C장조로 돌아와 잠시 머물지만 제5악절에서 G장조로 종지한다. 제6악절의 화성구조는 종결답게 복잡하다. 여기서 잠시 a 단조를 거쳐 C장조로 회귀하여 끝맺는다. 선율 또한 각 성부에서 [4음+3음]동기로 진행하고 있다.
[예6](찬송가 325장)은 찬송가 중에서 비교적 상위의 화성구조를 갖는 예를 제시했다.
이 곡은 [aaba]의 이른바 2부 형식의 전형구조로, 제1,2,4악절은 비슷하고 특히 제2,4악절은 거의 같다. 제3악절만 다를 뿐 아니라 여시서 조가 세 번 바뀐다.
특히 첫 악절 13개의 화음 중에서 첫10개 화음의 베이스가 으뜸음 Eb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로 인해서 소프라노와 테너가 병행선율의 이중창이 인상적이다. 또 첫 악절 후반 테너에서 Ab조의 속7화음 Db음이 반음계로 진행하여 이 찬송 가사에 나타나는 “후회로운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 Db음은 제2, 4악절에서도 고정악상처럼 다시 회상된다.
제3악절은 후회로운 c단조에서 시작해서 상하성부가 서로 반진행 하는데, 이제껏 지속음에 갇혀있던 베이스가 마침내 족쇄에서 풀려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우리는 이 지속음 Eb음의 족쇄가 바로 “망설이는 내 마음의 갈등”이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마지막 제4악절은 제2절과 비슷하나 이제 평화를 찾는 마음을 좀 더 기대하는 듯 하다.
<닫는말>
이상 6개의 예의 화성구조와 화음분석을 통해서 부족하나마 화성구문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물론 이 제한된 시간에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화성이 지닌 문장, 문법적 역할과 화음의 성격 등에 관해서 끈임 없이 고찰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화성에 관한 인식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찬송가, 코랄, 등은 화성학의 모범답안이라고 부른다. 만약 조화로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바로 찬송가라면 당연 조화로운 섭리 화성의 모범으로 표현되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닐까?
그런 점에서 화성학은 단순한 학문은 아니다.
우주의 비밀이며 또한 신의 계시이기도 하다.
2012년 여름 특강 자료 : 작곡가 강준일
이 원고는 2012년 7월 합창워크숍 서칭페스티벌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