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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시간예술 인만큼 <시간의 공유>가 앙상블의 첫째 과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음악적 시간은 박자로 표시되고, 시간의 흐름은 템포로 표시되며, 리듬은 그 내부에서 살아 숨 쉬듯 생생하게 펼쳐져야 한다. 한편 박자는 연주자의 내적 시간의 지각력 없이는 인식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이 마치 공간처럼 펼쳐져 지각되면서 완벽히 이해될 수 없다면 성공적 앙상블을 기대하기 어렵다. 리듬은 바로 이 같은 시공간 인식의 좌표 내에서 비로소 완벽하게 펼쳐질 수 있다. 한편 템포는 대상의 인식 속도를 바꾸는 것일 뿐 시간 혹은 공간 자체를 변형시키는 것은 아니다. 경험 많은 반주자는 독주자가 어떻게 시간을 헤아려 가는지 쉽게 간파한다. 그러나 초보자일수록 시간의 공유는커녕 이중적 시간의 혼란 속에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상당한 수준의 독주자 혹은 반주자 중에도 이미 결정된 시간을 고집하며 어떤 타협도 허용하려들지 않는다. 반면에 연습마다 달라지는 무법자도 적지 않다. 시간 공유에서 가장 나쁜 예라면, 서로 자기만의 시간을 고집하거나 역으로 무조건 상대의 시간에 의존하는 두 가지 경우이다. (여기서 전혀 시간을 헤아릴 수 없는 반주자는 우리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하자.) 실제로 많은 독주자가 (특히 성악의 경우) 객관적 시간 디자인의 능력이 부족하여 무조건 반주자에게 의존하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맞춰주기를 고집한다. 그러다보니 흔히 말하는 “맞춰주는 반주자”가 인기를 끌며 마치 반주의 도사나 되는 양 대우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음악의 예술성은 이미 한계에 부딪친 꼴이 되었다. 엄격히 말해서 박자를 헤아릴 수 없는 연주자에게 훌륭한 반주자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며 역으로 아무리 훌륭한 반주자라도 시간개념이 없는 독주자에게는 그저 호사일 뿐이다.. |
2. 시간의 설정
음악의 시간은 박자로 규정된다.
인류가 시간을 의식한 것은 오랜 일이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이 점에서 Galileo에게 사의를 표해야 한다. 그로부터 시계라는 이기가 생겼고 그런 결과로 개개인이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17세기 이전 음악의 박자는 그 이후와 다르다. Beethoven은 Maelzel이 1816년에 발명한 Metronome에 열광했다. 이후로 음악의 박자, 템포의 개념이 한층 구체화 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의 박자 개념이 덩달아서 진전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수학이 발전되었다 우리 모두 수학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같다.
박자는 음악시간의 객관적 설정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박자 인식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얼마나 객관 타당한 지각력을 갖추는 가는 전적으로 연습과 훈련에 달렸다. 다시 말해서 시간인식은 지각력에 비례한다는 뜻이다. 또 주지하듯이 지각력은 훈련 프로그람으로 입력된 software의 결과물 이다. 결론적으로, 음악시간과 박자의 인식은 학습에 의해서 습득되고 향상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오묘한 우주시간 속에 살고 있다. 매일 꼭 같이 반복되는 시간의 주기를 경험한다. 따라서 우리 신체기능은 시간 주기에 정확이 반응하며 정작 여러분의 세포는 여러분 보다 더 시간에 대해서 똑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인식에 대한 우리의 혼란은 육체와 정신의 혼동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하면 시간 측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제3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바로크 시대에서 시간 측정은 인체의 맥박 수에 기준을 두었다. 실제로 J.S.Bach의 기악곡 대부분은 M.M=(60-70) 혹은 이의 배수, 혹은 3배수(또는 약수)를 기준박자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평상적인 맥박을 기준으로 시간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한편, 춤곡의 경우 몸동작, 발동작(스텝)을 박의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이런 예는 Suite, 혹은 Menuet 같은 춤곡, Chamber sonata, 등에서 볼 수 있다.
Mozart는 어려서부터 역마차를 타고 연주여행을 했기에 그의 음악은 전시대보다 한결 빨라졌다고 말 한다. 실제로 19세기 중반에는 기차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좀 더 빠른 속도에 적응하게 되었고, 오늘 날에는 음속에 준하는 비행기 속도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점차 속도와 시간 인식이 하나 되는 곳을 향해 나아간다. 마침내 “공간이 곧 시간이다”라는 천체물리학자들의 주장을 경험 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하 간에 박자만 가지고 시간을 완전히 측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박(beat)을 측정하려면 이를 헤아리는 맥동(pulse)이 있어야 한다. pulse는 앞서 말 한 우리 신체에 내장된 시간측정 기능을 가리킨다. pulse를 경험하기 위해서 눈을 감고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pulse는 멈추듯 고요히 흐르고 있어 객관적으로(명상하듯) 바라보듯 들어야 한다. 익숙해지면 부단히 흐르는 pulse의 흐름을 언제나 자각하게 된다.
pulse는 beat를 약수로 나누거나 혹은 배수로 곱해서 헤아린다.
<실험 실습 : 1>
먼저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pulseㅡ헤아리기를 연습해보자!
이때 메트로놈이 들려주는 beat(박)와 beat 사이를 pulse로 나누거나 혹은 배수로 엮어 헤아려 보아야 한다. 다음에 실제 연주음반을 들으면서 박을 pulse로 헤아려 보라. 물론 실제 연주에서는 박이 메트로놈처럼 정확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3. 박자(Time Meter)
박자는 박을 헤아려 시간을 측정하는 방편이다. 그러므로 박자는 음악이 아니다. 박자는 가상적 장치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박자는 기본적으로 박을 2개, 또는 3개씩 묶어서 헤아린다.
2단위 박자 : 2/2, 2/4, 2/8, 2/16...
3단위 박자 : 3/2, 3/4, 3/8, 3/16...
2단위 박자를 두 개 합하여 4박자를 만든다. 또 3단위 박자를 두 개 합하여 6박자, 세 개 합하여 9박자, 네 개 합하여 12박자, 등등 겹박자를 만든다.
2단위 박자 : 4/2, 4/4, 4/8...
3단위 박자 : 6/4, 6/8, 9/8, 12/8....
그러나 단순히 몇 개 박을 엮으면 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박자가 하나의 단위로 조직되기 위해서는 구성 박 각각의 역할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박을 꼭 같게 인식한다면 박자가 필요 없다. 따라서 박을 다르게 인식하는 장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시계소리를 [똑, 똑, 똑...] 이 아니라 [똑딱, 똑딱, 똑딱....]으로 듣는 경우와 같다. 구별 지으면 헤아리기 쉽다는 지각 본능의 결과이다.
이런 뜻에서, 시작 박은 강 박(accent beat) 마침 박은 약 박(weak beat), 혹은 시작 박은 올림 박(up beat) 마침 박은 내림 박(down beat) 등으로 구별 한다. 3단위 박자는 시작과 마침 사이에 한 박이 추가되는데 또 다른 <약박>으로 정의한다. 아마도 둘째 박과 셋째 박 사이에 어떤 형태의 차별이 바람직 할 것이다.
<실험 실습 : 2>
마음 속으로 박자를 정한 후(2/4, 3/4, 4/4, 3/8, 6/8 등등) 이를 헤아려 보라.
박자가 하나의 조직을 갖도록 심상에 차별을 설정하고 이를 들어보라. 이 때에 첫 박은 강박이고 마침 박은 약박이어야 한다.
유의 할 점은, 박자 단위 안에서 박의 구별은 어디까지나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의도적으로 박의 구별을 밖으로 드러낸다면 이는 <박자> 아닌 <리듬>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서 박에 어떤 성격, 길이, 크기, 등을 부여한다면 이는 곧 리듬이 되고 만다.
4. 리듬(Rhythm)
리듬은 생동하는 소리의 운동이다.
리듬 인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며 결과로 박자의 도움 없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달리 말하면 명료한 리듬은 정밀한 시간 의식을 전제로 한다는 뜻이다. 음의 위치, 길이, 크기, 음량, 음질, 등을 분별하려면 객관적 시간의식을 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점 리듬은 [3:1]의 비례, 3연음은 2:1의 비례, 등 정확한 시간 분배의 의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박자의 도움 없이 정밀한 시간 배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리듬은 시간의 배분을 전제로 하지만, 음의 길이 외에도 위치, 높낮이, 크기, 음량, 등의 변화와도 긴밀히 연관된다. 그러나 우리의 주제를 음악의 시간요소에 국한하기 위해서 공간 요소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다.)
리듬 모드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동작, 발걸음, 춤에서 시작해서 점차 불규칙적인 동작, 표정, 언어, 등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측정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음악 리듬이 존재 가능하다. 이를 벗어나면 음악 리듬이 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들어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재하는 다양한 음악의 리듬은 그 나름의 생성과 양식화의 연대기적 출처를 갖고 있다.
일정한 박의 리듬에서 시작해서 이를 분할하고 결합해서 새로운 리듬으로 조직하는 연습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또는 특정 리듬모드(예컨대 부점이나 3연음)를 몸에 익힐 때까지 연습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리듬을 완전히 익혔다고 해서 시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실제 박자와 리듬 사이에는 해결되기 어려운 많은 난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경우 이러한 문제가 끝없이 제기될 수 있다. 우리의 논점은 바로 이 문제에 집중될 것이다.
<실험 실습 : 3>
한 박자 내에서 구성되는 부점, 3연음, 4연음, 등의 리듬을 입장단으로 노래해 보라.
다음 손바닥을 치면서 입으로 노래해 보라.
5. 박자 내에서 리듬의 배분
시간은 흘러갈 뿐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박자는 시간을 분할하지만 박 하나 하나가 크기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유클리드(Euclid)기하의 점과 같다. 모여 선을 이루지만 크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리듬은 실재하는 소리의 움직임으로 그 요소 하나하나가 크기를 갖고 존재한다. 예컨대, 4/4박자의 한 박은 4분-음표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정작 4분-음표 하나의 크기가 한 박자와 같을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해서 4분음은 한 박자 내에 존재해야 하며 따라서 한 박자 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실제 소리가 울리는 시간은 주어진 시간보다 적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너비 50cm의 상자에 너비 5cm의 비누 10개를 넣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실제 상자의 두께, 비누 각각의 포장지의 두께를 모두 포함하면 비누의 크기는 5cm보다 작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소리도 포장지처럼 개개의 껍질을 갖고 있다.
소리가 정지 상태에서 진동을 정상적으로 이루기까지 과정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리가 소멸하는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과정이 역으로 일어난다. 언어에서 이를 가리켜 “자음(Consonant)"라고 부른다. 실제 음악의 소리는 규칙 진동에 의한 "모음(Vowel)"에 해당한다. 소리의 시작과 끝은 불규칙 진동을 갖는 일종의 소음(즉 자음)현상이 나타난다.(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의 이론과 같다.)
악기의 소리도 이와 같다. 분리된 별개의 음(흔히 Detached note라고 부른다)은 음의 시작(attack)과 소멸(release)에서 비음악적 소음(Noise) 현상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서 실제 울리는 소리는 주어진 시간보다 적게된다.
결과로 모음을 기준으로 시간을 설정하면 항상 박자를 초과해서 연주될 것이다. 역으로 소리의 껍질을 예상해서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예를 들어 [M.M=60] 3/4박자 한 소절 안에 legato로 연결된 3개의 4분-음을 연주한다고 가정하면, 이론상으로 음 하나하나는 정확히 1초를 소요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울리는 소리는 1초에 못 미친다. 특히 첫 박은 더 짧게 들리기 쉬운데, 그 이유는 시작 과정에서 더 많은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셋째 박이 불리한데 그 이유는 소멸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강박의 원리에 따라서 오리려 첫 박이 남은 약박 보다 짧아서는 안 된다. 남은 두 박이 같은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가정하여 첫 음이 울리는데 0.2초, 셋째 음이 소멸할 때 0.2초 소요한다면, 남은 시간은 2.6초가 되어 한 박에 분배되는 시간은 약 0.86초 배당된다. 만약 첫 박에 0.9초를 배분하면 남은 두 음은 0.85초 배당된다.
위의 예에서 4분-음 보다 작은 음을 사용하는 경우 분배율은 상대적으로 더 감소한다. 실제로 16분-음은 4분-음 하나의 1/4보다도 짧아야 한다.
만약에 연속되는 16분-음의 4연음, 또는 8분-음의 3연음의 경우 꼭 같은 길이를 배분하기 위해서 시작 음과 끝 음은 항상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어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때로 긴 음 또는 강박에 더 긴 시간을 할애하거나 혹은 더 많은 음량을 할애하는 방식은이른바 “Rubato"라고 부르는 예외적 분배율을 사용한다. 그런 이 경우에도 거시적 시간의 규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Rubato는 소절 안에서 배분을 조정하며, 때로는 악절 단위로 조정하기도 하는데, 약박들이 더 많은 시간을 강박에게 양보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실험 실습 : 4>
음악을 들으며(명연주 음반) 박자의 분배를 헤아려 보라. 눈으로 악보를 읽으며 마음 속으로 소절 내에서 음의 분배를 설정해 보라. 실제 연주가 이와 같게 되도록 시도해 보라.
6. 시간의 수식과 변형
느리게 연주하는 음악은 소리 사이에 음미하고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있다. 따라서 느린 곡은 보통 풍부한 정서와 감동을 가져온다. 상대적으로 빠른 곡은 생각 보다는 듣기에 바쁘다. 반면에 자극과 감각의 흥분을 경험한다. 때로 좀 더 확실하게 들려주기 위해서 느려지거나 또는 음을 연장하기도 한다. 혹은 점점 빨라져 자극과 흥분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속도는 시간 배열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반응하여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과 연관된다. 대화나 문장에서처럼 음악도 적절한 곳에서 잠시 숨 쉬고 넘어야 한다. 악절과 악절 사이, 혹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마침과 함께 보이지 않는 숨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음악의 시간은 시작과 마침에서 다르게 흘러야 한다. “시작은 시작처럼, 마침은 마침처럼” 느껴지도록 적절한 시간 배려가 요구된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에 엄밀하게 보면 “시간의 틈”이 존재한다. 소절과 소절, 악절과 악절 사이에 적절한 간격이 존재한다. 만약에 이러한 간격의 융통이 없다면 실제 연주와 컴퓨터 미디음악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다. 높은 고층빌딩의 건축에서 철빔 골조가 수평 수직의 균형을 보장하듯이 규모가 큰 Symphony, Sonata 같은 작품형식의 기초구조는 리듬의 강박(Accented beat)이 담당한다. 따라서 약박의 위치는 적당한 융통이 허용되는 반면에 강박의 위치는 불변이며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실제로 phrasing과 articulation의 기술은 약박의 위치조정을 뜻하며 이로 인해서 음악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관한 토론은 우리 논제를 넘는 것으로 생략 하겠다.)
7. 닫는 말
음악의 시간설정은 구조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는 본래 음악 작품의 시간이 구조적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음악의 리듬과 박자는 독립되면서 상호의존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작품의 규모가 커질수록 리듬의 역동성 없이 구조체 조직의 결속이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음정 박자를 정확하게”라는 우리의 슬로건은 단순히 기하학적 정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 한다. 시간 설정은 올바른 시간계획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 시간을 헤아리는 훈련, 둘째, 박자 조직을 의식하는 훈련, 셋째로, 박자 내에서 정확한 리듬 모드 익히기, 마지막으로 작품 전체를 통해 시간을 구조적으로 설정하는 능력을 터득해야 한다.
이 모든 기술이 바로 작품해석의 기초를 이룬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며, 시간 설정이 곧 음악작품 연주의 시작이며 완성이다.
자료출처:합창워크숍 서칭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