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경제학
경제 (經濟)【명사】【~하다|타동사】
1. 인간 생활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재화를 획득·이용하는 과정의 일체 활동《재화의 생산·교환·분배·소비는 모두 경제의 한 부분임》.
¶ 남북 간의 ∼ 교류를 증진시키다/ 현재는 ∼ 사정이 허락지 않는다.
2. 돈·재물을 적게 들이는 일.
3.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준말.
4. ‘경제학’의 준말.
경세―제민 (經世濟民)【명사】【~하다|자동사】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 [준말]경제(經濟).
경제―학 (經濟學)【명사】 경제 현상을 대상으로 생산·교환·분배의 법칙을 연구하는 사회 과학의 총칭. [준말]경제.
이상 민중국어사전에서..
굳이 선교경제학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선교활동에 관계된 재화관리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선교 목적 달성을 위한 재화의 조달, 전달, 소비의 과정, 그리고 그 결과...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눔에 있어서 선교의 첫째는 자금이요 둘째도 자금이요 셋째도 자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만큼 자금은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자금과 더불어, 혹은 그에 앞서서 어떤 것들이 또한 중요할까?
선교의 대사명이 아닐까?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들라는 예수님의 명령!
그 근저에는 세상과 그 안의 생명을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있을 것이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일 것이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의해 구원받았으며 또한 그 역사의 동참에 부름 받은 것이다.
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지상과제!
그 과제를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는 또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살기 위한 경제활동이 필요하며 섬기기 위한 자금조달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선교 경제학의 필요성일 것이다.
인생 3막을 바라보며 나는 선교에 투신했다.
선교활동을 위한 경제활동에도 어느 정도는 대책이 있어야 했다.
그 대책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조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렇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교라는 것은, 삶의 다른 모습들도 다 마찬가지이듯이 자체가 생물이며 자체가 진화한다.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계획에 강한 사람들이 있다.
계획했노라, 실천에 옮겼노라, 그리고 이뤘노라고 자신의 인생이나 사역에 대하여 장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솔직히 그러지 못했다.
선교에 앞서서, 내 인생과 사역에 막연한 바람이야 있었겠지만 구체적인 계획에 버금가는 꿈이 있었는지 싶었을 정도로 그저 그때그때의 현실에 따라 살지 않았나 싶다.
하긴 계획이 있었을지라도 지나고 보니 계획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결과가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만...
내 선교활동은 그렇게 그저 발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시작됐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아무리 앞날을 예상해도, 그리고 그에 관한 어떤 증거들이 눈에 보이는 듯해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나의 바람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자신에게, 혹은 남에게 속아서라도 삶이 살아지듯, 사역도 진행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을 뿐이다.
과연, 그랬다.
짧은 선교의 경험을 돌이켜보면서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장기적인 계획, 철저한 준비는 하지 못했지만 그때그때 나에게 보이는, 나에게 주어지는 상황에서 뭔가 배우고 나 자신이 변화 혹은 진화하기에 무디지 않았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달리는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저 현실에 충실할 뿐이다.
일단 사역은 몸으로 때우는 것이라 치고 잠시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자금조달에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가려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굳이 양자택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결국은 돈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사역을 따를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 두 가지가 언제나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네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플랙스탭에서 투바시티로 들어오던 과정이 그랬다.
플랙스탭에서는 그나마 취업의 기회가 있었다.
비록 저임금의 임시직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런 일들을 오랫동안 해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사지육신이 건강한 바에는 뛰어들 수 있는 직업전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구역 안에 있는 투바시티로의 이전은 일절의 취업 가능성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사역을 위하여 보호구역 안에서 이들과 함께 살아야겠거늘, 그렇게 해야 한다는 한 걸음은 보이지만 그 다음에 디딜 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 돌을 디뎠다.
불가능처럼 보이던 이사였지만 그 일념을 가지니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더라.
그래서 들어왔고 들어와 보니 밖에서 보이지 않던 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금조달의 길이 아니라 사역의 길들이다.
그동안 기도하고 강구하고 얘기하던 선교였는데 이곳에 막상 들어오니 이제는 궁리가 아니라 행동해야 하는 곳임을 알게 됐다.
취업의 기회는 끝났지만 생활비는 지속적으로 들 뿐 아니라 더하여 사역을 위한 경비의 필요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쯤해서 생각해본다.
취업의 기회가 없는 곳에서 사역을 하자니 선교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집안의 불문율, “민폐 끼치지 마라.”
나의 선교활동을 위한 자금조달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 건 아닌지...
공급해주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형편이야 이해가 되는 것이지만 금싸라기 Bloody Money를 나에게 공급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또한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선교활동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급하신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다.
과연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은 가짜 선교활동도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사역은 부르심이 시작이다.
그 뒤를 사역을 위한 적절한 훈련과 준비, 그리고 신앙공동체의 인정이 뒤따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본적인 사역의 조건을 갖추는 셈인데 그것도 외형적인 것일 뿐, 그 진정한 속내는 본인도 모를 수 있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아시는 일이다.
이것이 두려운 사실이다.
확신 없이 일에 뛰어들었느냐 나무랄 수 있겠지만 과연 그 확신이 진정한 확신인지, 자기중심적인 만용이거나 이기심인지 만의 하나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만용, 이기심, 개인적인 동기나 욕심인 경우가 쉽사리 눈에 뜨이기도 하고 그 폐해가 안팎으로 나타나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교 경제학.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하고 격려하고 보양하는 것.
그 가치를 어찌 거기에 소요되는 자원의 크기와 효율성으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큰 자원이 투입된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보다 귀한 것이 있겠는가!
문제는...
과연 그 자원들이 올바로 투자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나의 삶과 사역이 과연 내가 사용하는 자원에 부끄럽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자원 결핍으로 인한 사역, 혹은 삶의 장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두려움은 자원 결핍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과 사역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느냐에 관한 나 자신의 확신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비록 선교활동을 한다고 안팎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 스스로 그 이상의 의심을 갖지 않아도 될 만큼 완벽하고 자신만만하게 큰소리 칠 수 있는 자신감의 결여가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내가 사는 것이, 내가 도모하는 나의 섬김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인가를...
자금조달과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선교사의 부담감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