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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증언판 : 탈출 34,1-35
탈출기 34장 1-4절은 두 돌판에, 따라서 히브리 말로 세 단어가 쓰였습니다. 두(둘), 돌, 그리고 판, 이라는 세 단어.
석판이 있는데 두 개라는 것입니다.
탈출 34,1 직역
그리고 야훼는 말했다 / 모세에게 / 잘라라
너를 위해 / 두 석판들을 / 처음 것들처럼
그러면 나는 쓸 것이다 / 그 판들 위에 / 그 말씀들을
처음 판들 위에 있었던 / 그 말씀들을 / 네가 부셔버린
처음 판들을 어떻게 했죠? 네가 부셔버린, 약간은 모세가 야단 맞는 것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있었던 돌판은 야훼 하느님이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 '네가 부셨으니까 네가 잘라.' 라고 야단치시는 듯한 어감을 행간에서 알아 듣게 됩니다.
구약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야훼의 명령이라면 '가라, 그리고 잘라라.' 일텐데, 이것은 약간 특이한 형태입니다.
'가라,' 라는 표현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너를 위해
즉, 잘라라 너를 위해.
우리한테는 별로 문제가 안되는데 히브리말 문장을 많이 읽다 보면은 여기서 먼저 “가서 잘라라.” 이러한 표현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
왜? 라는 질문을 머리 한 구석에 둔 채로 이 다음 문장을 읽어 가려고 합니다.
탈출 34,2 직역
그리고 준비되어 있어라 / 아침까지
그리고 올라라 / 아침에 / 시나이 산에
그리고 서라 / 나를 향해
거기에 / 그 산의 머리 위에
이 2절의 어휘는 탈출 19,11,15절과 유사합니다. 물론 19장에서 야훼가 시나이 산에 오른 주체이고 반면에 여기서는 모세가 그 산에 오르는 주체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유사성을 감안한다면 2절의 “준비되어 있어라.” 라는 명령을 우리가 19절의 문맥 안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절에서 “준비되어 있어라. 아침까지” 가 “푹 자라”는 말인지 아니면 또 다른 말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탈출 19장과 연결 시켜서 보면,
탈출 19장
º 11절 : 셋째 날을 준비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여기서 준비한다는 것은? 정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첫번째 정결의 방법은 옷을 빠는 것 입니다. 그런데 탈출 19,15에서 옷을 빠는 것 외에 또 한가지 조건이 등장합니다.
º 15절 : 그는 백성에게, "셋째 날을 준비하고 여자를 가까이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따라서 2절에서 “준비되어 있어라. 아침까지,”
를 옷을 빨아 입어라로 알아 들어야 할지, 아니면 탈출 19,15절과 연관해서 여자에 관한 명령도 포함 되어 있다고 볼수 있을 지, 주석가들은 이 두가지 가능성을 다 이야기합니다.
탈출 34,3 직역
하지만 아무도 오르지 않을 것이다 / 너와 함께
그리고 또 아무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 온 산에
작은 가축과 큰 가축도 방목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산을 마주하고
앞선 24장 까지의 대목에서는 조금 애매했습니다. 거기서는 하느님이 모세만 올라와라 했다가 나답과 아비후가 같이 올라가고 아론도 같이 올라가는 것처럼 얘기하고 그러면서 원로들도 같이 올라가서 나중에 하느님과 이스라엘에 원로들이 함께 식사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조금은 명령과 실행이 애매한 중복된 경우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탈출 34,3절에서는 단순하게 '너만 오르고 아무도 못오른다. 심지어 가축도 이 산을 마주하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야훼와 모세가 그렇게 만나는 모습을 아무도 보아서는 안됩니다. 시나이 산에 근처에도 오지말고 쳐다 보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물론 탈출 19, 12-13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산에 오르지도 말고 산자락을 건드리지도 마라.
산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말고 돌이나 활에 맞아 죽게해야 한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것은 앞선 대목과 마찬 가지로 여기에서도 이제 계약이라는 사건을 준비했는데 그 자체로 거룩한 사건이므로 사제와 백성들은 자신을 거룩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3절은 야훼가 모세에게 새로운 두 석판을 주는 사건을 거룩한 사건으로 규정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앞선 시나이 사건과는 달리 아론과 나답 아비후와 원로들 그리고 여호수아 없이 모세는 단독으로 시나이 산에 올라갑니다.
탈출 33,4 직역
그리고 그는 잘랐다 / 두 석판들을 / 처음 것들처럼
그리고 모세는 일어났다 / 아침에 / 그리고 그는 올랐다
시나이 산으로 / 야훼가 명령한 대로 / 그에게
그리고 그는 가져갔다 / 그의 손으로 / 두 석판을
계속해서 두 돌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계약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모세가 직접 석판들을 자르고 가져갑니다. 그리고 그가 직접 석판들에 써야 합니다. 이는 탈출 32,19에서 모세가 첫 석판들을 부셔버렸기 때문인데 1절과 2절에서 야훼는 그와 같은 모세의 행동을 좀 벌주는 듯 한 어감의 이야기를1~ 2절에서 듣게 됩니다.
탈출 34,28
모세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 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
이 부분은 첫번째 계약이 아니라 두번째 계약에서의 기록하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첫번째 계약에서는 석판도 하느님이 마련하시고 거기에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그 내용을 써주셨는데, 두번째 계약에서는 석판도 모세가 마련하고 쓰는 것도 모세가 합니다.(모세의 수고로움, 탈출 33,1-4과 탈출 34,28)
탈출 34,5-9 절은 야훼의 현현입니다. 현현은 하느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탈출 34,5 직역
그리고 야훼는 내려왔다. 구름 속에서
불, 구름은 야훼의 현존을 상징하는 일종의 문학적 상징입니다.
탈출 34,5 직역
그리고 그는 섰다 / 그와 함께
거기에
계속해서 대명사를 써서 문제입니다. 모세가 야훼와 함께 선건지, 야훼가 모세와 함께 선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는 그와 함께 거기에 섰다.
탈출 34,5 직역
그리고 그는 외쳤다. 야훼라는 이름으로
이 세번째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가 모세인지? 야훼인지?
나중에 우리가 뒤따르는 내용들을 참조해 보면 여기서 야훼라는 이름으로 외친 그 주체는 야훼 하느님 자신입니다.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다. 또는 외치다. 라는 표현은 누군가를 호명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석가들은 여기서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세가 야훼라는 이름을 외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만, 뒤따르는 내용들을 조금 살펴 보기로 합니다.
탈출 34,6 직역
그리고 야훼는 지나갔다 / 그의 얼굴들 위로
그리고 그는 외쳤다
야훼 / 야훼는 자애롭고 친절한 엘이다
양 콧구멍의 긺이고 충실과 신의의 많음이다
대개 이상합니다. 그리고 다 명사처럼 떨어져 있습니다.
탈출 33,2 절에 따르면 야훼가 지나갈 때 모세는 바위 틈에 놓여지고 야훼의 손바닥이 그를 덮고 있게 됩니다. 이 대목과 탈출 34, 29~ 35절의 얼굴의 살갗이 빛났다는 내용은 서로 연결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우리가 남겨둘 수 가 있습니다.
후반부에 가면은 그 문제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시겠습니다.
여기서 그는 외쳤다. 라고 얘기하는데요
민수 14,17-19절을 보게 되면 야훼가 이런 외침을 한 주체로 봐야 되는 것에 힘이 더 실리는 것 같습니다.
민수 14,17-19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발 당신의 힘을 크게 펼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충만하며 죄악과 악행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하셨으니 ( 이말은 모세가 야훼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말하는 것과 야훼가 자신을 3인칭을 써서 이야기 합니다)
이 부분이 없었다면 어떻게 자신이 자신에 관해서 3인칭으로 얘기하느냐? 라고 할수도 있지만 민수기 14,17-19절의 내용으로 봤을 때,
여기서 그는 외쳤다 야훼 야훼는 자유롭고 친절한 엘이다. 라고 얘기한 부분에서 그가 바로 야훼 자신이다.
또 여기서 자애롭다는 표현은 누군가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모성애적 표현입니다.
반면에 친절하다 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너그럽고 관대한 일종의 친구간의 우정을 애기하는, 따라서 야훼는 어머니처럼 자애롭고 야훼는 좋은 친구처럼 친절한 그와 같은 엘, 그와 같은 신이다. 라는 야훼에 대한 첫번째 수식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두번째 수식은? 양 콧구멍의 긺 이고,
콧구멍이 길다라는 뜻은 화를 잘 안낸다는 의미
구약에서 누가 화가 났다는 표현은 코가 빨개졌다 입니다. 따라서 콧구멍이 기니까 잘 빨개지지 않는다는 의미 인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충실과 신의의 많음이다, 즉 충실과 신의가 많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충실은 계약에 대한 충성스러움이고 신의도 계약에 대한 믿음직한 것을 얘기 합니다.
따라서 충실과 신의의 많음이다. 라는 뜻은? 하느님은 계약을 어기지 않는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자애롭고 좋은 친구처럼 친절하고 그리고 화을 내는데 더디다. 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느님에 대한 수식이 7절에 이어집니다.
탈출 34,7 직역
충실을 지킴 / 천(대)까지
비행과 범죄와 죄악을 짊어짐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처벌없이)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니다
아비들의 비행을 찾음이고 / 아들들 위로
그리고 아들들의 아들들 위로 삼대 위로 그리고 사대 위로
아비들의 비행을 찾음이다.
이게 어떤 히브리적인 명사를 수식하는 히브리적인 방식입니다. 따라서 첫번째는 천대까지 충실을 지킨다. 따라서 야훼는 천대에 이르도록 계약을 지킨다.
그리고 나서 비행과 범죄와 죄악을 들어 올린다, 에서 비행이라는 것은 계약의 상대방이 계약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행이라는 말을 뒤에 있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범죄와 죄악,
범죄라는 말은 가장 좁게 해석하면 재산상의 피해를 주는 행위입니다.
조금 넓게 해석하면 이웃을 향한, 인간을 향한 폭력을 얘기합니다.
반대로 죄악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거슬러 짓는 다른 신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누군가가 비행을 저지를 수 있는데 즉, 계약을 어길 수 있는데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이웃에 재산을 훔치거나 재산상의 피해를 주거나 또는 이웃을 폭행하거나 폭력적으로 행하거나 또는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섬기는 행위를 통해서 그런 비행을 저지르는데 그것을 들어 옮긴다. 또는 짊어 진다. 라는 이야기는 그것을 참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견디어 낸다 라는 겁니다.
코린 13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는 이 부분과 연관 시킬수 있는 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아비들의 비행을 찾는다.” 라는 것은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잘못했지만 그것을 보속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보속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라도 그것을 찾아서,
또 여기서 찾는다. 라는 말 안에는 셈한다(따진다). 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다가 오늘 백만큼 잘못을 했으면 그러면 하느님이 금방 벌주지 않으시고 조금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계약을 어기는 행위를 백만큼 했을 때 하느님이 좀 기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잘살아서 백만큼 잘했습니다. 그러면 +, - 로 해서 0이 되는데,
우리가 하느님이 벌을 안주시는 것을 보니까 괜찮은 가봐! 하고서 계속 살아간다면 그럼 나중에 어느 순간에 하느님께서 그것을 셈한다는 뜻입니다.
'너 3년전에 이런적 있어.' 좀 피곤한 것입니다.
사목적인 관점에서 부부들 한테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 일어난 사건에 관해서만 이야기 하지 지난 10년 전부터 것을 다 얘기하는 사람들.... ^^
하느님은 그것을 금방 셈하시진 않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리시지는 않습니다.
기다리고 참고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하느님이 갖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수식 내지는 야훼 하느님의 퀄리티 입니다.
하느님은 엄마처럼 자애롭고 좋은 친구처럼 친절하고 그리고 계약에 있어서 계약에 충실하고 화를 내는데 더디고 설혹 우리들이 계약을 어겼다 하더라도 이웃에게 잘못하거나 우상을 섬기거나 하면서 잠시 계약을 어겼다 하더라도 그것을 금방 셈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잊어버리시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탈출 34,8 직역
모세는 서둘렀다 / 그리고 그는 엎드렸다
땅으로 / 그리고 그는 절했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얘기한다면,
모세는 서둘러 땅에 엎드려 절했다. 입니다.
히브리 말에서 동사가 한꺼번에 등장할 때는 동작이 바쁘게 바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동작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야훼 하느님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기도 하고 반대로 무언가 하느님에게 드릴 청원이 있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8절은 모세가 한편으로는 재빨리 야훼의 말씀을 수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야훼에게 무엇인가를 청원하려는 그와 같은 장면입니다.
탈출 34,9 직역
그리고 그는 말했다 / 만약 내가 발견했다면
호의를 / 당신의 양 눈에 / 나의 주님
이것은 우리가 익숙한 앞에서 반복했던 내용입니다. 다시 호의가 나왔습니다.
탈출 34.9 직역
가도록 하십시오 / 제발 / 나의 주님이 / 우리 가운데에서
비록 그가 목이 -뻣뻣한 - 백성일지라도
앞에서 나왔던 내용인데 탈출 34,9절에서 모세가 다시 한번 요청합니다. 중복되어서 나왔다는 것은 우리가 한편으로 생각하면 중복된 전승이 있었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얘기하면 모세에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가를 그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계속해서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아이들이, "엄마, 엄마, 나한테 뭐 사줘야돼." '알았어. 다음주에." 그리고 그 다음날에 "엄마, 엄마, 나 사줘야돼. 꼭 잊어버리면 안돼!" "알았어. 그래."
이와 같은 패턴으로 아이들에게 그게 중요한 문제니까.
비록 그가 목이 -뻣뻣한 - 백성일지라도에서 그는? 우리,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탈출 34,9 직역
그리고 너그러우십시오 / 우리들의 비행과 죄악에
그리고 소유하십시오 / 우리들을
9절에서 모세는 세가지 청원을 합니다.
첫째는 나의 주님이 우리 가운데에서 가도록 해달라는 것, 둘째는 우리 죄악에 너그러워 달라는 것, 셋째는 우리를 소유해 달라는 것으로 모두 우리와 관련된 청원입니다.
그런데 그 청원들에 두 가지 전제가 삽입되어있습니다.첫째 전제는 만약 모세가 야훼의 호의를 발견했다면, 둘째는 비록 이스라엘 자손들이 목이 뻣뻣한 백성일지라도, 이것은 아마도 탈출 33,3절을 염두해 둔 표현인 것 같습니다.
탈출 33,3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므로, 도중에 내가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탈출 34,7
아비들의 비행을 찾음이고 / 아들들 위로
그리고 아들들의 아들들 위로 삼대 위로 그리고 사대 위로
라는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불편합니다. 이것은 연좌제로 느껴집니다. 이와 같은 신명기 학파의 신학은 오늘날 까지도 얘기하고 있는 교회 안의 상선 벌악의 신학과도 일맥 상통하는데 이것은 누군가가 잘못을 했을 때 그 피해는 그 공동체가 나누게 된다는 죄의 연대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창조의지가 무엇일지에 생각하고 그것을 돌보지 않았을 때 결국 그 피해는 우리들의 후손이 받습니다. 소위 말하는 지도자들의 죄는 더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지도자들의 죄는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많은 사람들의 죄의 연대성이라는 관점에서 영향을 주는 이들의 죄는 더 엄하게 보아야 한다는 신학적인 해석으로 7절의 이야기를 이해합니다.
탈출 34,9절부터 나오는 모세의 청원은 전체 이야기의 흐름에서 새로운 계약을 위한 모세의 조건처럼 배치가 되어있습니다.
새로운 계약을 맺는데 그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해서 모세가 제시한 조건은?
① 당신이 우리 가운데에 함께 가야합니다.
② 혹시 그와 같은 당신의 영광을 우리가 볼수 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하나는 들어 주십니다. 같이 안가시려 했는데 함께 가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너희들이 감당할 수가 없으니 뒷모습 정도는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10절부터는 계약을 맺는데 있어서 하느님이 내거는 조건이 등장합니다. 앞선 첫번째 계약에서의 하느님이 내건 계약의 조건은? 탈출기 20장의 십계명 내지는 탈출기 20장~ 23장까지 나오는 계약의 책 입니다.
이제 두번째 계약에서는 지금까지 모세의 조건만 듣고 하느님의 조건을 듣지 않아서 그 부분, 10절부터 새로운 계약을 위한 야훼의 조건이 나열됩니다.
그래서 탈출 34,11~ 26절을 주석가들은 제 2의 십계명, 또는 예식 십계명이라고 부릅니다. 단지 이렇게 부르긴 했지만 열 가지 계명으로 나눌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앞선 탈출기 20장의 십계명과 비슷한 계약의 조건으로서에 십계명이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것을 지켜야 한다는 야훼의 율법적인 요구를 요청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갖고 있는 계약 내에서의 기능은? 탈출기 20장의 십계명과 유사하다.라는 정도로 그 의미를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내용도 법조문이라서 건너 뜁니다.)
탈출 34,29 ~ 35절입니다. 모세의 하산에 관한 내용입니다.
계약을 다 맺고 계약이 맺어지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자신의 요청을 하느님께 얘기하고 하느님이 그것을 수락하고 또 하느님이 모세에게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본인이 원하는 내용을 예식 십계명, 제 2의 십계명 형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고,
본래의 계약의 형식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가 말씀하면 "네,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그것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고 함께 식사를 나누고 형시적인 것이 필요할 텐데, 그런 것들이 조금 생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모세가 하산합니다.
탈출 34,29 직역
그리고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
두 증언판들이 모세의 손에 있었다 / 그의 내려옴에 / 그 산에서
탈출 34,29 직역
하지만 모세는 알지 못했다/ 그의 얼굴들의 피부가 (뿔처럼)
돋아오는 것을 그의 말씀에 / 그와 함께
그의 내려옴에 그 산에서는? 왜 중복되어 쓰였는지는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굳이 설명하신다면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중복된 표현이 있었을까? 라고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그의 얼굴이 빛났다 로 나오는데 히브리 말 원문은 그의 얼굴들에 피부가 뿔처럼 돋아오르는 것으로 나옵니다.
“뿔처럼 돋아오른다.”라는 동사를 이미 고대의 번역본들은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70인역과 다른 몇몇 번역본들과 현대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것을 '빛나다' 라고 번역했고 뒤따르는 그에 말씀에 그와 함께는 시간적 또는 인과적으로 알아 듣습니다.
그가 그와 함께 말씀을 나눌때 그의 피부가 뿔처럼 돋아 올랐다. 왜? 그와 함께 그가 말씀을 나누었기 때문에 얼굴들의 피부가 뿔처럼 돋아 올랐다,
그런데 중세 때 만들어진 작품들에서는 모세의 얼굴에 정말 뿔이 있습니다.
( 영상 34분 33초에서 미켈란젤로가 모세의 상을 만들때는 히브리말 텍스트를 피부가 뿔처럼 돋아났다로 본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천사의 모습에서 뿔을 떠오른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아서 고대어나 요즘의 성경에서도 수정되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신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왜? 뿔이 나는가에 대해서는 고대 근동의 다른 문헌들을 찾아 볼 여지가 있습니다.
탈출 34,30 직역
그리고 보았다 /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은 / 모세를
그리고 보라 / (뿔처럼) 돋아올랐다 / 그의 얼굴들의 피부가
그리고 그들은 두려워했다
다가가는 것으로부터 / 그에게로
탈출기 32장에서 수송아지 상 문제를 야기시켰던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은 달라진 모세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이상한 것은? 첫번째로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는 피부가 뿔처럼 돋아올랐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탈출 34,31 직역
그리고 외쳤다 / 그들에게 / 모세는
그리고 돌아섰다 / 그에게 / 아론과 모든 수장들은
공동체 내에 (있는) 그리고 말씀했다
모세는 / 그들에게
여기서 모세가 그들에게 외치자 그들이 돌아섭니다. 아론과 모든 수장들이,
돌아선다. 라는 히브리말 동사는 회개한다, 또는 회심한다 라는 개념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말했다와 말씀했다를 히브리어로 아마르(אמר)와
다바르(דבר)로 구분하셨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말했다는 아마르, 그런데 특별하게 다바르 라는 동사가 사용될 때는 그 말씀이 어떤 사건과 연관되어 집니다.
이 말씀하다, 다바르 단어가 29절~35절까지 무려 7번이나 나옵니다. 그뿐아니라 그 전후의 문맥에서도 야훼가 명령한 계약의 말씀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었습니다.
탈출 34,27.28 ; 35,1.4에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계약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놓고 계약과 관련된 야훼의 말씀을 하나의, 말씀이라고 읽지만 그 안에는 이벤트, 사건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탈출 34,32 직역
그리고 그런 후에 / 다가왔다 /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명령했다
야훼가 그와 함께 말씀한 모든 것을
시나이 산에서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 야훼가 그와 함께 말씀한 모든 것이란, 탈출 34,11~26 그리고 우리가 건너 뛴 제2의 십계명 일수도 있고 또는 탈출 25장부터 ~탈출 31장에 나오는 성막에 대한 지침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두 가지 다 일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탈출 34,32절만 놓고서 정확히 찝어 내는 것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34,33 직역
그리고 모세는 끝냈다 / 말씀하는 것으로부터 /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는 썼다 / 그의 얼굴들 위로 / 수건을
수건이란 단어는 수녀님들의 베일과 같은 것입니다.(앞으로 내릴수도, 뒤로 넘길수도 있는 서양 결혼식에서 신부의 베일처럼) 성막안에 휘장을 설치해서 휘장 안과 밖을 구분하듯이, 이제는 하느님과 얘기하면서 하느님의 거룩함으로 그 뿔처럼 돋아오른 피부, 하느님이 거룩함이 담겨있는 그 얼굴을 평소에는 가릴 수 있고 필요한 때는 드러낼 수 있는 기능을 하는 수건
탈출 34,34 직역
그리고 모세가 왔을 때 / 야훼의 얼굴들에 / 말씀하기 위해
그와 함께 / 그는 벗곤했다 / 그 수건을 / 그의 나옴까지
이것은 만남의 천막에 들어갔다가 나올때 까지를 얘기합니다.
탈출 34,34 직역
그리고 그는 나오곤 했다 / 그리고 그는 말씀하곤 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 그가 지시받는 것을
그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곤 했다는 의미로 알아듣습니다.
물론 여기서 야훼가 말씀을 나누는 장소가 만남의 천막이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 시나이 산일 수도 있고 만남의 천막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뒤의 문맥으로 봤을 때는 만남의 천막이 더 가능할 것 같습니다.
탈출 34,35 직역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곤 했다 / 모세의 얼굴들을
왜냐하면 (뿔처럼) 돋아올랐기에 / 모세의 얼굴들의 피부가
그리고 모세는 돌아가게 하곤 했다 / 그 수건을 /
그의 얼굴들 위로 / 그의 옴까지 / 말씀하기 위해 / 그와 함께
문장은 복잡합니다. 그렇게 모세가 말씀하곤 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직까지 수건을 내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야훼의 말씀을 모세가 전해야 하니까,
그런데 모세의 얼굴이 뿔처럼 돋아오른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하고 난 다음에는 모세가 그의 수건을 원위치 시켜서 내리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야훼와 함께 말씀을 나누기 위해 올때까지 입니다.
어디로? 장소는 텍스트가 분명하게 전하지 않습니다. 단지 만남의 천막으로 추정
그리고 여기서 특이한 동사형이 사용되었는데, 미완료가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히브리말 미완료는 일반적인 이야기 안에서는 미래로 번역되는데, 이 경우에서 만큼은 미래가 아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지속적인 과거의 사건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오곤했다. 벗곤 했다. 전하곤 했다. 말씀하곤 했다. 등으로 이 부분에서 미완료형을 번역하셨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들이 피부가 빛났다. 로 번역한 70인역에 텍스트는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변화에 텍스트와 일정한 공통점을 갖게 됩니다. 마태17장, 마르 9장, 루카 9장,
신약의 사도들 역시 구약의 백성들처럼 그와 같이 예수님의 변한 모습을 보고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루카 24장에서는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면서도 제자들이 느끼는 첫번째는 두려움내지는 경외감입니다.
이제부터는 모세의 지시와 함께 성막을 만들고 그 성막과 함께 탈출기 마지막으로 가서 하느님께서 새로 출발을 하는 것 같은? 그와 같은 내용들을 보게됩니다.
지금부터의 내용들은 이야기체의 내용이 아니라 탈출기 25장~ 31장에 있었던 하느님의 성막의 지시가 반복되는 내용이라서 이 문체에 대해서 율법적인 하느님의 지시와 그것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따로 떼어놓고
모세의 이야기의 탈출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지금 말씀해 주신 34장을 통해서 마무리됩니다.
탈출기의 길을 끝까지 걸어와 주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영광송으로 마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멘~!! 고맙습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