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와 성만찬 첫 부분에서는 서로를 정죄하며 편을 가르기 시작하는 것, 즉 누가 가장 크냐 하는 생각이 공동체 안에 번지기 시작하는 상황을 경계합니다. 밝은누리에 오기 전에 20년 넘게 다니던 교회가 있었는데, 그 곳은 어른들 사이에 여러 무리가 존재했고 서로 다른 무리를 판단하고 뒷담화 하는 것들이 만연했어요. 새로 온 사람 앞에서는 친절하게 섬기면서 뒤에서는 '성격이 어떤 것 같더라' 하면서 얘기하는 것들이 너무 불편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 곳에서 계속 신앙을 하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런 문화에 젖어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미련없이 나오게 된 부분이 커요.
공동체 안에서의 섬김 중,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지는 섬김이 인상 깊었습니다. 짐을 짊어진다는 것은 한 몸으로 같이 살아가기 위해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의 진지한 말을 거부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그 사람이 바로 서도록 돕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좀 예민한 사람인 것 같은데, 그래서 싫은 소리 안 하고 안 듣고 싶어서 참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염려는 자만이자 교만이라고 합니다. ‘내’가 ‘너’에게 권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예민하고 섬세하다는 핑계로 교만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서로의 짐을 짊어질 수 있음을 마음에 새깁니다. 예민과 둔감의 차원을 떠나서,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권면이나 훈계를 할 수 있고 그 깊은 곳에는 사랑이 있음을 느낍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공동체 안에서 나이스하게 지낼 수도 있어요. 좋은 모습 보여주면서 듣기 싫은 소리 안 듣고, 좋은 말만 해주면서 갈등을 피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내가 높아지고 싶은 교만의 마음이니, 먼저 겸손의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직접성, 즉 인간적 사귐을 세우려는 사람은 그릇된 권위를 세우려는 사람이고 자기 자신이 높아지려는 마음이 속에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역시 교만인데, 제가 아주 교만한 사람이었구나 싶으면서도, 배타적이지만 않으면 지체들과 약간의 직접성은 좀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고해를 할 때는 구체적으로 죄를 고백해야 자기 정당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라는 것은 본래 숨기고 싶은 것이라 혼자서 그 죄를 놓고 기도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걸 우리는 용서 받았다고 흔히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런 용서는 사실 하나님의 용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주는 용서일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껏 이런 용서를 구한 것 같기도 해요. 딱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제 상황과 회개의 내용을 잘 정리해서 성숙한 방식으로 전하려고 해요.
처음 신도의 공동생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예컨대 아침에 다른 이와 함께 기도나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고 또 저녁에는 식탁교제를 하지 않고 혼자 밥을 먹으니까요. 그러다가 배움을 일상에서 풀어가고자 같이 수업을 듣는 한 언니와 아침마다 만나 성경 묵상을 했어요. 원래는 아침마다 정신없이 출근을 하거나 피곤해서 온갖 짜증이 다 났는데, 묵상을 시작하고 나서는 오히려 기운이 생기고 더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어요. 참 소중하고 신기했습니다.
조금씩 공동생활로 들어가는 가운데, 그 속에서 더 건강한 관계와 장 누리기 위해 홀로 있음과 함께 있음의 균형을 잘 맞추고 침묵할 때와 겸손하게 권면할 때를 잘 분별하고 싶습니다. 이미 공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 얘기 들으면서 너무 재밌었고 공동생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지는 경험도 했어요. 잘 나누어 주셔서 모두들 감사합니다! 이끔이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