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청아 사회선교학교의 마지막 강의로 문익환 선생님의 자택이었던 통일의 집에서 선생님의 자녀 문영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에서 10여분 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어 반가운 마음이었어요. 들어가자 마자 어디선가 웃으며 편한 복장으로 문익환 선생님이 나오실 것 처럼 포근하고 아늑한 공간이었습니다.
문익환 선생님의 삶을 조목하게 담은 영상과 4개의 방을 차례대로 둘러봤어요. 문익환 선생님은 전도사를 시작하실 때까지도 북쪽에서 지내셨지요. 우여곡절이 많은 부모님의 이야기부터 성경번역작업, 수감생활, 하셨던 다양한 배움들까지 문익환 선생님의 아주 가까운 일상까지 들여다보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선생님의 방북 사건입니다. 지금 북한이라는 존재는 무차별적으로 미워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민족인 것을 부인하는 데에 이르렀지요. 한 배에서 나고 자라 함께 역사를 걸어왔던 걸음이 단 몇십년만에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악마화 되고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요즘에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봐야한다'는 이유로 문익환 선생님은 자신의 동무들과 함께 북한에 방문합니다.
문익환 선생님은 정치적인 태도와 문서화된 언어로 소통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김일성 동지를 온몸으로 껴안으셨지요. 그리곤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이 담긴 선언문을 만드셨습니다. 문익환 선생님의 방북 사건을 통해 무엇보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졌을지라도 배우고 싶고 필요한 내용이라면 먼저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토론을 하셨던 문익환 선생님을 보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운 동지를 나무라고 무시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공감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것에 서슴이 없었던 문익환선생님의 태도를 배우고 싶었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의롭게 살자'고 함께 외치며 모든 수모를 묵묵히 겪었던 문익환 선생님의 짝꿍 박용길 선생님. 또 문익환 선생님의 배움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애쓰시는 자녀분들의 애정을 깊게 느낄 수 있었어요. 한사람의 애씀과 뿌리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후대에 열매를 맺는 구나, 싶습니다.
통일은 먼 훗날 정치적인 문서를 통해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오늘 여기 내 일상 안에서 나와 내 옆 동지를 품으며 평화를 염원할 때 이미 이뤄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첫댓글 통일에 관심있는 친구에게 공유해줄 후기글 찾고 있었는데, 잘 갈무리해준 덕분에 기쁘게 나누었어!
한반도의 하나됨을 염원하는 이가 적은 시대에 북한동포들 만나서 대화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걸어서라도 갈테야’ 하셨던 문익환선생님 다시 뵙고 싶어지네.
“통일은 다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