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강의를 들으며 예수의 주기도를
다석이 새롭게 풀이한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의 주기도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합니다.
다석이 살던 시기, 일제 식민 시기를 생각해 볼때,
그리고, 다석의 새로운 주기도문 풀이가 쓰여진 시기가 1942년을 생각할 때,
조선의 백성들이 얼마나 핍박받고, 힘든 짐을 지고 살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민중들에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는 것은
식민체제에서는
너무나도 소극적인 기도였겠다 생각이 듭니다.
19세기 20세기 인류는 지독한 질병(정신병)에 걸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강한 군사력으로 다른 민족과 계급이 낮은 이들을 마음껏 짓밟고 억누르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병에 물든 이들은 약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고, 죽음마저 정당화 했습니다.
생명이 생명답게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전쟁에 동원되고,
전쟁 물자를 만들고 지원하는데 동원되었습니다.
이 질병을 치유하고자 하면, 새로운 생각과 삶이 자리잡아야만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예수의 주기도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의 내용을
“우리가 세상에 끄을림이 없이 다만 주를 따라 웋으로 솟아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 사람이 서로 널리 생각할 수 있게 하옵시며 깊이 사랑할 수 있게 하옵소서." 새롭게 풀이합니다.
폭력의 시기에 광기에 미쳐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에 등 떠밀려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고 ... 살아가며 생명을 소진해 갈 때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다석은 많은 고민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주를 따라 웋으로 솟아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새롭게 기도하는 것은
생명철학적인 다석만의 풀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를 "높·낮, 잘·못, 살·죽 가온대로 솟아오를 길 있음 믿은 이"라고 하였는데,
높고 낮은 구별이 없어지고, 잘하고 못하고의 분별이 사라지고
살고 죽고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생과 평화의 세계를 열어가는 이.
저에게는 아직 공부와 실천이 모자라 추상적이고,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그 길을 따라 살아가려는 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길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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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제시대 만큼 전쟁의 광기와 폭력 속에 살진 않았고,
또 독재의 탄압 속에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광풍 속에 여전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온생명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류의 인간중심적인 생활양식으로 인해
전지구가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를 따라 웋으로 솟아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게 됩니다.
파닥거리고, 꿈틀거리며 함께 믿는 이들과 함께
창조적으로 솟아남을 얻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마 혼자는 어렵겠지요?
더불어 함께 .. 가 보겠습니다.
첫댓글 웋로 솟아남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