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시타 시게루 목사님 말고도 두 분의 재일교포2-3세를 만났다. 그 분들은 자신의 모국/조국은 어디인가로 꽤 고민하셨다.
나는 살면서 내가 대한민국 또는 남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다. 통일에 대해선 꽤 생각해봤지만 생각에 그쳤다. 당장 내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일교포 분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들으며 그게 그렇게까지 별일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문득 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내가 태어날 당시 아빠의 해외출장으로 인해 유도분만 주사를 맞고 태어났다. 엄마나 내가 아파서가 아니라 그저 일정 때문에 그렇게 태어났다. 사람이 그렇게도 태어난다니. 그게 바로 나라니. 뭔가 마음이 요란했다. 다른 이들에겐 별일 아니겠지만 내겐 뭔진 몰라도 별일이었다.
그날 이야기 나눈 이들에겐 재일교포라는 정체성이 별일이었다. 그래서 목사가 되고, 한국으로 유학오고, 나머지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겠다고 이민 왔다.
나랑은 전혀 상관 없고 마주칠 일도 없는 이들을 마주하니 내가 몰랐던 세계가 열렸다. 재일교포들은 이렇게 고민하며 사는구나. 일본에는 재일교포 차별이 심하구나. 우리나라도 크게 다를 바 없구나. 재일교포에겐 한국이 남한과 북한으로 분리되기 이전의 조선이구나.. 많은 것 알게 되었다.
나는 유도분만 주사로 태어나 지금껏 수도권에서만 살아온 20대 여성이다.
나는 재왕절개로 태어나 20살까지 부산에 살다가 서울로 이주해 살아가는 30대 남성의 삶은 모른다.
하지만 서로 만나 이야기 나누면 내가 모르는 삶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날 그 곳이 바로 서로 모르는 삶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시게루 목사님은 바로 옆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왜 내가 너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어느 퀴어 무용인 말했다.
내가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삶이지만 내 옆 친구의 일은 내 일이나 다름 없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길은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 있다.
바로 옆 내 친구를 만나듯이 말이다.
나는 실은 한국과 일본 사이가 원만해지기 위해 뭔가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렇게 명확한 틀이 생기면 화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거다. 그래서 정책 제안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갔다.
막상 그곳에선 재일교포, 일본인, 한국 유학생... 어느 이름으로도 가두기 어려운 외할아버지가 제주에서 살다가 일본 땅으로 건너간, 일본말을 잘 쓰고 한국에서 신학을 배우고 있는 삶을 만났다.
화해의 길은 어디 먼 곳에 있는 것 아니구나. 꼭 일본과 한국의 화해가 아니어도 말이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면 그게 화해고, 하나가 되는 길이다.
앞으로 친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나는 들을 마음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