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여기서 '밭'은 우리 일상의 터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천국으로 초대하시지만 우리는 결혼해야 해서, 밭을 사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이를 거절하죠. 특별한 이유도 아닙니다. 내가 빈둥빈둥 노느라 그런 것도 아니고 늦잠을 자겠다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중인데, 좀 봐주시면(?) 안될까..?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결혼을 했더라도 스스로 고자된 마음으로 살라는 말씀을 들을 때에는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지요. 자선과 선교도 중요하지만 '한 몸됨'이 교회의 가장 첫째 표징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는 요한복음 13:34-35 말씀이 생각났어요. 교회의 정체성은 서로 사랑하며 한 몸이 되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자선과 선교(가 절대 쉬운 것은 아니지만)같은 효과적인 대외 홍보 수단이 될만한 이벤트를 앞세우는 것을 어느 교회를 가도 매번 지켜봐왔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몸살이 교회공동체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지금과 같이 관계들이 단절되고 파편화된 사회에서는요. 이 관계에 대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해주신 것-그 분은 세 인격이시나 한 뜻, 한 마음, 하나되어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말은 눈 코 입 달린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성, 관계의 일치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만 국한되지 않고 온 생명이 하나됨을 뜻한다-이 깊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강의 끝나고 친한 교회 청년에게 이런 걸 배웠다고 알려줬어요.
실체없는 관념을 강요하는 것이 폭력이 되기 쉽다는 말씀에 무척 공감이 갔어요.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과 애매한 관계로 연결되어 어줍잖은 위로를 참 많이도 했습니다. 고민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위로를 주고 호감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렇다고 책임지지 못할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해야할 말을 삼키기도 했지요. 간혹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관념에 가득 찬 대화를 나눌 때면 그 순간에는 분명 즐거웠던 것 같은데 뒤돌아서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고요. 그러다 어느새 누구와도 진실되고 정직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저하는 저를 보곤 합니다. '나나 잘하자'는 마음도 들고요. 결국엔 관념과 삶의 순환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르지만, 진짜 그렇게 살아야만 하겠어? 그렇게 살고 싶어? 라는 질문 앞에 또 갈팡질팡하게 되어요.
다음 소모임 시간에 이런 이야기들 깊게 또 듣고 나누고 싶어요. 서로 배움의 시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