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강의는 엄청 몰입하면서 듣게 되었어요. 강의를 듣고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강의 내용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져서 잠을 설치기도 했어요. 합비루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깊었습니다. 히브리인을 민족적 개념이 아닌 합비루라는 계층적 개념으로 볼 수 있어 새로웠습니다. 합비루는 강자에게 밀려 권리를 빼앗긴 약자들을 의미합니다. 천시받고, 착취와 억압을 받으며, 무력하고, 생존에 급급한 하층민들을 지칭해요. 이것을 알고나니 '나는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하신 하나님의 선포가 강의를 듣기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어요. 위로를 받고 도전도 되었어요.
사회는 변화시키지 않은채 풍요와 번영을 이야기하는 바알과 아세라와 달리,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일하셨어요. 하나님은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애굽에서 당신의 백성을 건지시고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당신의 공동체를 이뤄가셨죠. 이러한 공동체가 교회가 된 것일텐데, 지금의 교회는 이상하게도 바알과 아세라의 신앙과 비슷한 점이 많아보여요.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안을 만들어 가기보다는 기도, 찬양, 예배를 드리며 고통을 견뎌내고 죽음 이후의 천국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를 이루라고 말씀하시고 성경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지만, 오히려 많은 교회들은 사회의 불의와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해요. 심지어 정치적인 진영논쟁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이라며 폄하하기도 해요. 그냥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할 뿐인데 어떤 색깔을 입혀버려요.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답답하기도 하고, 왜 이런 오해가 생긴건지 궁금하기도 해요. 피상적인 관계라면 적당히 회피하면서 대화를 넘어갈텐데 회피할 수 없는 가까운 관계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저도 어릴때부터 다닌 교회와 부모님의 영향으로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저는 정치나 신학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냥 주위에서 그렇게 말하니까 막연하게 나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이광호 목사님께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하시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공부하지 않으면 문제의식을 느껴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기존의 것을 계속 답습해갈 수 밖에 없어요. 혼자 끙끙거리다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씩 힘을 얻어갑니다. 강의를 듣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가 지금 두려워하는게 무엇인지, 헤매고 있는게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모세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애굽에서 불의를 보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큰 좌절을 한 모세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뭔가 해결해보려고 하면 더 안좋은 결과를 초래한 적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모세처럼 '내가 무슨...내가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어...그냥 살던대로 살지 뭐..' 이러한 생각을 많이 해요. 뭔가 대안을 찾아 떠나고 싶지만 그러기엔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엄청 견고해보였어요. 실패했던 경험이 있으니, 불가능하다고 결론짓고 회피한적도 많아요. 그렇다고 완벽히 회피가 되지도 않아요. 항상 마음속, 머리 한켠에는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그래서 그저 묵묵히 제 할일을 하면서 기도할 뿐이었어요. 제자리걸음만 하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이 모세에게도 있었겠죠?
이러한 모세를 끈질기게 만나주시고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에 마음이 뭉클해졌어요. 척박한 땅에서 매말라 있는 떨기나무가 곧 모세이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불을 붙여주셨다는 이야기!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광야에서 고집센 양들을 치며 살았던 모세에게 떨기나무 사건은 큰 위로와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의 열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첫댓글 정성껏 쓰신 후기 잘 읽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뵙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