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총 9강 중에 8강을 마쳤습니다.
매주 한 번 강의가 있었으니 두 달의 시간이
흐른건데 불과 몇 주 전 일 같네요.
그만큼 강의에 대한 기대, 설레임,
그리고 긴장이 있었습니다.
몰랐던 부분,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알고 있는 부분은 재확인, 재다짐하며
이 시대 신앙인으로써 좁은 길 걷는 두려움과
모호함을 조금 더 떨쳐내고 마음 다잡을 수
있었어요.
좋은 배움의 기회 열어주신 목사님과
기청아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헷갈리지 않고 분별할 수 있으려면
무엇에 집중해야하는지. .
신앙하는 삶은 어떠해야하는지 . .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하는지. .
어떤 가치와 지향을 품고 누구와 함께
이 길 가야하는지. .
강좌 후반부에 이르며 더 선명해졌습니다.
학벌, 부동산, 안정된 삶
내게 숨겨진 욕망인데 마치 아닌 듯,
세상과 현실 탓하며 하나님과 욕망을 겸하여
섬겨 온 시간들 떠올랐어요.
‘꼰대’ 의 의미와 폐해도 진중하게 되짚어
봅니다. 전체를 통전적으로 살필 수 있는
지혜와 배움 없이 내뱉는 얕은 나의 언행과
삶의 파편들은 주위 생명을 핍절케하고
사건을 왜곡 시키겠구나 !
역사적 바울의 정체성, 본질을 내 편협한
틀거리에 구겨넣으며 가두어 놓았고
이로인해 때에 맞게 열매 맺지 못한
저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신앙의 양심 가지고
배운대로 고백한대로
성심껏 일상을 살아가겠다
기도하게 됩니다.
*** *** ***
오늘 강의에서 목사님은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강조하는
성령, 은사, 부활 그리고 ‘사랑’의 의미와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셨어요.
소위 ‘사랑’ 장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의 경우 앞뒤 정황, 문맥 고려치
않고 13장 만을 뚝 떼어 단편적으로
묵상해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의
말씀을 그저 동화 속 그림 같은
‘예쁜 이미지’ 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2강에서 배웠던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새 언약, 새 질서 - 하나님 나라
운동의 대표적인 실천 사례는 ‘열린밥상
공동체‘ 였습니다.
이곳에서는 기존 사회의 ‘수직적인 차별’
‘수평적인 대립, 분열’ 없는 생명과 평화
의 장(場)이 실현되었지요.
그런데, 고린도교회 공동체에 염려스러운
기운과 현상이 나타납니다.
세속적 질서 - 로마식 힘과 위계에 의한
차별과 분열이 그것이었습니다.
‘밥상’에서
평화, 평등이 아닌 차별(빈부, 인종, 계급)
이 발생합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 즉 성도 각자가 은혜로
받은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공의’를 위해
선용하지 않고 자신의 은사가 더 우월
하다고 다투며 갈등의 골은 깊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를 통해
교회에 세속적 가치가 침투하는 것을
경고하며 ‘성령의 은사’ 와 ‘한몸 공동체’ 의
본질 그리고 ‘지체의 역할’을 설파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소위 ‘사랑’ 장을 통해
고린도교회 공동체 분열, 갈등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사건으로
보여주신 기독교 핵심 가치는 바로
‘사랑과 정의(공의)의 회복’ 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사랑’ 의 본질에 대해 미쳐 간과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바로 ‘정의(공의)’ 라는
질뇨입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 ‘사랑’ 과 ‘정의(공의)’ 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결합체임을 마음에
들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사랑’ 은 무조건 품고 이해해야하는 일방적
인 베풂이 아니라,
‘정의(공의)’ 라는 토대 위에서 실현되어야
온전한 사랑이 성립된다는 것 기억할께요.
존 도미닉 크로산 교수 의견을 들어
설명해 주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부활의 구성을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 저에게 새롭고 흥미로웠어요.
오늘날 정교회라고 불리는 동방교회에서
묘사하는 부활의 장면에는 예수님께서
스올로 내려가셔서 죽은자들(잠든자들)을
데리고 오는 모습입니다.
이에 비해 서방교회(로마카톨릭 교회)에서는
예수님 홀로 부활하시는 모습이지요.
기독교의 생성과 발전, 조직화 과정 가운데
여러 차례의 공의회를 거쳐 교리, 정통성
등이 확립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역사적인 부침의 시기를 지나며
특히 동방교회의 전통과 내용들이 정리?
되고 서방교회 중심의 전통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들이 새삼 새로웠습니다.
목사님 강의 들으면서 유의하게 생각되는
지점은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신앙의 본질을 어떤 이유로든
왜곡, 훼손 시키는 일은 없어야겠다 싶습니다.
교파의 기득권 때문이든, 어떤 욕망 때문이든
바울이 절규하며 절대 금지한
로마식 힘의 논리, 불평등과 갈등이 작동하는
세속적 교회 신앙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새 언약, 새 질서가 의미하는
'온생명 평화와 정의(공의) 회복'의 실존이
먼 미래,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유보시키지 않고
오늘을 사는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실천, 신앙하는 삶 살 수 있도록
배운 바 잘 머금고 노력하겠습니다.
가을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열렸던
'역사적 바울의 도전' 강좌가 12월 겨울
맞이하며 막을 내리게 되네요.
아쉬운 마음 가득 안고 다음 주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