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하며 새로운 지파공동체를 이루어온 이스라엘 민족은 "평등"을 꿈꾸며 해방공동체를 이루어가지만,
끊임없는 블레셋 침략과 지파내부의 평등 사회질서의 붕괴로 군주제를 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분명한 왕권에 대한 폐해를 이야기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듣지 않고 하나님은 왕정을 허하십니다.
그 왕권은 평등사회를 경험했기에 절대권력을 주변국들의 왕권개념과는 다른 제한된 왕권체제를 이룹니다.
하지만 사울-다윗-솔로몬 시대를 거쳐가며 평등공동체를 해치지 않는, 제한된 왕권은 점점 변질되어가고
솔로몬 때는 절정을 이루며 이집트의 바로와 다를바없는 건축사업으로 인한 강제노역으로 백성들의 자유는 억압되어 갑니다.
솔로몬은 이웃나라와 정치적, 문화적 유대를 맺으려고 정략결혼을 통해 '칠백명의 아내와 삼백명의 첩'을 거느립니다.
이방여인들을 통해 이방종교가 들어오게 됩니다.
외교능력에 힘입은 교역과 조세정책, 강제부역을 통해 솔로몬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왕정은 유지됩니다.
다윗과 솔로몬에 대해 성경은 밝음과 어두움을 함께 보여주고 있지만,
고정관념에 갇혀서 어두움을 분별하며 읽어가지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얼마나 많은 교회건축에 솔로몬의 구절들이 인용되고 그것이 옳은 것인냥 민중들을 가르쳐왔는지...
솔로몬의 지혜만이 부각되었고, 그가 일구어간 불평등한 체제, 민중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거의 눈을 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의 대부분의 토목공사는 힘있는 자들의 "과시"이고 민중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일이라는 것.
이땅에 일어났던 산과 강을 무참히 파헤쳤던 거대한 4대강 공사부터 시작해서 어려일들이 떠올라 마음이 버거워졌어요.
바알신앙이 야훼신앙과 섞어서 참되게 분별하는 힘을 잃어버린 시대속,
옳은 소리를 내는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의 목소리는 꺼져갑니다.
나의 일상속에서 나는 바알을 따르고 있나 참 하나님을 따르고 있나 묻게 됩니다.
개체적으로는 일상속 참 신앙을 따르기 어려운 때에 서로를 비춰주는 함께하는 관계속,
스스로를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동무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큰 힘이구나,
잠들어있지 않게 깨워주는 힘임을 다시금 느낀 시간이였습니다.
첫댓글 그렇지요.‘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 참된 성찰과 회개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박노해 시인은 "키 큰 나무 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고 했지요.
키 큰 나무 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
깊은 강물을 건너니 내 혼이 깊어졌다
착한 벗이 있고 착한 동지와 함께 있다는 것은 이 성스러운 길의 전부입니다
좋은 님들이 있어 나는 힘을 얻고
좋은 님들이 있어 나는 날로 새로워지고
좋은 님들이 있어 내 키가 커지고 혼이 깊어지는 거예요
아무리 내 앞날이 험하다 해도 좋은 님들과 함께라면
앞으로의 내 인생도 늘 감사와 은총의 시간일 거라고 나는 믿어요
그래서 미래가 얼마나 희망 차고 가슴 설레이는지 몰라요
내가 할 일은 따로 없어요
내가 좋은 친구, 좋은 동지가 되어드리는 것밖에 다른 것은 없어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나를 알고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더 커지고 더 맑아지고 아름답고 착해지도록 하는 게 내 할 일의 전부이지요
노랫말로 붙여진 시이군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