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초기에는 막연하게 그럴거라 생각했습니다.
강좌 제목, 주인공이 ‘바울’ 이니 바울에 대한 이해,
그의 공과를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겠구나 !
저의 관심은 ‘바울’ 에 집중되었어요.
강좌가 마무리 되는 지금,
마치 영화의 반전 같은 것이 느껴지네요^^
물론, 바울의 믿음과 그의 메시지를 더 밣히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크고 더 명확하게 다가왔던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그 본질 - 신앙하는 삶’
이었습니다.
‘역사적 바울’ 을 통해 예수님 십자가 사건,
부활 신앙의 온전한 뜻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신앙하는 삶’
즉, ‘앎과 삶’의 일치는
교회(예배,교제)라는 물리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거주하고 즐기고
이웃과 관계 하는 모든 일상에서 사랑, 정의
(공의), 생명, 평화가 작동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임을 새삼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생성과 발전에서 큰 역할을 한
그 역사적 바울이 목숨 걸고 외쳤던
예수님의 가르침 !
‘사랑과 정의(공의)의 회복 – 생명 평화하는
신앙하는 삶’ 을 사는 것!
마음에 잘 머금고 바로 새길께요.
로마서 15장, 갈라디아서 2장에 나타나듯이
‘예루살렘 사도회의 안건(이방인 할례 필요 유무)’
‘안디옥 사건(베드로와 이방인 함께 식사)’
등으로 인해 바울은 기존 유대인, 개종한 크리스쳔
유대인과 갈등의 상황에 놓입니다.
성도간의 불편한 관계, 유대사회로부터의
신변 위협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방인 전도,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의 일치)을 위해
회피, 유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갑니다.
자신에 있을 찌도 모를 불이익, 핍박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 환원하면 세속의 욕망(물질, 권력,
부동산, 외모, 학벌, 음란. . )과 타협하지 않고
신앙하는 삶을 꿋꿋이 살아갑니다.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의 일치와 화합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바울은
동행한 이방인 크리스쳔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
에 들어서지요.
그리고, 이는 곧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할 구실이
되고 급기야 바울은 체포되어 로마 법정에 서기
위해 로마를 향한 긴 여정에 이릅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과정 그리고,
로마에 도착해서 재판 받으며 머무는 수 년의
기간에도 멈추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의 인생길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든
어떤 상황과 조건, 사건에서든 한결 같고
치열하게 신앙하는 삶을 삽니다.
바울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던 로마 법정은
그를 방면하지만 황제 네로는 바울을 다시
소환합니다.
‘로마 대화재’ 로 인해 로마 시민의 민심이
흉흉해지고 이곳저곳에서 반란이 번지니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정치적 희생양’ 이
필요했습니다.
로마제국의 규정, 제도에 이견 보이고
(로마신전 제사 비협조, 노예제 불인정 등)
점점 영향력 커지던 ‘크리스천’ 이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피의 살육이 자행됩니다.
일본 관동대지진에서 학살된 우리 민족의
통곡의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바울은
그렇게 휘몰아치는 살육의 악한 기운 가운데
순교 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기독교 생성과
전세계로 전파되는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편익 위해 ‘신앙을 사유화’ 하지
않고 지조 있게 ‘사랑과 정의(공의)’ 위한
신앙하는 삶을 살았던 바울에 마음 숙연해져요.
저에게 가을학기 ‘역사적 바울의 도전’ 강좌는
여러모로 큰 의미 있었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큰 혼돈 있었던 2020년,
역사적 바울이 목숨 걸고 외쳤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롯이 새기며
‘그래! ’오늘‘ 을 생명 평화하며 잘 살아가자 !
더불어 한몸 이루어 사랑과 공의 실천하며
일상을 살아내자 !’ 라고 다짐할 수 있었어요.
2020년은 인류 역사에 기억 되겠지요.
전세계 휘감은 전염병 코로나로 인해 영화에서나
볼 듯한 온갖 상황이 연출 되었습니다.
인간이 파생시킨 기후변화와 플라스틱 같은 환경
문제는 그 어느 해 보다 온생명의 삶을 위협하며
인간의 자각과 각성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성찰과 회개’ 가 작동되지 않고 오히려 부동산
가격, 주식 시장이 역사적 고점을 넘어서는 등
탐욕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출애굽하여 광야 떠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떠올랐어요.
‘불안과 두려움’ 앞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금송아지 만들어 우상 숭배하며 그들의
영혼의 정결함 빼앗긴 모습과 닮아있는 듯 합니다.
코로나로 야기된 언택트 시대와 맞물려
사회불안 요인(불평등, 빈부격차 확대, 가난의
세습 등)이 커지며 이기적 인간성, 물질만능,
종교다원주의, 이단사상의 소용돌이 속에
기독교인의 감소와 신앙의 후퇴를 우려합니다.
그런데, 그 염려의 이면을 살펴보면
기독교의 문제점을 직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 시대를 휘감고 있는 혼란은
교회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르게 가르쳐 왔는지 반증하는 사건이라 한다면
무리일까요.
예수님 가르침에 대한 실천, 신앙하는 삶의
대안적인 구조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인과응보인 듯 합니다.
저의 신앙생활 회상해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은총을 실천 없는 관념으로
그저 거룩하고 보기 좋은 이미지로 두었던 것
같아요.
나를 세련되고 맵시있게 보이게 하는 장식품
정도로 설정해 왔습니다.
‘이신칭의’ 의 본뜻 흐트러뜨리고 나를 위한
기복신앙으로 값싸게 적용했던 기억들
떠오릅니다.
30년 넘는 일제강점기에서도 친일하지 않고
지조와 절개 지키며 독립운동할 수 있었던
사람들 있습니다.
그 힘은 개인의 역량 아닌 함께 지켜주며
버티게 하는 무리(조직, 단체)의 힘에서 비롯
된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목사님께서 강의 중간중간에 강조하신
신앙인의 ‘한몸살이’ ‘한몸 공동체’ 도
같은 의미라 생각이 들어요.
목사님 고생하시며 애쓰신 강좌 통해
귀한 것들 배웠고 마음 다잡아 봅니다.
역사적 바울이 삶과 죽음으로 증거해 준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내 욕망 위해 ‘각색’ 하면 안된다는 것.
세속의 가치 겸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체념할 것 아니라는 것.
두렵고 떨리는 인생살이 지체들과 힘 합쳐
분별하며 대안 만들며 살아가자는 것.
이 시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생명평화, 사랑 정의(공의)가 구현되는
‘한몸 공동체’ 여러 곳 있다는 것....
많은 것들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마무리 9강 마치고
수강생들 짧은 소회도 나누었어요.
30대~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삶터에서
모인 형제 자매들이 인연 맺었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소명 잘 감당하길
응원하며 아쉬움 섞인 인사 나누었네요.
두 달 넘는 시간을 지내다보니 동지애가
느껴집니다^^
하나님 나라 일구는 백성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겠지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첫댓글 매번 늘 강의보다 훌륭한 후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