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의 시점에서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위인으로만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이 인간이 위인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가하는 논쟁이 많다. 즉 원주민 수천 명을 학살하고 노예로 팔아치웠으며 각종 재물을 약탈해간 인간쓰레기이자 천하의 개쌍놈일 뿐이었다는 것.
위인전에서는 그의 탐험 목적이 순수한 탐구심이었다고 묘사하지만 앞서 서술했듯 그의 1차 원정의 진정한 목적은 순수한 탐구심이 아니라 부(富)였다. 그리고 그는 순진무구한 '인디언'[4]들을 접하면서 원주민들이 가지고 다니는 금에만 관심을 가지며 1차 원정을 끝냈다
문제의 2차 원정부터 콜럼버스의 탐욕이 드러난다.[5] 우선 그는 1차 원정에서 돌아올 때 선원 30명 가량을 아이티에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이사벨라 여왕에게 이번 원정에서는 엄청난 수의 노예와 금을 얻을 수 있다며 1차 원정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원조를 받아낸다.[6]
이렇게 2차 원정이 시작되었으나 막상 다시 아이티로 돌아와보니 일전에 남겨놓은 30명 가량의 선원들은 병으로 죽거나 원주민들에 의해 죽어있었다. 그런데 딱히 원주민 잘못이라고 하기 어려운게 선원들이 한 사람당 최고 5명씩 원주민 여자를 거느리며 금을 찾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린다든가 했기 때문.[7]
이후 콜럼버스는 안전을 위해서응? 호전적인 부족뿐만 아니라 보통 원주민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한 마을에서는 700명 가량을 자비도 없이 모두 생포해 창칼로 찔러죽였다. 그 후로도 학살은 계속 이어졌다.[8] 3, 4차 원정이 계속될수록 콜럼버스의 후계자들은 점점더 잔인해져선 마스티프라고 하는 맹수사냥용 초대형견을 데리고 와서 원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노예로 팔리거나 14세 이상의 원주민들은 석 달마다 콜럼버스가 제시하는 금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시 손이 잘리는 형벌을 받고 과다출혈로 죽어갔다.
콜럼버스가 오기 전 30만명의 아이티 섬 인구가 2년만에 10만 명이 죽고 나중에는 결국 500명밖에 남지 않아 처음에는 원주민 노예들을 수출하다가 나중엔 역으로 흑인노예들을 수입해왔다.[9][10]
위에서 서술되었듯이 콜럼버스 자신은 그 땅이 중국의 남서부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중국 황제나 황금 광산을 찾았지만 당연히 나올 턱이 없었다. 사실 중국이 아니었던게 콜럼버스에게는 다행이었던 것이, 만약 진짜 중국은 물론이고 조선이나 일본에서도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굴었다간 대포 몇 개 들고 깔작 거리는 해적들을 순삭했을 거다.
1519년 다른 스페인 관리들이 본국에 이 학살을 알렸지만 당연하게도 충격적이게도 본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애초에 당시 백인들의 눈에 원주민이나 흑인들은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11] 이후 콜럼버스는 죄수선에 실려서 소환조치 되었다. 원주민 학살건도 있지만 실은 그렇게 사망자를 많이 내고도 황금을 전혀 건지지 못했다는 점이 더 문제시되었다.황금만능주의?
더구나 별로 건져온 것도 없는 주제에 자기가 정복한 땅의 총독 자리와 지도자 자리를 요구했으며, 해군 제독이라는 지위를 주장하면서 이것을 자식들에게 세습시켜 달라고까지 요구했고, 사업에서 얻은 이득의 1/10은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주는 것도 없이 얻어만 먹으려는 심보였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12] 그외에도 부하 선원이 발견한 섬을 자기가 발견한 것으로 협박을 해서 거짓 보고한 적이 많다. 그리고 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왔던 원주민들을 강제로 끌고가서노예시장에 팔아넘긴 기록도 있다. 한마디로 인성 자체가 쓰레기 양아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작자를 위해 쉴드를 쳐보자면, 원주민들은 자연친화적이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유럽 침략자가 그들의 유토피아를 파괴해버렸다는 나이브한 주장은 영화 아바타에서나 존재하는 일로 사실은 원주민들끼리의 전쟁도 빈번했으며 그들이 너무 많이 사냥해서 멸종되어버린 종들도 많았다.[13]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럽 침략자들의 침략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고, 또한 콜럼버스가 저지른 짓은 당시 기준으로 봐도 꽤나 사악한 짓이었다. 오히려 학살자로 널리 알려진 에르난 코르테스가 훨신더 온건하게 통치를 했다. 비록 아즈텍 제국 때문이지만 자신에게 호의적인 원주민들은 확실히 보호했고 의도적인 학살도 크게 없었다.
간신히 누명을 벗고 탐험에 나섰지만 그의 후원자이던 이사벨라 1세가 죽자마자 몰락하게 된다. 당연히 무수한 빚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결국 겨우 몇 해 사이에 그야말로 몰락하여 아들 디에고와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게 된다.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매독으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참고로 콜럼버스의 시신 일부가 있다고 전해지는[14]도미니카 공화국에선 당당하게 그가 매독으로 죽었다고 설명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이곳을 찾은 매독 연구 관련 책자 지은이에게 현지 길라잡이도 비웃듯이"그가 매독으로 죽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아닙니까? 그나마 이게 하느님이 내리신 작은 벌입니다."라고 씹어준 적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제3회 항해(1498∼1500)에서는 트리니다드 섬과 오리노코 하구(河口)를 발견하였으나, 히스파니올라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화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항해에서 그는 온두라스와 파나마 지협(地峽)을 발견하고 가장 고생스러운 항해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1504년에 이사벨이 죽은 뒤 그의 지위는 더욱 하락하였으며, 그의 직책의 세습까지도 인정되지 않았다.[15]심지어는 20세기 학자들조차 그를 학살자라고 비판했다.만일 시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창작물이 나오면 아마 후손놈한테 두들겨 맞아죽을 게 뻔하다.
10월 12일 그의 아메리카 '발견'을 기념해 남북 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기념일로 지정되어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공휴일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10월 둘째주 월요일을 콜럼버스 데이라 하며 기념한다. 기념일이나, 쉬어도 되고 안 쉬어도 되는 기념일로 지역에 따라 공휴일이기도 하고 그냥 기념일이기도 하다. 웬만한 직장/학교는 이날 안 쉬는 지역에서 만약 이날 쉬는 곳이 있으면 '우리 직장/학교는 널널합니다 ^^'라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일부 지역은 공휴일이므로 직장/학교도 다 쉬게 되어 있다.
미국에서 하와이, 알래스카, 사우스 다코타의 세 주는 콜럼버스 데이가 없는데,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과 관계가 없는 지역이며, 사우스다코타는 이름의 유래에서 보듯 원주민이 많은 지역이라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는 이 날을 "종족의 날(dia de la raza)"이라고 하는데,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처음 만난 것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으로 여러 나라에서 공휴일로 되어 있기도 하나, 원주민들은 왜 그런 개쌍놈을 기념하냐며 학을 떼기도 한다.
최근들어 원주민의 날로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그의 시신은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어 있는데 그의 유언인 '죽어도 스페인땅 안 밟겠음 흥'을 고려하여 그의 관은 현재 4명의 동상에 의해 지면으로 부터 붕 떠서 받들려있다. 스페인이 이러한 무리수까지 두면서 그의 시신을 운구한 이유는 비록 이 인간이 악행과 온갖 뻘짓을 자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황금기는 이 인간의 행적으로 부터 시작되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