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러니까 2020 년 초봄
요즈음 노부모는 누구라 할것없이 요양원이 대세라는
주위의 말에 힘입어 거리낌 없이
빛의 속도로 88세 엄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갔다
간단한 수속으로 엄니는 미니빌딩 5층에 수용되었고
난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서야 엄니가 "보편적으로 잘 모셔진" 게 아니라
그럴듯한 신 개념의 "고려장"으로 버려졌던 것임을
뒤늦게 깨닫고 속으로 오열했다
아니, 뒤늦게 안 게 아니라 첨부터 잘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모른체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다
요양원/ 노을섬
엄니를 좁다란 실내 휠체어 눈초리들의 틈새에 억지로 밀어 놓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서 층계를 내려가면서
내가 아찔하게 발을 헛딛을 계단의 허공을 생각했다
엄니는 처녀시절 복숭아밭의 복사꽃이었다
복사꽃 미소에 반해 엄니를 아내로 맞아들인 아버지는
웃음의 눈꼬리가 처지는 날이 거의 없어 보였다
사진첩 흑백사진이 과거를 리메이크해서 그렇게 알려 주었다
장남인 내가 뒤를 돌아보지 않았음으로
아래 동생들도 자연스레 앞만 보고 걸었다
다들 철학과 교수 같은 표정을 지었음으로
그날은 꽤 그럴듯하게 잘 포장된 하루였다
그런 엄니가 사망했다는 전화를 요양보호사에게 받았을 때
난 울지도 웃지도 않고 네? 그래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왜 그 자리에서 난 한참을 머뭇거렸을까
어떤 가책이 내 앞을 가로막고
위선의 허울을 마구 흔들어댔기 때문일까
복사꽃 엄니는 복사꽃 피기 직전의 이른 봄날에
차가운 먼지바람의 안내로 화장장으로 실려갔다
............................................
이 시를 오늘 썼다
참회의 눈물이 새어나오기 전에
복사꽃 피는 계절이 언제 내 앞에 도착할까를 먼저 생각했다
첫댓글 음~~~
이 풍진 세상에 ...
그럼에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참회의 마음 전할 수 있음에...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재회할 수 있는 문도
열려있다는 생각 잠시 해봅니다.
반갑습니다!
이곳 "삶의 이야기" 방을 거의 지나치기만 했지만
님의 진솔하고 해박한 글들이
지나가는 발목을 잡아채기도 했습니다
늘 온유하고 행복하시기를~~
요양원이 처음 생기기 시작했을 땐 아마도 다들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자식들의 힘을 덜어주고 부모님께도 좋은 돌봄 시설이라고.
요양원에서 학대받는 노인에 대한 뉴스를 보면 참담한 맘에 내엄니는
절대 보내지 않겠다 다짐을 합니다.
치매 초기에 모시고 온 엄니가 12년째 저와 지내시지요.
그 마음 변하진 않았지만,
과연 엄니의 마지막을 저의 집에서 보내드릴 수 있을지는 하늘만 아시겠지요.
그러나.
꼭 그렇게 되시길 기도하고 또 기도하지만,
과연 나의 마지막은 장담을 못하는 것도 현실이지요.
반갑습니다!
리진님 같은 효녀를 둔 어머님은 어떤 복을 타고 난 분일까를 잠시 떠올려 봅니다
울 엄니가 만약 치매를 앓았다면....... 하는 상상은~!!!
존경합니다 그리고 위로와 격려를!~
그래서 저는 요양원이 아닌 요양병원에 모셔서 6년을 더 사셨지요
반갑습니다!
나중에 울 엄니도 요양병원에 모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모시진 못했습니다
늘 강건 건필하시기를!~~
@노을섬 요양병원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가야하는
최종의
곳이라 들었습니다.
요양병원보다는
요양원이 어머님께서
운신이 더 자유로우셨을겝니다.
@요석 참 자상도 하신 요석님
상큼한 하루 되셔요~~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시다가
3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집ㆍ병원 ㆍ요양병원으로
옮겨 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불효자
죄인이 부모님을 모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아보니
짧은 기간이었지만
시부모님 대소변 받아내고
살아 온 기간이 가장
값진 시간이었던 것은 틀림없는데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에
살아가면서
늘 가책을 느끼게 되더이다ㆍ
특히
명절 밑엔 그리움의 대상이
친정엄마도 아닌
시어머님 딱 한 분입니다ㆍ
함께 했던
추억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된 셈이죠
이 쯤해서
우리나이에 겪은 자식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신 글에 새벽이 열립니다ㆍ
엇 반갑고 아름다운 이름 윤슬하여!~
이름만으로도 넉넉한 시적 분위기에서
이런 아픔과 그리움이 공존하고 있었다니요
인생이란 해답없는 숙제들의 연속
그래도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살 보듬고 있습니다~~
우리 되도록 이면 요양원은 가지 말고 버팁시다
요양원 갔다가 후회하고 몇년만에 다시 나오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유튜브를 읽어보면 요양원에 되도록 가지 말라고 말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참조 하세용
충성 우하하하하하
반갑습니다!
이름도 선이 굵은 태평성대!~
나도 친구들에게 가끔 충성! 하며 살가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삶의이야기방 에서 노을섬님의 글을 보게되어 영광 이에요
모시고 간 사람의 자유와
남겨진 분의 침묵에서 세월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한 집안의 봄과 죄책감이 함께 피었다가
끝내 지지 못한 채 남아있는 아련함에 복사꽃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
오우 리즈향!~
한때 음감방에서 내가 신데릴라로 모셨던 향내나는 이름의 대명사!!
댓글로 쓴 시어들이
반짝반짝 빛나기도 했던~
시적 감수성은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 한 집안의 봄과 죄책감이 함께 피었다가/ 끝내 지지 못한 채 남아있는 아련함"으로
날 채찍질 하기도~ ㅎ
마음이 찡 하네요.
복상꽃.......
저도 지금 98세 엄니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번주 등급을 받아서 이번월요일부터 요양보호사
께서 오셔서 케어를 해주십니다.
저도 언제 이런일이 현실로 다가올까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반갑습니다!
98세 엄니요??
참으로 대단한 아들이십니다
존경스러워요~~
복사꽃 피기 직전 먼지바람 속에서 떠나신 어머니...
시 속에 담긴 그 비정한 봄날의 풍경이 제 마음에도 차갑게 머무네요.
스스로를 향한 날카로운 가책이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이었음을
시를 읽으며 느낍니다.
노을섬 님의 참회의 시가 누군가에게는 부모님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큰 경종이 될 것 같습니다.
도빈 아우님 방가!~
내가 체험하지 못한
특별한 동굴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 아우님
그 깊이와 너비를 도무지 알수없는 무한 신비의 그곳!~
노을섬님 어머님은
복사꽃이 피기 전에
먼 길을 가셨군요..
울 엄마는 벚꽃이 시작되기 전에
홀연히 가셨기에
49재 내내
벚꽃 속을 누비며
엄마를 배웅했었답니다.
노을섬님도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이젠
마음 아파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에게 다가 올
일들이 어찌 펼쳐질지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반갑습니다!
슬픔을 풍경으로 유려하게 각색시킨
노련한 필력의 소유자이신 요석님
님 덕분에 때 이른 벚꽃 놀이를 상상해 봅니다
어떤 슬픔도 눈부신 벚꽃으로 잘 갈무리 되겠기에~
가슴이 먹먹해져서
손가락이 허공에 머물다
글자들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글자 하나하나에 물기가
배어있어 건들면 뚝뚝
떨어질것만 같은.
어쩔수 없이 저도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지 8년된
엄마가 생각나네요.
가끔씩 '엄마 미안해'라고
읊조리게 되는 불효녀의
마음으로요.
노을섬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그동안의 시를 통해서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번 복사꽃이 필때는
어린 시절의 노을섬님으로
돌아가 복사꽃 닮으신
젊은 엄마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반가워요!
이 세상의 엄마들은 다 같은 꽃다운 꽃입니다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어머니!
실비님 엄니는 처녀적엔
담장 밑에 핀
왕벚꽃 같은 분이었을 거란 생각이 자꾸 어른거리네요~~
넉넉한 하루 되시길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 시대 자식들이라면 다 노을섬님 같은 심정들입니다
핵가족화 시대에 어쩔 수없는 선택입니다 또한 우리들도 그 곳으로 가야 함을
알지요 제 자식이 부모 수발에 지친 얼굴을 어찌 봅니까 제 발로라도 가야지요
그럼에도 노을님 글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익숙해서 평안한 내 집 내 침대에서 자식들에게
둘러 싸여 죽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은 꿈같이 먼 과거 일이지요 글 잘읽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운선님,
내가 잘 알지요 주변에서만 맴돌아서 그렇지
모든 면에서 날 저만치 앞서 가시는 분~
숙제도 이렇게 어려운 숙제가 없습니다
곧 내 자식들 하고도 맞닥뜨릴 비장한 운명의 한판 승부?ㅎ
그냥 일단은 웃고 넘기는 게 최상일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