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성건축설계도 작성
정조는 재위 18년인 1794년에 화성 건설의 첫 삽을 뜨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 해는 죽은 사도세자가 회갑을 맞는 해였다. 그 해 화성 건설을 시작해 10년 후 사도세자가 칠순을 맞는 갑자년(1804년)에 완공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때 15세 성년이 되는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사도세자의 추숭과 대대적인 정치개혁을 단행하면서 화성에서 모친 혜경궁과 편안한 노후를 보낼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서 정조는 용의주도하게 일을 추진했다. 먼저 이 일을 추진할 인물을 발탁했다. 당시 부친의 묘소 곁에서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던 정약용에게 사람을 보냈다. 화성건설의 계획서를 만들어 바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조는 정약용이 2년 전 한강 주교를 설계했으며 공학에 밝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화성 설계 기획서를 작성하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이에 정약용은 중국의 윤경이 지은 보약(堡約)과 유성룡이 지은 성설(城設)을 참고해서 기획서를 작성했다. 정약용의 성설이 바로 화성건축설계도였다. 정약용의 성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강제 부역이 아닌 임금 노동을 택한 점이었다. 이것은 백성을 진정 사랑하는 정조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과거 조선의 모든 축성은 백성의 강제부역으로 이루어졌으나 화성은 역부들의 임금노동으로 축성되었다. 또한 임금노동이지만 성과급방식의 임금노동으로 일을 더 하는 사람에게 더 지급하는 것으로 효율을 기하고 불평이 없게 하였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궁중 비장 도서 “도서집성”과 “기기도설”을 내려 보내 주어 축성공사를 과학적으로 건설하게 하였다. 도서집성은 청나라 강희제 때 만든 백과사전이고, 기기도설은 스위스 선교사이지 과학자인 요한 테렌츠가 지은 물리학의 기초에 관한 책인데 도르레의 원리를 이용한 각종 기계 장치가 그림과 함께 실려 있었다. 정조는 이 책들을 읽어보고 무거운 물건을 끌어당기거나 들어 올리는 인중기와 기중기를 정약용으로 하여금 설계하게 한 것이다.
(3)장용위를 장용영으로 확대 개편
정조가 즉위 초 암살 시도 사건을 겪은 후 당장 취한 조치가 암살 방지를 위한 자신의 친위경호부대인 장용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암살 방지뿐만 아니라 노론이 쥐고 있던 군권에 대항한 측면도 있었다.
이제 화성 설계도를 손에 쥔 정조는 두 번째 사안을 처리하려 했다. 그것은 화성 방위를 위함과 더불어 완전한 군권을 손에 쥐어 노론을 견제하고 약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정조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은 서울에 주둔하는 장용영과 수원에 주둔하는 장용외영을 말하는데 장용외영이 바로 수원 화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군이었다. 이러한 장용영 강화에 대해 노론이 의구심을 나타내자 정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장용영을 설치한 것은 호위 기구를 중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생각지 않던 사변에 대비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스스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뜻이 있어서 병신년(즉위 해)초부터 누누이 생각하고 계획하여 경상비용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이제 하나의 큰 군영을 이루게 되었다.(일득록)”
여기서 말한 사변이란 군사 쿠데타나 정조에 대한 암살시도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론 측에서 볼 때에는 생각지 않던 사변의 대상이 자신들이 될 우려가 있었다. 경호군을 대폭 강화한 정조가 그 무력으로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명분은 사도세자의 복수였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내 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러 차례 암살 위협을 겪은 임금이 호위를 강화하겠다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론은 예산 문제를 거론하면서 수원 장용외영 설치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총명한 정조는 이런 문제가 제기될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정조는 10여 년 전부터 극도의 내핍으로 왕실 비용을 줄여 왔다. 그 아낀 비용으로 조성한 내탕금으로 장용영 창설 비용을 대겠다는 것이었다. 정조는 또한 군사비 중 낭비 요소가 있는 부분을 철저히 단속해 예산을 확보해 두었다고 했다.
경비를 이유로 장용영 창설을 반대하던 노론은 왕실의 내탕금과 낭비 예산을 돌려 그 운영 경비를 내자 더 이상 반대할 구실이 없었다. 이렇게 완성된 장용영은 최고의 군기와 장비를 갖춘 조선 최정예부대가 있었다. 정조가 즉위후 몇 번의 암살위협과 노론이 장악한 정국에서 바람 앞에 등불 같았던 왕권이었다. 언제 노론이 반정을 일으켜 자신을 폐위시킬지도 모른다는 위협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정조는 절취부심하고 노론에 맞서 왕권을 강화할 착실한 준비를 오랜 세월에 걸쳐 해 왔다. 그 결과로 이제 노론도 감히 왕권을 함부로 위협하지 못 할 정도로 친위 경호부대인 장용영을 창설한 것뿐만 아니라 이제 그 군사력을 확대 개편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장용외영의 창설은 1804년 정조가 왕위를 순조에게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수원 화성에서 노후를 보내게 되므로 수원에서의 군사력이 정치적으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정조가 바라던 장용외영까지 설치하게 되었음으로 이제 화성 건설을 위한 외적인 준비 작업은 다 된 셈이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9.03 10:27
첫댓글 드디어 수원성을 건립하게 되는군요.
1794년 이니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했지요.
꼼꼼하게 찬찬히 준비 잘 되어갑니다.
노론이 언제 없어지는지 궁굼합니다.
정약용도 이 당시 사람이군요.
구리 넘어서 정약용 묘소 기념관이 있지요.
어찌 넘 어려서 읽어서 역사의 거미줄이
잘 안역어 집니다.
우와 여기서 조선최고 실사구시 실학자 정약용이 등장하고
화성건설 중책을 맡아 성공리에 완수하고
암살 방어 친위경호부대 장용영도 새로 창설하고 이하등등
위 모든 계획 사업에 들어가는 자금을 10여년 동안 절치부심 안먹고 안쓰고
근면검소한 생활로 알뜰살뜰 아끼고 저축했군요 용의주도 미래를 내다본 총명한 현명한 군주입니다
정조의 미래 계획 사업 승승장구 기원하며
다음 연재편이 흥미진진 기대 됨니다
수고 했습니다
수원성 건설에 대한...TV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네요...
인금.휴가..산재..등등...완벽한 관리하에 건설되었다는....
잘 보고 갑니다...
기대 만땅 입니다...!
정조대왕이 10년만더살았어도 조선의역사가 바뀌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오랜 숙원이였던 수원성
드디어 건립되네요
검소한 생활로 아끼고 저축
역시나 총명하고 현명한 정조
정약용이 화성건설의 중책으로
성공리에 완성
친위경호부대 장용영 창설
미래계획 사업 진행 완벽한 관리
대단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