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울릉도에는 진인사 대천명이 아닌, “진인사 대헬기”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십수년전, 울릉의료원에서 근무하시던 원장님이 울릉도를 떠나면서, 모 신문사에 기고했던 칼럼 제목입니다. 파도가 높아 여객선의 입출항이 통제된 상황에서, 촌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가 발생 했을 때,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해놓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의료시설이 더 뛰어난 종합병원으로 후송하기위해, 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섬주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섬마을 주민이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풍랑주의보 상황에, 배가 못 뜨면 헬기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길은, 이길 뿐이기에, 애타는 마음에 주민들은 헬기를 기다려야 했고,
애써 육지에서 이륙한 헬기는, 울릉도까지 와서 강한 바람으로 착륙을 하지 못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실패하고 되돌아가는 헬기를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반복된 그런 광경들을, 우리 섬주민들은 지켜봐야 했던 아픈 과거들이 있습니다.
닝겔주사 하나에 의지하여 실낱같이 숨을 쉬는 어린생명들,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죽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가슴을 움켜쥐며 울분을 토해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들은 울릉도주민들 만이 아닌, 우리 섬주민 모두가 겪어야 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섬주민들의 애닮은 삶입니다.
태풍 내습시만 아니면 파고 4미터 이상은 거의 없는 해상 기상 속에, 3천톤이상의 대형여객선만 있으면 겨울철에도 운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선사의 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500톤급의 소형여객선만 고집하고 있는 현실 속에, 우리 울릉주민들은 겨울철의 자유로운 이동권 보장을 위해, 우리 주민들 손으로 여객선을 만들자고 의기투합을 했고, 무언가의 모범 답안을 얻기 위해, 217키로의 동해바다를 건넜고, 350키로를 달려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울릉도주민여객선추진운동본부는 지난 1여 년 동안, 겨울철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권 보장을 위해, 주민들이 주를 모아 우리 주민들 손으로 여객선을 취항시키자고 할 때, 어느 지역 어르신은 이런 말을 우리에게 했습니다. 배를 가져와서 운항을 한다고 치자, 그 느린 배가 과연 수익성이 있겠느냐? 며 강하게 질타하실 때 저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르신!! 오죽하면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려하겠습니까? 그 배가 수익성이 없어 파산의 위기가 오더라도, 먼 훗날, 우리들의 지역후배들과 그 자식들에게 오래전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권 보장을 위해, 우리선배들이 배를 들여온 적이 있었고, 결국 수익성이 없어서 그만 둔일도 있었다는 말은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과가 좋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래도 시도도 해보지 않고, 이렇게 우리 후배들에게 부끄럽고 힘든 삶을 물려줘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르신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십시오. 말씀을 드리는 동안, 그 어르신은 아무 말씀 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어르신은 우리 단체를 위해 그 누구보다 더, 열정을 가지고 지역 경로당을 다니시며 주민여객선취항을 위한 홍보위원이 되어 계십니다. 그리고, 그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을 하고 다니십니다. 우리 노인네들이 지역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지역 어른들이 되자고 말입니다.
얼마전 제 장인어른이 육지의 병원에서 지병이 악화되어, 임종을 지켜봐야할 상황이 왔습니다. 하지만 기상악화로 배가 뜨지 못해, 집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육지로 운항하는 화물선 사무장이 전화가 왔습니다.
한사람은 태워서 육지로 갈 수 있다.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밤중에 급한 짐을 챙겨, 집사람을 화물선에 홀로 태워주고 떠나는 화물선을 보며, 한없이 나약하고 힘없는 제자신이 미웠습니다.
1976년, 1월17일. 울릉도 천부 앞바다에서 주민들을 태운 만덕호가 거친파도에 전복되어 3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을 했습니다. 40년이 넘은 지금, 부모님을 차디찬 겨울 바닷물에 떠나보내고, 고아로써 힘든 삶을 살아왔던 어린 꼬마들 중에는, 제 친구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울릉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배라는 것은, 엄청난 아픔으로 점철된 대상물일 것입니다.
우리 울릉도 섬주민들은 겨울철 이동권 보장을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선사에서는, 비수기에 속하는 겨울철에 50일간의 선박정기검사를 받기위해 운항중단을 하면서, 두달 동안은 여객선입항이 거의 없는, 말 그대로 적막강산입니다.
이 기간 동안은, 육지와의 왕래는 감히 장담 할수 없는 그런 뱃길입니다. 혹여 응급환자라도 발생을 하면, 기상상황이 그 환자의 삶과 죽음의 기로를 결정하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이런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홀로 울릉도에서 저와 같이 사시는 어머님은, 여객선이 휴항하는 11월부터는 육지의 누나집에서 겨울을 지내시고, 봄에 울릉도로 다시 돌아오십니다. 87세의 어머님에게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이 저의 어머님만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자식의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 겨울철의 고된 피난길인 것입니다. 겨울철 정기선박검사로 인한 여객선 휴항의 대체선박은, 500톤급의 소형여객선으로 파고 3미터 이상에서는 출항통제를 받는 여객선이라, 파고가 높은 겨울철의 특성에, 열흘에 한번 출항을 할까 말까한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내년 2월이면 2천300톤급의 하나뿐인 대형여객선이 선령25년으로 운항이 중단되면, 앞으로 500톤규모의 여객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그늘아래 숙명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힘없는 우리주민들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섬주민 여러분.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에서 우리 섬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모양입니다. 8월8일을 섬의 날의 지정을 하고, 이렇게 의미 있고 성대한 제1회 기념식을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이를 계기로 법률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우리 섬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각 고장마다 지역에서 필요한 주민숙원사업들을 서로 고민하고 협력하여, 우리들의 부모님과 내가살고, 우리 자식들이 살아가야 하는 고향땅에서 부끄럽지 않은 지역 선배들이 되어,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고향땅을 만들어 물려줍시다.
끝으로, 이번 행사를 주관해주신, 한국글로벌섬재단과 전국섬주민협의회,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들께 섬주민의 한사람으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송나라 학자 육상산의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백성은 가난한 것에 노하기보다는 불공평한 것에 화낸다”라는 고사성어에 귀 기울이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