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mountain
도봉산 연기봉 배추흰나비의 추억 리지
바위의 모든 것 만끽할 수 있는 숨은 보석
글・사진 이영준 기자
한국 알피니스트들의 메카라고 하면 대부분 북한산 인수봉을 꼽지만 실상 도봉산에도 주옥같은 바위코스들이 많다. 특히 도봉산의 대표격인 선인봉을 비롯해, 만장봉, 주봉, 오봉, 우이암 등 크고 작은 바위들은 이미 한국 알피니즘의 초창기부터 코스가 개척돼 한 축을 이루어왔다. 북한산의 바위들은 우람한 자태로 듬성듬성 솟아 굵고 남성적인 이미지라면, 도봉산은 서로 연결되는 듯 하면서도 또 따로 떨어져있어 오밀조밀하고도 섬세한 여성적인 면이 느껴진다. 이중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740m)과 그렇게 붙어 연결된 봉우리가 바로 연기봉이다.
1피치 시작부분을 선등하고 있는 정영도씨. 첫 볼트가 멀기 때문에 크랙에 캠을 설치해야 한다.
유영직씨가 4피치 오프 위드 크랙 구간을 오르고 있다. 크랙이 너무 커서 설치할 확보물이 마땅치 않지만 과감하게 바깥으로 나와 작은 홀드들을 이용해 넘어서면 어렵진 않다.
‘연기봉’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지도에도 따로 나오지 않는다. 그럴 것이 자운봉과 마치 한 덩어리처럼 붙어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이것이 자운봉의 장다름(전위봉)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상에 올라보면 두 봉우리는 각기 다른 독립봉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연기봉은 도봉계곡쪽 사면이 높이 200여 미터에 달하는 미끈한 벽으로 되어있어 암벽등반 코스로도 그만이다. 이런 암벽을 클라이머들이 그냥 두고 보았을 리가 없다. 이미 1970년대 초반 KCC 멤버들이 초등했는데, 당시 구인모(한국산악회), 이인정(대한산악연맹 회장) 등이 등반에 참가했었다. 하지만 연기봉은 선인봉에 비해 어프로치가 길고 등반 후 하산도 다른 루트들에 비해 오래 걸리는 탓인지 그다지 많은 이들이 찾지는 않았다. 1980년대 몇몇 클라이머들이 연기봉 왼쪽 벽에 인공등반 루트를 개척하기도 했다고는 하나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1998년 연기봉에서 자운봉까지를 이으며 생겨난 ‘배추흰나비의 추억’이라는 코스는 이 바위에 다시 사람들이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김기섭씨를 중심으로 경원대산악부 회원들이 개척한 이 길은 바위의 날등을 타고 오르는 리지 코스라기보다는 암벽등반 코스라고 해야 옳다. 단지 피치 종료지점마다의 테라스가 널찍하고 중간에 하강 구간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여느 바윗길과 다르지 않은 난이도를 지니고 있으며, 그만큼 장비와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피치는 시작부분 크랙을 넘어서 첫 볼트를 지나고 나면 계단식으로 홀드와 스탠스가 좋아진다.
1피치 확보지점에 올라서자 갑자기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조현봉씨가 테라스에 올라서고 있다.
붐비는 선인봉에 비해선 한적한 코스
봄을 맞아 ‘배추흰나비의 추억’을 찾아간 사람들은 10명이나 되었다. 마침 함께 등반하기로 했던 대구 출신 클라이머 유영직(한국산악회)씨가 후배와 선배들을 연락 닿는 대로 데려와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일명 ‘포돌이 광장’에서 채비를 마치고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오르는 사이 등짝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갔지만, 볕은 그리 따스하지만은 않았다. 며칠 동안 변덕스런 날씨 속에 눈이 내리기도 하고, 세찬 바람이 불기도 하는 등 ‘이상한 계절’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취재날도 일기예보에서는 역시 눈과 비가 예상되어 있었기에 우리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만월암 위쪽으로 난 좁은 계곡은 군데군데 아직 녹지 않은 잔설들이 남아있는데다 며칠째 간간히 내린 눈과 비로 바위가 젖어 미끄러웠다. 출발지점부터 1시간 30분여 어프로치 끝에 등반 시작지점인 넓은 야영터에 닿았지만, 곧바로 하늘이 어두워지며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2피치를 선등 중인 정영도씨. 2피치는 10미터가 채 안되는 길이다.
2피치와 3피치 사이의 하강지점. 줄을 잡고 내려서서 건너편 바위로 다리를 벌려 넘어가야한다.
하지만 지난 밤 대폿집에서 내기 끝에 오늘 선등자에 당첨됐다는 정영도씨는 아랑곳 않고 장비를 챙기더니 곧바로 바위로 가 붙었다. 며칠 전 5.13을 끝냈다는 그는 로프 두 동을 매달고도 날렵한 몸짓으로 주저 없이 미끄러운 바위를 유연하게 올라 공제선 너머로 사라졌다. 일행이 10명이나 되었기에 후등자들은 자기확보를 위한 어센더 등을 이용해 등반하며 빠르게 고도를 높였다.
2피치까지는 그나마 쉽게 올라설 수 있는 구간이다. 그러나 3피치부터는 조금 난이도가 있는 등반을 이어가야 하는데, 특히 3피치 상단부 직벽을 넘어서는 게 그렇다. 그 전에 2피치 종료지점에서 조금 걸어간 곳에 박혀있는 볼트 하나에 의지해 아래로 5미터 가량을 내려서야 한다.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가기엔 다소 위험하기 때문에 하강하는 것이 나은데, 완전히 아래까지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 반대편 바위로 건너가게 된다. 때문에 하강 중에도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 쉽게 건너갈 수 있다.
4피치 시작지점은 나무를 이용해 밟고 일어서면 좋은 홀드들을 이용할 수 있다.
4피치는 밴드를 잡고 트래버스한 후 볼트에 확보하고 오프 위드 크랙으로 진입한다. 큰 사이즈의 캠이 필요한 곳이다
정영도씨는 3피치 재밍이 잘 되는 하단부 크랙은 쉽게 올라서더니만 일명 ‘볼트따기’ 구간인 상단부에서는 머뭇거린다. 아래쪽에서 지켜보던 유영직씨가 “볼트를 따라”고 외쳐보지만, “그런 것 해본 적 없다”는 대답뿐. 결국 한두 동작을 자유등반으로 올라서보다간 볼트를 잡고 아슬아슬하게 테라스로 올라섰다. 어쩌면 세계 어디에서도 써먹지 않는 등반기술일 것 같은 ‘볼트따기’는 우리나라, 특히 인수봉과 선인봉을 중심으로 한 서울에만 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구만 해도 짧은 페이스가 대부분이라 처음 개척 때는 피톤에 의지해 인공등반을 했을 테지만 나중에 자유등반 코스들이 된 후에도 이 ‘볼트따기’라는 기술이 사용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등반거리가 35미터가량 되는 4피치는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홀드와 스탠스가 좋은 밴드를 트래버스 한 후 어깨가 들어갈 만한 넓은 크랙을 올라 위쪽 직벽에 가까운 사선크랙을 따르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선등자는 오프 위드 크랙에 설치할 만한 넓은 확보장비를 준비하지 않았기에 두 번째 볼트에서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과감하게 크랙 바깥쪽으로 나와 벙어리 홀드를 이용해 레이백 자세를 취하며 아슬아슬하게 그 구간을 돌파했다.
장승필(한국산악회 부회장)씨가 마지막 피치를 등반 중이다. 그는 칠순의 나이에 올 여름 아이거 북벽을 가기 위해 맹훈련중이다
4피치 넓은 크랙부분에서는 과감한 동작이 필요하다. 선등자는 리지화를 신었을 경우 작은 스탠스를 이용하기 힘드므로 아예 크랙 안으로 들어가 팔꿈치로 재밍하는 게 편하다.
크랙, 페이스, 슬랩, 침니 등 모든 바위 체험할 수 있어
지금까지 올라온 길들이 크랙, 페이스, 반침니, 인공등반 구간 등 그래도 잡고 디딜 곳들이 있었던 반면, 쉽고 짧은 5피치를 지나면 나오는 6피치는 대미를 장식할만한 짭짤한 슬랩이다. 등반거리가 45미터 가량으로 로프 한 동 대부분이 필요한데다가 난이도는 5.10급, 고도감도 커 선등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가장 탁 트인 경치가 펼쳐지는 구간이기도 하다. 특히 만장봉과 눈높이를 함께하며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내리던 눈발은 그쳤지만 바위에 녹아 살짝 젖어있어 슬랩 등반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특히 세 번째 볼트 이후로는 간격이 멀어 더욱 그랬다. 선등 중인 정영도씨를 아슬아슬하게 바라보는 사이, 어느덧 공제선 너머로 사라져간 그에게서 완료 소리가 울려나왔다.
우리는 바로 앞에 솟은 자운봉은 더 이상 오르지 않기로 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등반을 마치고 내려갈 듯 했다. 완만한 슬랩으로 짧은 하강 후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나무에 로프를 걸고 왼쪽 계곡으로 내려서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와 만났다. 비로소 하늘은 맑게 개었고, 볕은 따스했다.
뒷줄 왼쪽부터 유순준 장승필 장기수 정영도 유영직 조현봉씨. 아랫줄 왼쪽부터 이환주 이진아 안병훈씨. 연기봉 정상에서 기념촬영
첫댓글 요때가 안덥고좋았는되 요줌넘~~더워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