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treme mountain
아마다블람 동벽
우리는 수직을 거슬러 가는 한 마리 연어였다
글 신동석 사진 유학재
정상등정은 실패했다. 하지만 출국부터 귀국까지 참 즐거운 등반이었다. 총30일간의 원정등반 기간 중 실제 벽에 매달려 등반을 한 기간은 달랑 나흘. 그 나흘간의 엄청난 고생을 모두 잊게 해줄 정도로 이번 등반은 즐거웠다. 원정 기획 단계부터 국내 준비기간, 네팔 도착 후 베이스캠프까지의 카라반 기간,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쉬지 않고 내린 눈이 그치길 기다린 3일, 눈이 그치고도 더 기다린 일주일, 실제 등반과 하강 4일, 하행 카라반 기간, 그리고 귀국. 모든 기간 동안 우리 대원 세 명은 말 그대로 부담 없이 즐겼고, 능력을 다해 등반했고, 후회 없이 안전하게 내려왔고, 웃으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1-6
네팔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봉우리로 명성이 자자한 6856m의 아마다블람,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알파인 스타일로 경사가 제일 급한 쪽인 동벽에 신루트 개척하는 것. 결코 만만치 않은 목표였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믿었고 동료의 경험과 능력, 판단을 신뢰했기에 즐거운 등반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특히 정상등정에 대한 의지는 높았지만, 욕심이 과하지 않았기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순조로운 등반 준비 과정
10월3일 낮, 출국 약 18시간 전에 우리 대원 세 명은 각자의 집에서 싸들고 온 개인장비와 공동장비를 가지고 하루를 합숙할 마포구 서교동의 한 건물에 모였다. 그리고 같이 대형마트로 가서 미리 작성한 식량구입 목록을 가지고 약간의 공동식량을 구입하고 숙소에서 한두 시간 동안 겹치는 공동장비를 점검해 가면서 카고백을 무게에 맞추어 꾸렸다. 이것이 우리 대원 세 명이 이번 원정등반을 위해 준비한 일의 전부이다. 물론 몇 년 전부터 틈틈이 모여 산행은 열심히 했지만, 산행은 뭐 우리가 밥 먹듯이 일상적으로 해왔던 일이니까. 이번 등반을 위해 등반 외적인. 그러니까 금전적인 외부지원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우리가 이러저러한 등반을 떠난다고 여기저기 알리고 다니거나, 필요한 개인장비나 공동장비를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 대원 세 명이 모두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욕심내지 않고 평소에 사용하던 장비와 빠듯한 예산으로 능력껏 아끼면서 등반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따로 업무분담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업무를 알아서 담당했다. 유학재 대장은 원정등반 전체를 총괄하면서 필요한 공동장비와 새로운 등반식량들을 빈틈없이 구했고, 필자는 예산계획과 지출, 각종 예약과 현지 대행사와의 행정업무처리를, 유영직 대원은 아마다블람 동벽 신루트 개척등반에 필요한 등반장비와 식량을 꼼꼼히 챙겼다. 한마디로 조용히 각자의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프로페셔널들의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말 프로페셔널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각자 직업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산을 좋아하는 그저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10월4일 아침, 조용히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카트만두에 도착한 후 호텔에서 짐정리를 하고, 바로 관광성 브리핑을 끝낸 뒤 대형마트에서 나머지 식량을 구입한 후 카고백 8개를 공항으로 보내는 등 몇 시간 만에 카트만두에서 해야 하는 일을 모두 끝냈다. 일을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건 우리의 대행사인 ‘Nepal Climbing Professional’사의 옹추 사장의 업무처리 능력이 뛰어난 덕분이었다. 30대 중반의 옹추 셀파는 필자와 20년 넘게 알고 지내는 사이고, 유학재 대장과도 여러 번 같이 등반을 해본 적이 있는 한국통이면서 성실함으로 유명하다.
이틀 후 10월6일 아침, 루크라의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우리가 예약해놓은 국내선은 운이 좋게도 제시간에 운행했다.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일주일간의 카라반 기간 중에도 계속 좋은 날씨였으며 대원들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유학재 대장이나 필자, 그리고 유영직 대원도 지난 수년간 거의 매년 이곳 쿰부 히말라야 지역으로 등반 또는 트레킹을 다녔기 때문에 카라반 기간 도중 고소증세는 전혀 느끼지 않았고 지나는 마을마다 친한 단골 롯지 주인들이나 같이 등반이나 트레킹을 했던 셀파족 친구들이 많아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느라고 운행에 시간이 많이 걸릴 정도로 즐거운 산행이었다. 우리 대원들은 각자의 배낭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까지 필요한 개인 침낭 및 의류 등을 모두 직접 메고 다녔다. 또한, 베이스캠프에서부터 필요한 장비 및 식량 들은 모두 먼저 접교(야크)를 이용하여 운반했으며 식사는 모두 롯지에서 파는 음식을 먹었다.
기다림 또한 등반의 일부
이렇게 즐거운 카라반을 거쳐 10월12일 아마다블람 동벽 베이스캠프에 도착해보니 베이스캠프의 입지상황 또한 환상적이었다. 2007년도 한국산악회 기술위원회에서 등반을 왔었기 때문에 얘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베이스캠프는 평평한 잔디밭 위에 설치할 수 있었으며 식수도 가까웠고 동벽의 등반 출발지점까지의 어프로치도 30분 이내로 가까웠다. 북쪽으로는 로체남벽을 중심으로 눕체와 임자체가 멀리로는 에베레스트와 바룬체까지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 또한 굉장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베이스캠프의 위치가 아마다블람 동벽 바로 아래에 오목한 곳이었기에 햇볕이 오전 8시부터 오후2시까지만 비춘다는 것이었다. 햇볕이 비출 때는 내복차림으로 있어도 될 정도로 따뜻했으나 해가 아마다블람 정상 쪽으로 넘어가면 일이 분 만에 우모복과 모자와 장갑을 착용해야 할 정도로 갑자기 추워졌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날씨였다. 베이스캠프 도착한 다음날 아침, 으레 그러하듯이 올라가면서 팡보체 사원의 스님으로부터 축원을 받아온 룽다(기도깃발)을 설치하고 향을 피우면서 간소하게 푸자 세레모니(안전등반 기원의식)를 끝내자마자 문제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발이 굵지도 않고 얌전히 내렸고 산에서의 날씨는 원래 오락가락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눈은 쉬지 않고 3일간 계속 내렸고 쌓이는 눈의 양이 얼마나 대단한지 밤새 대원들의 텐트가 눈에 무너질까 걱정이 돼서 밤새 몇 번이나 텐트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눈삽으로 치워야 했다. 이렇게 3일 동안 쌓인 눈의 높이는 약 1.5m정도였다. 눈이 그치고는 다시 맑고 청명한 날씨가 되었지만 눈이 그쳤다고 바로 등반을 할 수는 없었다.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으니 눈이 녹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고, 우리의 등반목표인 동벽에 쌓인 눈이 떨어질 것은 떨어지고 굳을 것은 굳어지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대원들은 우선 베이스캠프에 쌓인 눈을 눈삽으로 매일 조금씩 치우면서 지루함을 달랬고, 등반에 가지고 올라갈 개인의류 및 등반장비, 식량 등을 점검하면서 다시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는 중에도 동벽 쪽에서는 매일 몇 차례씩 눈사태가 쏟아졌다. “그래, 떨어질 것들은 다 떨어져라. 그래야 우리가 간다.”, “기다림 또한 등반의 일부이고, 실력이다.” 우리는 기다림의 지루함을 이런 식으로 스스로 달래가며 버텼고, 등반 출발지점까지 두 차례나 올라가서 등반 루트를 정찰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내린 눈이 우리의 등반에 도움이 될지 혹은 방해가 될지 기대감 반, 걱정 반으로 결론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사흘간 오른 1210m
10월22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지 딱 열흘 만에 등반을 시작했다. 개인의류와 등반장비, 식량을 나누어 메고 새벽 4시30분에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며칠 전에 약간의 장비와 식량을 놓아두었던 곳에 도착하여 6시부터 유영직 대원의 선등으로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8mm 케블라 로프 100m짜리 두 동을 가지고 등반했다. 선등자가 한 동을 가지고 올라가 고정시키고 후등자인 유학재 대장이 다른 로프를 끌고 셀프빌레이로 등반을 한 뒤, 선등자에게 로프를 전달하고 마지막에 내가 다시 고정된 로프로 셀프빌레이로 올랐다. 기존 확보물이 없는 곳이기에 보통 한 피치를 100m 로프가 다 될 때까지 올랐다. 한편으론,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각자 무전기와 외부마이크를 지참해서 등반 중에 소리를 지를 일이 전혀 없었다. 첫날 등반에는 쌓인 눈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눈이 쌓여 있지 않았더라면 어렵게 암벽등반을 했어야할 것이었다. 평균 경사도 60~65°정도의 구간은 눈이 쌓이고 얼고 다져진 덕분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빠른 속도로 등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아주 빠른 속도였다. 오후 4시까지 5750m까지 진출했으며, 필자가 피켈로 비박할 자리를 만드는 동안 유영직 대원은 암벽 구간을 100m 더 등반하고 내려왔다. 우리가 지참한 GPS상의 베이스캠프의 고도가 5090m였으니 하루만에 고도 약 700m를 올린 것이었다. 첫날 비박하면서 우리는 “이런 속도로 등반한다면 이틀만 더 비박하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충만했으며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 우리를 도와준다고, 다행”이라고 얘기 할 정도였다. 다만 예상대로 모두 입맛이 없어서 저녁으로 끓인 알파미와 즉석 국을 겨우 한 숟가락씩 밖에는 먹지 못했다. 고산의 벽 등반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겨우 끓인 물과 과일 캔 정도만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인공감미료가 들어있는 음식은 먹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식량을 구해서 시도를 해보지만 만족할 만한 식량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이렇게 높은 고도에서 그것도 한 평 남짓한 좁은 비박지였지만 기분 좋은 비박을 했다.
그러나 이튿날 해가 뜬 후 등반을 계속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우선 벽의 평균 경사가 75°이상으로 아주 급해진 것이다. 그리고 어제와는 달리 눈의 얼고 다져진 정도가 빠른 등반을 가능케 하지 않았다. 우리가 선택한 등반로는 동벽 중앙에 1985년에 미국 등반대가 개척한 유일한 길의 우측이다. 두 등반로 중간에는 경사가 약간 덜 급한 커다란 꿀루아르가 있어서 그쪽으로 등반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한 눈에 보아도 눈사태와 낙빙, 낙석으로 상당히 위험해 보였기에 경사가 더 급하더라도 눈사태나 낙석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우측의 암벽구간으로 진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날에는 선등을 교대하여 유학재 대장이 앞장서서 등반을 했다. 그러나 평소에 알고 있던 유 대장의 등반 속도보다 진행이 훨씬 더뎠다.
그만큼 등반 난이도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필자가 후등으로 올라가며 보니, 평소 등반에서 확보물 설치에 상당히 철저하던 유학재 대장이었으나 얼마나 확보물 설치가 어렵고 할 만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는지 설빙 혼합구간을 100m 등반하면서 겨우 아슬아슬하게 아이스스크류 두 개를 설치한 것인 전부인 구간도 있었다. 그나마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2007년에 한국산악회 기술위원회 등반대가 설치해놓은 확보물과 로프의 흔적을 중간 중간 우리 등반로와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우리가 제대로 오르고 있기는 하는구나’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 둘째 날에 이렇게 오른 표고차가 겨우 375m. 해발 6125m에서 두 번째 비박을 했다. 쌓여있는 눈이 아니면 비박지를 찾기가 어려웠을 텐데, 그래도 이런 면에서는 다행이다.
눈은 등반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했다. 오전 8시부터 낮1시까지는 강렬한 햇볕 때문에 더위가 오히려 등반에 방해가 되었지만 오후 1시반경 해가 정상 뒤쪽으로 넘어가면 바람은 없었지만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가져 온 옷을 다 껴입고 등반을 해야 했다. 비박지도 전날과는 달리 기온이 상당히 내려가서 밤에는 영하 18℃ 정도였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비박지에서 눈을 녹여 따뜻한 물과 과일캔 정도를 나누어 먹을 뿐, 가져 온 식량은 거의 먹지를 못했다.
등반 3일째, 첫 구간부터 경사가 85°이상이다. 또한 눈이 거의 다져져있지 않은 분설이다. 한 구간 선등을 끝낸 유학재 대장은 “내가 마치 이 고도, 이 경사도의 눈밭에서 헤엄을 치면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벽의 하단부에서는 루트 파인딩이 되지 않았던 탓에 숨어있는 능선이 몇 구간 나타났다. 확보를 보는 후등자가 선등자의 등반모습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등반이 마치 숨어있는 장애물 경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제일 어려운 점은 확보물 설치였다. 눈은 굳어있지 않았고 그 밑에 있는 암벽에 확보물을 설치하려면 눈을 모두 헤쳐내야 했으며, 하켄이나 프렌드를 설치할 제대로 된 틈을 찾기도 어려웠다. 한마디로 악전고투였다. 이렇게 하루 종일 올라간 등반거리가 4피치, 350m, 표고차 125m가 전부였다. 셋째 날의 비박지 고도는 6250m. 이곳에서 유학재 대장이 한 피치를 더 등반해 고정을 시켜놓고 내려와서 유학재 대장의 최종 도달고도는 6300m.
아마다블람은 늘 그 자리에
이날 밤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나머지 두 명보다 한 피치 더 등반을 해서 윗부분을 보고 온 유학재 대장의 판단으로는 “이 비박지에서 벽이 끝나는 거대한 빙설탑까지 이틀은 더 걸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장비와 식량이 충분했고 연료로 쓸 가스 두 캔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체력이 충분히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정상으로 이어지는 빙설탑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체력이 40% 정도는 남아있어야지 안전한 하산이 가능하리라고 판단했다. 우리 셋은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이곳까지 즐겁게 잘 올라왔으니 내일 아침 일어나서 안전하게 내려가자”고. 결론은 내렸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정상등정 후 등반한 길로 내려올 계획이 아니라 노멀루트(남서능)로 하산할 계획이었다. 그렇기기 때문에 우리의 베이스캠프는 어제 네팔멤버(요리사, 키친보이)들이 철수하여 팡보체로 이동한 상태였다. 우리는 무전기로 요리사에게 우리의 계획을 전하고 한명만 베이스캠프로 올라오라고 하였다. 아무래도 마을까지는 갈 수는 없을 것 같고, 베이스캠프에 있는 다른 원정대에게 하루 신세를 져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10월25일. 지난 며칠 동안과 마찬가지로 동쪽에서 올라오는 햇볕을 정면으로 받으며 일어나서는 지루하고 힘든 하강을 시작했다. 등반을 하면서 올라온 길을 따라 하강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겠으나 넘어온 몇 개의 능선을 다시 넘으면서 하강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거대한 꿀루아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려가면서 천천히 방향을 틀기로 결정하고 10시간에 걸쳐 100m씩 12번을 하강하여 오후6시 드디어 등반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그곳까지 마중을 올라온 요리사 파상이 건네준 시원한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오후 7시,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우리는 상업등반대의 식당텐트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기로 하고 저녁을 얻어먹었다. 베이스캠프에 있던 북릉을 등반한다는 세 명의 멕시코등반대는 우리에게 “대단한 등반을 했다”며 격려해주었고 상업등반대의 네팔 멤버들도 “살아서 내려왔으니 성공이다”며 우리는 위로해주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 심정은 정상등정의 여부는 우리에게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그저 같이 올라간 세 명의 대원이 다친 곳 없이 무사히 같이 내려왔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이런 생각은 대원들 모두 같았기 때문에 등정 실패의 아쉬움은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하행 카라반도 즐거울 수 있었다. 약 20일 만에 다시 만나는 단골 롯지 주인들과도 건강하게 다시 만났음을 같이 기뻐했고, 팡보체에서는 2010년 파리랍차 신루트 개척등반 후 일어난 황기용 대원의 사망 사고 때 시신 수습을 담당했던 구조 전문 셀파인 Trupten Dorji Sherpa를 만나서 뜨거운 포옹도 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루크라까지 내려오면서도 매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물론 이번에 하지 못한 신루트 개척등반의 아쉬움은 컸지만 아마다블람 동벽에 소수 알파인 등반으로 신루트를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
이번에 등반했던 우리 세 명이 다시 그 루트를 등반을 시도하건 아니면 한국산악회 기술위원회 선후배들과 다시 등반을 하건 상관없이 쿰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봉우리인 아마다블람은 어디로 움직이지는 않을 테니 우리가 준비되면 다시 오면 된다는 속편한 생각이었다. 이런 속편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운이 좋았는지, 루크라에서 카트만두로 올 때는 앞 뒤 항공기와 다음날 항공기까지 날씨 사정으로 취소되었는데 우리가 예약한 항공기는 다행히도 제 시간에 운항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홀리 여사의 비서이자 유럽과 미국 산악잡지의 특파원 역할을 하고 있는 Rodolpe Popier가 호텔로 찾아와서는 우리의 등반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인터뷰를 했다. 귀국 후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는 아메리칸 알파인 저널(American Alpine Journal)의 편집인으로부터 우리의 등반기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준 이 등반을, 비록 정상을 가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즐겁게 끝낼 수 있어서 같이 등반한 유학재 대장과 유영직 대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또한, 관심을 가져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도와주신 여러 선후배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첫댓글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덕분에 시원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브라보!!! 준회원입니다 아마다블람 등반기 잘보았습니다. 마치 제가 등반한 기분입니다.
ㅁ2년전쯤 가려다가 준비가 덜되어서 포기한곳이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앞으로도 건강한 등반 하시기 바랍니다.
한번쯤 늦기전에 도전헤 보세요^^ 가능합니다 노멀 루트는 정말 재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