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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동OB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41이성종
맥킨리(6,194m) 정상의 눈물
경비행기가 힘겹게 날아오른다. 알래스카 붉은 곰이 살고 있을 것 같은 광활한 숲 사이로 데날리 빙하에서 흘러내려온 물들이 늪지와 강을 이루고 있다.
시끄럽지만 요란하지 않은 빨간색 경비행기는, 한 번도 녹아내렸을 것 같지 않은 눈 처마를 이고 있는 능선을 넘어, 익숙하게 스키를 타듯 미끄러져 내려 우리를 내려놓았다.
맥킨리. 산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꿈속에서나 그려왔었던 산. 산으로는 한참 선배인 막내동서가 맥킨리 원정때 가져다준 돌을 매만지며 희망을 그려왔었던 산. 그 산을 가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경동고 선배이신 유학재형 덕분이었다. 지난해 가을 추석연휴였던가 보다. 70기 권재휘와 함께 학재형 일행과 야바위를 마치고 인수야영장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을 때, 내년 맥킨리등반을 같이 가자는 제안에 1초도 생각안하고 “네”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곳까지 날아왔고 맥킨리 등반의 출발지인 렌딩포인트에 도착하였다. 11명의 대원, 830kg의 장비 및 식량무게,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하나 된 행동을 해야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묘한 동류의식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학재형과 많은 원정등반을 함께한 신동석과 유영직, 학재형의 산비둘기산악회의 윤태근과 이충우, 학재형의 한국산악회 후배인 신승철과 김정욱, 학재형과 서울시연맹에서 인연이 있는 약사 이영옥, 어센트산악회 선배님들이신 LA에서 오신 김명춘과 이정렬, 그리고 나가지 11명의 산사람들은 나이도, 사는 곳도, 산과의 인연들도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 멤버의 구성상 일사 분란함은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 최선의 방법은 내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렌딩포인트에서 하루를 자고 1캠프를 향해 탈키트나 빙하로 내려갔다. 내리막에서 썰매를 컨트롤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가벼운 알루미늄파이프를 준비해 갔다. 인력거 손잡이를 연상하는 고정핸들을 만들어 무거운 썰매를 내리막에서도 유용하게 끌고내려갈수 있게 하였다. 우리 팀의 고유발명품인 것이다.
탈키트나 빙하 상단에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올라가는 길이 고통스럽기 까지 하다. 순간최대풍속이 초속 17m정도라고 했는데, 팀원 중에 이영옥씨가 날아가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면, 보통 바람은 아니다. 바람으로 인한 스노샤워, 땅만 보고 앞사람 뒤꿈치만 보고 올라간다.
캐신릿지와 웨스트 립으로 향하는 계곡입구에 펼쳐진 광활한 빙하위에 1캠프지가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눈 블록을 쌓아야만 했다. 텐트 4동과 식당텐트 1동을 막을 눈 블록을 쌓은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텐트를 걷고, 짐을 정리해서 썰매에 싣고, 그리고 걷는다. 어제한 일을 오늘도 똑같이 해야 한다. 다만 오늘은 어제보다 운행하는 코스의 경사가 더 가팔라 질뿐.
다음날은 2캠프까지 가지 못하고 운행을 마쳤다. 캠프지가 아니라도 딱히 다르지 않은 이곳 상황에서는 발길 머무는 곳에 숙영지를 정하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음날 3캠프까지의 오르막은 더 가팔라지고 있었다. 아무생각하지 말자. 어디쯤이지? 하는 의문도 갖지 말자. 백야의 이곳 알래스카는 지금 시즌에는 해가지지 않는다. 그냥 가는 거다. 가다가 힘들면 한번 쉬고, 또 가다 힘들면 두 번 쉬고. 피켈은 주차브레이크역할을 톡톡히 한다. 경사가 심한 곳에서 쉬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멈추고 앞사람의 썰매를 잡아주어야 한다. 피켈로 썰매를 고정시키고, 배낭을 벗어 내린다. 크레바스의 위험 때문에 안자일렌을 세개조 정도로 나누어서 운행하는데, 쉬는 시간에도 서로 훌륭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
3캠프(맥킨리 빌리지)에서는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3일간의 연속된 운행에 피로감이 더하여 쉬면서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멀리 북해 쪽에서 밀려오던 운해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카힐트나 빙하 상단의 카힐트나 돔 능선을 타고 넘다 폭포처럼 떨어진다. 구름의 흐름을 가늠하기가 어렵기는 하나, 능선을 타고 넘다 떨어져 내리는 구름폭포는 처음 보는 장관이다.
데날리 국립공원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전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경비행기활주로가 있는 랜딩포인트에서부터는 인공구조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쓰레기도 되가져가서 레인져사무실에 반납해야 할 정도로 철저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대소변이다. 레인져사무실에서 지급받아온 변기통과 비닐을 사용해야 하고 비닐이 어느 정도 차면 깊은 빙하에 버려야 한다. 화장실이 별도로 없기 때문에 한쪽에 눈 블록으로 가림막정도를 만들고 볼일을 봐야 한다. 평소에 매일 볼일을 보던 습관이 이곳에서는 3~4일로 간격이 늘어나 버렸다. 곤욕이 아닐 수가 없다.
하루를 쉬고 전원이 짐수송을 위해 4캠프(맥킨리시티)로 이동하였다. 오토바이 힐을 지나 윈디코너를 돌아서 가는 길은 3캠프까지 오르던 오르막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산이라는 것이 올라가면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다음날은 정예대원-나이어린순으로-들 6명만 짐수송을 갔다. 어제 갔던 이곳을 또 오른다. 두 번째는 익숙해져서 일까, 낯이 익은 운행 로여서 일까, 덜 힘들다고 느껴졌다.
하루의 휴식기간을 갖고 전원이 4캠프로 향하여 올라갔다. 이날도 짐수송을 위해 6명만 썰매에 짐을 싣고 오토바이 힐과 윈디코너의 기나긴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지루할 것만 같은 운행시간들이 산행의 힘겨움을 잊기 위해 생각에 잠기는 버릇을 가진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특히 오르막을 오를 때 생각의 집중력이 강해지기 습관 때문에 많은 생각의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집사람 혼자 고생하고 있는 우이동의 통나무 식당, 부동산경기 하락으로 침체되어있는 공인중개사사무소의 운영, 부동산학 석사논문에 대한 갈등, 크고 작은 모임운영에 관한 전망 등 내 주변의 많은 일들을 생각하고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4캠프에 도착해 보니 우리영역에(짐을 데포 시키면서 표식기로 영역표시를 해 두었다.) 외국인 한 팀이 텐트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때 아닌 영역다툼이 일었다. 당연히 영어에 능통한 동석형 몫이었다. 결국 레인저의 중재로 다툼은 끝났지만, 그 외국팀들은 자기들이 철수할 때까지 우리 영역에서 같이 공존하고 말았다. 텐트 4동과 식당텐트를 마무리하고 하이캠프의 운행과 정상공격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특별한 내용이 없이 회의는 끝이 났지만 우리들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운행 일정이 정해졌다. 다음날은 하루 휴식시간을 갖기로 하였는데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가하게 식당에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줄이고 있었다. 이제 다 온 것 같은데, 아직까지 정상이 멀다. 이곳 맥킨리시티에서 정상은 보이지 않지만 그 곳을 위해 지금껏 감내해온 시간들, 빨리 시간이 지나 정상가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점심을 먹고 학재형님이 헤드월 상단까지 운행을 하고 오자고 제안한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고정로프가 궁금하던 차였는데. 7명만 가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짐도 없이 맨몸으로 가는데도 걸음걸이가 너무 무겁다. 결국 고정로프 아래까지만 가고 다시 캠프로 귀환하였다. 맨몸으로도 힘든 이 경사로를 짐을 지고 어떻게 올라가나!! 고소에서의 운행은 경험으로 인한 적응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모레는 내일보다 운행이 수월해진다고 한다. 인간의 적응력에 대한 확신일 것이다. 저녁시간에 하이캠프에서 정상등정에 대한 회의를 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27일)은 7명이 하이캠프에 짐을 데포 시키기 위해 출발하였다. 4캠프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헤드월은 빙벽과 설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단의 빙벽구간에는 고정로프가 상하행선 구분하여 설치되어있었다. 경사도 60도 정도의 빙벽구간은 등반난이도는 약하지만 빙벽등반시 많은 시간이 필요한 구간이 될 것이다. 또한 스쿠류와 자일등 상당한 무게의 장비가 필요하게 됨으로 고정로프는 등반자들에게는 무게와 시간을 많이 단축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헤드월상단에 오르니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하이캠프까지는 릿지구간이다. 오른쪽으로는 4캠프 쪽으로 1000미터가량의 경사이고, 왼쪽으로 보이는 빙하지대는 엄청난 크레바스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이런 릿지에서 바람의 영향을 받거나 발을 헛딛기라도 하면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이 뻔하다. 바람이 능선에 올라서면서 잦아들었다. 고글에 버프까지 쓰고 바람을 막아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다행이 능선을 다 넘어설 때까지 심한 바람을 불지 않아 큰 탈 없이 하이캠프까지 갈 수 있었다. 하이캠프는 5200미터. 서너 팀의 외국대가 텐트사이트를 장악하고 있었다. 눈 블록이 스러져가는 사이트 자리를 정리하고 텐트 한 동을 쳤다. 가져온 식량과 연료를 옮겨놓는 작업의 움직임이 특히 둔해지기 시작했다. 삽질한번 또는 눈 블록하나 옮겨놓으면 1~2분 이상 쉬어야만 다음 동작을 이어나갈 수가 있었다. 마치 우주인의 유영을 연상하듯 그렇게 말없이 대원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극지방의 특성상 히말라야 산군보다 산소농도가 적다고 한다. 고소가 그만큼 빨리 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4캠프로 철수하여 정상등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는 연일 눈 소식이다.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6월 1일, 일요일 캠프4에 텐트2동과 식당텐트, 그리고 나머지 짐을 남겨두고 5캠프로 올라가는 날이다. 헤드월상단 고정로프를 두 번째로 오르고 있다. 지난번보다 배낭이 무겁다. 오늘의 목적지는 5캠프,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자. 두통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3캠프에서 심한두통이 오고나서 고소에 의한 두통은 이제 오지 않겠지 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두 번째 올라가는 릿지구간이지만 그리 만만한 구간은 아니기에, 중간 중간에 스노우바에 고정된 확보물에 안자일렌 줄을 통과시키며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하이캠프에 도착하자마자 텐트구축이다. 3동의 텐트를 바짝 붙여 설치하였다. 텐트설치작업영역을 작게 하기 위한 것과 바람의 영향을 감안한 배치구조였다. 내일은 날씨만 좋아지면 바로 정상을 간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3명이 한 텐트를 사용했는데 이곳에서는 4명이 한 텐트를 사용하여야 한다. 불편하지만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다음날(2일)텐트 흔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바람이 거세다. 이정도의 바람이면 등정은 불가능하다. 이곳 날씨는 바람만 불지 않으면 그렇게 춥지는 않은데, 바람이 불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느껴진다. 신음소리를 낼 정도로 머리가 아파온다.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겠다. 오늘 날씨가 좋았다면 난 영락없이 바둑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되는데. 이곳을 오기위해 몇 달을 고민하면서 포기해야만 했던 많은 것들, 잃어버린 기회비용, 많은 생각들이 넘쳐난다. 이곳에 온 목적은 정상등정인데, 너무 욕심을 내는 것일까. 날씨가 계속안좋아 진다면 4일에는 철수하기로 결정을 한 상태이다. 이제 2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날씨도 않좋고, 내 몸 상태도 컨디션이 회복되질 않고 있다. 어제 속초적십자 구조대원들이 일정 때문에 정상등정을 시도했다고 한다. 날씨가 흐렸음에도 불구하고 운행을 감행했지만 정상아래 풋볼필드에서 가스로 인하여 방향을 잃어, 철수를 하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동상이 걸렸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 팀은 등정할 수 있을까 두통약과 아스피린을 먹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다음날(3일)도 새벽부터 바람이 요란하다. 텐트에 걸어놓은 선글라스가 떨어질 정도였으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다. 이 요란한 바람들이 모든 구름을 걷어갔나? 머리는 어제보다는 호전되었지만 두통은 여전하였다. 하루세끼 밥 먹는 것이 곤욕이다. 소화도 안 되는 것 같고 머리도 아프고. 내일 날씨가 않좋으면 철수한다고 한다. 철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려가야 한다. 이런……. 잠자리에 들어 누군가에게 기도를 했다. 제발 하루만, 내일 하루만 길을 열어주시길.
6월 4일 수요일 새벽잠에서 문득 깨어났는데 조용하다. 텐트가 안 흔들린다. 새벽3시. 텐트 문을 열고 밖을 보니 날씨고 맑다. 5월 18일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은 날씨인 것 같다. 바람도 한 점 불지 않는다. 다행이 머리가 아픈 것도 사라졌다. 흐린날은 고소로 인한 두통이 심해지고 맑아지면 두통이 없어진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정상갈 준비가 부산하다. 조바심 때문일까. 모두들 표정이 진지하다. 눈을 녹여 물을 만든다. 마지막을 장식할 식수, 바깥기온은 영하 22도. 추위는 문제가 아니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17일 만에 속옷도 갈아입었다. 정상을 가는데 최대한 정갈함은 갖춰야 할 것 같아서. 어머님이 기도드렸던 묵주를 소중이 배낭안쪽에 넣었다. 항상 아들을 위해 안 해도 될 걱정을 하고 계신 어머님이 백일기도를 한 묵주를…….
6시 14분, 출발이다. 데날리 패스를 향하는 설 벽은 아우토반이라 명명되었다. 추락하게 되면 무제한의 속도로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새벽, 햇볕을 받지 못하는 아우토반의 설사벽은 고되다. 발이 시리다. 발시림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나를 포함하여 3명이 하산후 동상증세를 호소하였기 때문이다.)
데날리 패스에서는 안자일렌을 풀었다. 각자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정상까지. 하늘은 맑다, 구름한점없이, 바람도 불지 않는다. 그리고 시야가 좋다. 출발이다. 지금부터는 아무도 날 잡지 못한다. 그 무엇도, 정상에 설 때까지. 걸음이 무겁다. 레스트스텝으로 천천히 무리하지 않게 가기 위해 노력한다. 정상까지 왕복 8km에 16시간 걸린다고 한다. 해가지지 않는 이곳 맥킨리는 날씨만 나쁘지 않으면 새벽에 도착하면 어떠랴. 힘들게 올라간 정상 비슷한 곳을 넘어서니 풋볼필드가 나왔다. 6,000미터에 형성된 광활한 운동장, 그 뒤로 높게 솟은 벽, 숨이 막힌다. 풋볼필드를 횡단하고 저 벽을 올라야 한다. 겁이 난다. 올라갈 수는 있겠지. 풋볼필드를 지났을 무렵 학재형이 뒤에 오는게 보였다. 간식을 먹을 요량으로 쉬었다. 이제 다 왔는데, 무리하지 말자. 학재형 뒤를 따라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헤드월보다 더 가파른 절벽, 지그재그로 어지럽게 난 길을 따라 정상능선에 올라섰다. 이제 이 능선길만 지나면 정상이 나올 것이다. 능선 중간 중간 눈 처마가 두려움을 더해준다. 사람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칼날능선을 지나 정상 앞에 섰다. 외국인 3명, 김정욱이, 학재형, 적십자 구조대 등등. 그런데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슴이 울컥하더니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이런, 이처럼 기쁘고 행복한 시간에 눈물이라니. 우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정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소리 없이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5대륙 최고봉 중 가장 힘들다는 맥킨리, 10년을 넘게 가슴속에 품어왔던 그 산, 거기에 날씨까지 않좋아 하루만 늦었어도 철수할 뻔하다 단 하루 하늘이 허락해준, 2일 내내 머리가 아프다가 오늘 하루만 두통이 사라진, 이날 이곳 정상의 감동이 이렇게 격할 줄 몰랐었다.
정상을 평범했다. 구릿빛 원형표지기만 꽂혀있을 뿐.
그곳은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았다.
이곳에 서기위해 그렇게 힘들게 노력한 것이 멋쩍을 정도로.
그리고 나는 그곳에 섰다. 잠시.
원정 대원 11명중 나와 학재형을 포함하여 5명만이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18일 만에, 단 하루 하늘이 열린 날, 우린 잠시 정상에 섰다가 내려왔다.
첫댓글 꼭 가고싶은곳ᆢ감명갚게 실감나게 읽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