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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서 교회가 7.4년 만에 교회 전용 공간을 마련 하였습니다 ( 4부 )
너머서 교회가 추구하는 기본 가치의 한 축이 “건강한 교회” 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작은 교회” 입니다. 우리가 작은 교회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작음”이 하나님의 뜻임을 나타내 보여 주는 성경적인 근거는 무수히 많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주기도문 “ 을 가르쳐 주시면서 이 땅의 성도들과 교회에 두신 그 분의 뜻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 즉 성도란 “하늘의 뜻과 가치” 를 이 땅에서 이루어 가는 사람들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성도들이 모인 교회의 존재 의미, 나아가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 역시도 “ 하늘의 뜻과 가치” 를 이 땅에서 구현해 내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 주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여 성도로 만드시고, 그 분의 십자가를 기초로 이 땅에 교회를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하늘의 가치” 와 반대되는 말은 “ 땅의 가치 “ 입니다. “땅의 가치” 는 “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 체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가치” 또는 “세속의 가치” 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속의 가치” 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세상 가치의 특징은 한마디로 “ 크다 “ 와 “높다” 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즉 커지고 싶고, 성장하고 싶고, 화려해 지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고, 강력한 힘과 권한을 소유하며, 타인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싶어 하는 것, 이런 것들은 죄성을 가진 우리 인간들의 가슴속에 자연 발생적으로,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리를 잡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 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추구하는 대표적인 “ 세속의 가치 “ 인 것입니다.
이 “세속의 가치” 를 역행하고 거슬러 가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갈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신앙” 입니다. 그리고 “영성” 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속의 가치가 교회로 들어와서 교회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상을바로 “ 교회의 세속화 “ 라고 말합니다. “교회 세속화” 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 교회 성장 제일 주의 “ 이고, 그 구체적인 열매가 “ 교회의 대형화 “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교회의 세속화” 가 의미하는 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나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동일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세속화의 무서운 점입니다. 경계해야 할 점입니다. 하늘의 가치를 이 땅에 심고 확장해 가는 것이 교회인데, 교회와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이 동일 하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 자체가 없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 하늘의 가치 “ 란 무엇을 의미 합니까. “ 하늘의 가치” 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내 보여 주셨고, 예수님을 통하여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해 내신 가치를 말합니다. “십자가” 가 하늘가치를 대표합니다. 하늘가치는 정확하게 땅의 가치와 반대되는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세속의 가치를 대표하는 것이 “ 크다 “ 와 “ 높다 “ 라면 하늘의 가치를 대표하는 것은 “ 작다” 와 “낮다” 입니다. 즉 작아지고, 낮아지고, 겸손해 지고, 약해 지고 , 타인을 섬기는 것이 이 가치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은 일평생 이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낮아지고 작아지고 약해지다 못해서 결국은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이름도 모양도 없이 자신의 몸을 완전히 소멸 시켜 없어져 버리신 분입니다. 그 분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 위에 내려 오시되, 화려한 로마 황제의 아들로 바로의 황궁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 , 그 시대에 이름도 권력도 없는 식민지 백성 , 한 민초인 요셉 가문에 마리아의 몸을 빌어 가장 낮은 말구유의 빨간 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로 , 가장 작은 자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스승 이시면서도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 하셨습니다 “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어 주러 왔다 “ ( 막 10 : 45 ) 예수님은 일평생 이 땅 위에서 하늘의 가치인 “작음“ 과 “ 낮음” 을 온 몸으로 보여 주시고 실천 하셨습니다.
너머서 교회가 추구하는 “작은 교회” 는 이 가치의 연장선 상에 서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바로 “하늘의 가치” 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의 가치가 가만이 있어도 저절로 유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적인 노력과 끊임없는 투쟁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도 인간의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로망이 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건물이 없는 교회로서의 여러 가지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 하면서 7년 반을 버티어온 이유는 어떤 면에서 이런 우리의 마음속에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본성과 죄성에 대한 투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 에 대하여는 항상 두 가지 질문이 따라 옵니다. 그 하나는 작은 교회의 크기에 대한 기준 입니다. 성도의 수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에 대한 성도의 수에 대한 일률적인 기준은 설정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 정관에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150명 이라는 기준을 설정해 두고 있습니다만, 모든 교회에 일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다만 작은 교회를 구별하는 “지표” 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장 DNA” 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성장 DNA” , 더 정확히 말하면 “무한 성장 DNA “ 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교회는 “성장 DNA” 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상 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고, “생명” 의 기초는 바로 “성장”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한 성장”은 아닙니다. 정상적인 생명은 어느 한도 까지 자라면 성장을 멈추는 것 입니다. 그리고 점차 성숙해 지는 것이지요. 무한 성장하는 유일한 생명체는 “암세포” 뿐 입니다.
메가처치의 저자 신광은 목사는 그의 저서 “메가 처치 논박”에서 한국의 교회는 대형화에 성공한 대형 교회와 대형화에 실패한 대형 교회 한 종류 뿐이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장에 실패한 대형 교회가 무슨 뜻입니까. 작은 교회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DNA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성장에 실패 했기 때문에 작은 교회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 안에 대형 교회를 향한 열망과 무한 성장 DNA 를 가지고 있으면 대형교회나 다를 바가 없는데 대다수의 한국 교회가 그렇다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큰 교회는 다 건강하지 않고, 작은 교회는 다 건강한 교회 인가 하는 질문 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또 교회의 크기만 가지고 건강성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크기”와 “교회의 건강성” 사이 에는 상당부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교회가 대형화 될수록 교회의 본질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작은 교회일수록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이 용이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보다 도 우리가 “교회의 사이즈”에 관심을 갖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교회가 대형화 되고 나면 교회는 그 자체의 성장 시스템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성장 또는 확장해 간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일정 규모가 넘어가면 교회의 지도자나 리더가 성장을 제어 하고 싶어도 제동이 불 가능해 져서, 아무리 교회 건강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고자 하여도 통제 자체가 불가능해 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가 그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말년에 돌아가시기 전에 “ 내가 교회를 너무 키워 버렸다 “ 라고 하신 자책의 말씀이 이 부분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의 대형화” 를 추구 하여야 한다는 논리 역시 두 가지 정도로 정리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는 성장 하여야 하고, 또 성장 시켜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과 함께 교회 역시 “성장 지상주의” 를 견지해 오면서 한국 교회는 “교회 성장 =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공식을 만들고, 그것을 교회 성장의 수단이요, 도구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또 교회 성장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 라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습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성장하지 못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교회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되어 모든 한국 교회가 성장에 올인 할 수 박에 없는 분위기와 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성장 =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이 공식은 과연 사실 일까요. 물론 경우에 따라서 맞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 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영광” 이란 하나님 한 분만의 이름이 온 세상에 드러나고 , 온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홀로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교회가 성장 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까. 과연 하나님의 이름이 홀로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까. 한국의 대형 교회들의 이름을 들을 때 우리의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입니까, 아니면 그 교회의 담임 목사의 이름 입니까. 그렇다면 교회 성장 = 하나님이 영광은 허구에 가까운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 하면 하나님이 아닌 인간 목사가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논리는 “ 하나님의 일을 더 크게 , 더 많이 하기 위하여” 교회가 커야 하고 성장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커야 힘이 생기고, 힘이 있어야 주님의 일을 더 크게 ,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논리가 사실이라면 교회는 더 이상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고 ,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선언” 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현대판 바벨탑” 사건 입니다. 실제로 대형화된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들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보면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심이 불필요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또 왜 하나님의 일을 우리 교회만이 독점적으로 그렇게 크게, 많이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 혼자서 할 수 없는 큰 일이 있다면 여러 교회가 서로 연합하여 힘을 합하면 되는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이 땅에 “우리 교회” 는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각 성도들이 하나의 지체로 연결되어 있듯이 교회들도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또 다른 교회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몸으로 연결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옆의 교회가 한 일이 결국 우리 교회가 한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교회” 운동에 대한 오해에 대한 해명으로 이 글을 종료 하겠습니다. 그것은 작은 교회를 주장 하는 사람들은 교회 성장을 터부시 하고 교회 성장 자체를 거부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인 오해 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는 성장 하는 것이 당연하고 , 성장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 운동은 정당한 수단과, 상식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성장을 도모 하되, 다만 무한 성장에 대해서는 다소간 인위적으로라도 제약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일정 수준의 성장을 넘어서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분립 해서 지속적으로 건강한 작은 교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만 명의 건강한 대형 교회 한 개 보다 백 명짜리 건강한 작 교회 백개의 존재가 하나님 편에서 훨씬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교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대형 프로잭트들은 분립된 작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함께 이루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의 새로운 교회의 개척은 대부분 소명을 가진 목사님 개인에 의하여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숫자가 많이 늘어난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교회가 영세 하고, 또 개인의 수고와 희생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큰 교회가 되었을 때에는 그만 큼 “교회 사유화” 의 유혹에 이끌리기 쉽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세습 열풍은 상당부분 이런 토양 위에서 생겨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가 개척 하는 것이 원칙 입니다. 이런 면에서 분립 이라는 방식은 교회의 세습을 방지 하는데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 마지막 5부 에서는 건물 이후의 너머서 교회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공간마련 T/F 팀 ( 최우돈, 한명석, 한창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