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문화' 본문 '화순 예술인' 인물탐구
[문학과 미술의 금자탑을 쌓은 박덕은 교수]
-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박덕은 선생은 1952년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서 8남매의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어머니의 예술적 끼를 이어받아 그가 존경하 는 화가 달리(1904~1984)의 나라에 가기 위해 서반어 학과에 진학하고자 하였다. 달리는 당시 최고의 초현실 주의 화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법대 진학을 원하는 아버지의 반대로 서반어 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국문학과에 진 학하였다. 대학시절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 지 못했다.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스스로 벌어야 했 다. 선생은 오랫동안 자신의 꿈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하 며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선생은 ‘문학’이라는 또다른 꿈을 펼쳐갔다. 197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당선을 시작으로 1983년 《아동문예》 신인상 소년소설이 당선되고, 19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당선, 1986년 《시문학》에 시 당선, 1987년 《아동문학평론》에 동시 당선, 1992년 《문학세계》 문학과 미술의 금자탑을 쌓은 박덕은 교수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 인물탐구 - 예술인 | 박덕은 교수 102 화순문화 제28호 에 희곡 당선,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수필 등 문학의 전 장르에 당선하여 전천후 만능 문학 인이 되었다. 이러한 기록은 우리 문학사에서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59권의 교양서와 5권의 건강서를 집필하는 여러 분야에 해박함을 드 러내며 완성한 필력을 자랑하였다. 선생의 예술 근간에는 시(詩)가 있다. 그동안 펴낸 시집 은 모두 27권으로, 선생의 작품세계를 인간의 실존에서 만나는 온갖 슬픔의 서사현장에서 그것들과 마주하며 아픈 시간을 털어내는 존재로 현현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선생의 문학은 시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1980년대 우리 시단을 한바탕 유행처럼 지나간 민중시, 참여적인 성격의 시세계를 보여주 었다. 이후 3행3음보의 음악성을 지닌 우리 민족의 내면에 녹아있는 노래형식으로 가난한 기층민의 애환을 그려냈다. 선생의 작품 한켠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그린 시적 경향이 차지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신앙고백적인 성격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에서 신앙고백은 절대자 ‘당신’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나 추종이 아니라 인간적인 번뇌와 갈등과 회의가 담겨있다. 이러한 기독교 인물탐구 103 적 세계관을 노래한 시편들은 절대자에게 바쳐지는 헌시이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인 간적인 고뇌를 드러낸다. 박덕은 선생의 시세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적 경향은 ‘그리움’의 정서이다. 이 러한 정서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사랑’의 감정들은 선생의 시문학 초기에서부터 끊임없이 작품 속에 투사되어 현재까지도 천착하는 주제이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홀로 지내오 면서 생래적으로 내면에서 들끓는 인간 박덕은 삶의 에너지이자 욕망의 형상화이다. 그것은 삶에서 솟구치는 외로움의 소산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표현이며 박덕은 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유년기에 부모로부터 받은 소외감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 또는 저항의 기표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1980년대 후반부터 사진예술에 큰 관심을 보이며 작품활동에 전념하였다. 여러 차 례 공모전에 입상하고 개인전도 수차례 개최하여 많은 호응을 받았다. 선생의 사진세계는 주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었다. 특히 생태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경향의 작품들이었다. 당시 수십 년 동안 압축된 경제성장에 훼손되고 오염되는 자연환경은 선생에게 커다란 깨달 104 화순문화 제28호 음에 이르게 하였을 것이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폐기물방치로 인한 환경파괴, 화석연료 사용으로 자연생태계 파괴 등이 자행되고 있어 이에 대한 전지구적인 생태위기를 느끼고 있 었다. 이러한 때 박덕은 선생은 자연스럽게 환경파괴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고발하고 비판할 수 있는 매제가 카메라라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의 사진세계는 아스발트 위에서 싹을 틔운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 연잎의 핏줄처럼 불거진 모습에서 생명의 숨결을 포착한다. 그리고 죽은 개구리 모습, 죽은 나무를 타고 오르 며 꽃을 피운 능소화의 모습에서 자연의 숭고함을 발견하여 생태위기의 시대에 생명성에 관 한 메시지를 던진다. 박덕은 선생은 앞에서 밝힌 것처럼 예술에 관한한 매우 지적 호기심이 많은 탤런트이다. 우리나라에 이른바 ‘디카시’가 시단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 디카시를 쓰며 전파하기에 이른다. 디카시는 카메라와 시가 결합한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시창작 방법이며, 장르이다. 디카시를 쓰는 한편 ‘인터넷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한다. 인터넷 아트는 1990년대부터 불어온 인터넷 혁명시대를 이끄는 인터넷이라는 전파매체를 이용하여 컴퓨 터로 제작한 작품을 쉽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하는 신종문화이다. 인터넷 아트는 다양 한 기능과 형식이 있다. 그것을 문학에 적용시킨 것이다. 사진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회 화화 하여 그것에 시를 결합시킴으로써 회화와 시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결합하는 이 형식은, 뒤이어 박덕은 선생만의 예술적 성과로 평가할 수 있고, 곧이어 순수회화 세계를 열 어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2023년 9월 24일, 전라북도 순창군 강천산 아래에서 ‘박덕은 미술관’이 개관하였다. 선생 이 3여년 동안 제작한 서양화 600여점을 기증하여 그 작품들을 전시하고자 연 미술관이다. 선생은 3여년 전부터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시집에 필요한 그림 을 그리고자 시작된 이 우연성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꿈꾸었던 그림에 대한 꿈이 시작된 셈이다. 시간이 나는 대로 홀로 있는 적막한 시간이면 캔버스에 붓질을 하 였다. 그런데 박덕은 선생은 지금껏 뎃생 한 번 한 적이 없지만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강렬 한 색채로 형상화시켰다. 일반적으로 미술대학을 나와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하기 마련이다. 더불어 기존 작가들과의 변별력도 있어야 한다. 그만큼 자기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은 실로 지난하다. 『박덕은의 문학적 상상력과 추상미술 세계』라는 미술평론집을 집필한 필자는 박덕은 선생 이 천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 한 번도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시인이 동시다발적 으로 쏟아낸 작품세계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놀랄만한 일이다. 선생의 작품세계는 인물탐구 105 문학(시)적 상상력의 한 부분인 ‘그리움’을 여러 측면에서 형상화시켰다. ‘나무’ ‘우리나라 강산’ ‘그리움과 열정’. 그리고 빛의 이미지를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표현하였다. 박덕은 선생의 회화는 출발부터 추상미술세계를 추구하였다. 빛에서 하모니를 읽는 상상 력이 빚은 조형성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귀에 들리는 것도 아닌 것을 보고 듣는 예지력 을 지녔다. 격자무늬에서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들에서는 우리나라 창호가 보여주는 직선들의 교차를 실로 다양하게 해석하였다. 조형성보다 순도높은 추상세계를 지향하였다. 선생의 또다른 추상세계에서는 ‘원’을 완결성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우주적 상상력을 펼 친다. 「우주, 혹은 자유」 연작에서는 직선을 지양하고 부드러운 원을 통해 끊임없이 경계를 부수며 팽창하는 우주의 운동성과 에너지를 ‘자유’로 인식하고 있다. 형태와 색채는 인간이 알고 있는 자연이나 사물의 모습이 아닌 상상력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그러므로 선생의 미 술은 처음부터 사물의 재현이 아닌,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고 본질을 묘파하고자 하는 가장 원초적인 회화성을 추구하였다. 박덕은 선생의 그림에서 꽃의 이미지에 대한 모습도 새롭다. 단순한 이미지에서부터 불같 은 열정이 넘치는 이미지까지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선생의 그림 한켠에는 나비의 이미 지들이 나타난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과 세월호 사건 등 분단과 삶의 비극성을 추상미술 을 통해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형상화시키기도 하였다. 박덕은 선생의 예술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1986년도부터 제자들에 게 시를 가르쳐 수백 명을 문단에 진출시키고, 그들이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면 그 보람으 로 살아가는 선생은 여전히 시를 중심으로 한 문학세계를 일구고 있다. 더불어 선생은 새로 운 화법으로 그림을 그려 우리를 또다시 놀랠 것이 분명하다. 박덕은 미술관의 관장과 최근 선임된 사단법인 노벨재단 이사장직을 수행하면서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한국문학과 미술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