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안동 서후의 금계동에 있는
학봉 김 성일 선생의 종택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종손 김 종길 선생은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기도 하기에
자주 찾아 뵙고 있다.
그렇게 하여 만나 뵙게 된것이
학봉 김 성일 선생의 영정이었다
그동안 뵈었던 다른 영정에 비해 느낌이 다르고
듣게 되는 제작과정이 유달라서 더 관심이 갔었다.
닥종이를 감 닥나무로 하여 원재료를 구하는데
종손을 비롯한 일가어른들이 무척 애를 먹었고
모두가 합심해서 종이를 뜨고 만드는데 공동작업을 하였으며
채색의 재료가 되는 쪽 염색을 위해
직접 밭에 쪽을 심어 가꾸고 거두어서 썼다든지
영정제작의 작가가 신념을 가지고 원하는 모든것을 따르느라고
무척 힘든 기간과 노력이 모여서 이러한 결과를 얻을수 있었다 한다.
해서, 나는 작가가 어떤분인지 궁금하기 시작하였고
마침 이 육사문학관에서 주최하는 아카데미에 강사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손 병희 관장에게 일정을 귀뜸해 주기를 부탁하였었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김 호석 화백이었다.
오늘 그와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의 작품세계와 정신 그리고 사유공간이 참 새롭게 느껴졌다.
강의에서도 강조 되었지만
눈 부처, 꿈의 배꼽이라는 화두라든지
인물화인 영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전신사조 구현이라는 명제에도
그러니까 인간을 그리는데는 생명과 정신을 표현하는데
눈의 정기 표현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함에도
그토록 중요시하며 여겨왔던 눈을 비워둔다든지 그리지 않는 그림으로
그리지않고 비우고 지우니 뜻이 확장된다는 작가의 의도는
문외한인 나 조차도 공감을 느끼게 하고 경외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그동안의 미술사적 성과에 도전하고 있는 작가의 바램이 딱 먹혀오는것 같다.
그래서 내가 오늘 제일 많이 눈이 가는 그림인
딸이 봉양하는 그 누군가에게 밥을 먹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상을 그리지 않고 ( 아니 엄청 공들여 그려 )비우고 지우니
그 여백의 풍자나 역풍자의 드나듬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극치를 이루고
공유되는 마음이 절정에 이름을 느끼게 하였다.
검게 칠한 선비의 초상에서 강한 기개를 느끼게 한다든지
얼굴이 없는 초상으로 강한 인상을 표현하고
성철스님의 뒷자태를 그려 세수물에 비친 얼굴을 나타내는등
노무현대통령의 앉아있는 모습을 과감히 비우고 지운것 또한
여백의 극치를 느끼게 하는것들이었다.
그림이나 사진이 말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건방진 주장이었지만 나는 적어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 날카로운 칼날에 꿀을 찍어 먹는 수묵 그림 한장으로
사노라면 숱하게 닥치게 되는 꿀같은 선택의 순간에
잘못하면 맛보는 혓바닥이 두쪽나는 엄정한 결과도 있다는걸
웅변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 절정을 오늘 보게 되었다.
영상 이미지이고 기기잘못으로 제대로 표현되는걸 느끼기에
다소 미흡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의도와 신념이 제대로 전달되는듯 하여
참 새롭고 흥미로운 만남이 되어 오랫동안 기억될것 같은 느낌이다.
사설이 길었다.
길었다는것은 무척 힘들게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다.
김 화석 화백이 전시장을 모두 비우고
단 한점 학봉 김 성일 선생 영정만 전시하는 방법으로
두점이 되어 설명이나 사족이 붙는 작가의 의도를 설명하는걸 배제하였다 했다.
년전에 국립박물관에 갔을때
딱 한점 반가사유상 하나로 전시장을 비운 ( 아니 가득 채운 )
그래서 모두가 놀라와 하고 빛난 전시라고 느꼈던 적이 있는지라
바로 그와 같은 전시가 느낌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마지막 사설로
눈만큼은 심지가 곧고 대추씨처럼 꼿꼿함이
서릿발처럼 맑은 얼굴로 서 있는
학봉 김 성일 선생의 영정을 그리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인
< 눈 부처 , 꿈의 배꼽 >이라는 화두를
오래 오래 마음에 담아 두고 있을 작정이다.
좋은 그림을 보고 놀라고 있다.
비우고 지운 그림을 통해
세상에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