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도 은총이며 시련도 축복 (루카 22,14-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임금이 나타났을 때 환영의 의미로 나 뭇가지를 흔들며 기뻐하였다. 오늘 우리도 그런 의미에서 나뭇가 지를 들고 환호한다. 새롭게 출현한 임금을 환영하듯 예수님을 환 영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복음서는 말한다. 우리가 환영하는 예수 님은 임금으로 오신 예수님이 아니고 수난 받고 죽으시는 예수님이라고. 장황한 수난 복음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예수님을 알리려는 데 있다. 교회는 오랫동안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사 람은 누구든지 그분이 겪은 것과 같이 십자가의 고통과 억울함을 체험하고 겪어야 한 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의 고통과 억울함의 체험, 어떤 사람은 그것을 가족한테서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사업 안에서 직장에서 체험할 수 있다. 아니면 자신의 성격이나 습관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십자가를 지는 데 힘이 든다. 자신을 누 르지 않고 욕심을 방치한다면 십자가의 체험은 점점 귀찮아진다. 자신을 죽이려 할 때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그 사람 안에서 힘을 발휘한다. 전혀 예기치 않던 곳에 서 은총을 만나고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다. 오늘은 성지가지를 들고 행렬을 한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져가 십자가 뒤에 모셔둔다. 우리가 환영하는 예수님은 고통받고 죽으시는 예수님임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그렇 게 하는 것이다. 부활은 반드시 고통 뒤에 온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 통의 강을 건너야 부활의 새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신앙의 핵심이다. 십자가 뒤 에 걸어두는 성지가지가 이 핵심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성지가지를 받으면서 고통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의 운명을 묵상하 자. 고통도 은총이며 시련도 축복인 것이다. 고통은 없애주고 축복만 달라는 기도는 철없는 기도다. 사람의 일생에서 사순절에 해당하는 시련의 기간이 있다면 부활의 기 간도 있기 마련이다. 성지가지에 담긴 교훈을 깨닫는다면 부활축일은 전혀 다른 의미 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