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파스카의 신비에 참여한 우리는 부단히 건너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작년 늦가을 고마운 은인께서 보내주신 튜울립 구근을 성모상 앞에 줄줄이 심었습니다. 바닷가라 해풍도 세고 체감 온도도 만만치 않은데, 과연 봄에 꽃을 볼수 있으려나 걱정도 들었습니다. 겨울을 따뜻하게 잘 나라고 왕겨도 얻어다 덮어주었습니다.
이윽고 한파가 지나가고 매일 이제나 저제나 하고 성모상 앞을 유심히 쳐다봤지만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3월에 접어들면서 기적처럼 연두빛 잎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기 시작하더니 오늘 부활절에 드뎌 노란 튤립꽃이 첫선을 보였습니다. 마치 주님 부활을 기다렸다는듯이, 자기도 주님 부활에 동참하겠다는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노란 튤립의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네요. 결국 인간적 사랑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즉 주님 사랑을 의미하는가 봅니다.
또다시 부활입니다. 오늘 인근 태안 본당 주임 신부님의 관대한 초대로 아름다운 태안 본당에서 부활 성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교우들과 함께 하는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면서, 새삼 주님 부활의 기쁨을 크게 만끽했습니다.
예수님 부활은 부활절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에게 두가지 강력한 요청을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두가지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이라 실천하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① 일어서십시오! 죄와 악습과 죽음에서 일어서십시오. 사실 예수님꼐선느 생명과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굳이 죽음에 짓눌리고 패배하실 이유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죽을 운명에 처한 우리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 죽음을 자처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죽음의 긴 터널을 헤쳐나와 일어서신 주님을 따라 죽음을 딪고 일어서야겠습니다. 돌아보니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진정 살아있지 못하고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큰 목소리로 외치고 계십니다.
“죽음 별것 아닙니다. 나를 한번 보십시오.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나를 따라 죽음에서 일어서십시오. 죽음을 이겨내십시오. 그리고 나를 따라 영원히 사십시오.”
② 건너가십시오! 오늘 이 거룩한 날 우리는 파스카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파스카란 말의 의미는 지나가다, 건너가다, 넘어가다입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다시금 맞이하며 우리 역시 지나가고, 건너가고, 넘어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 주님부활대축일입니다.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 파스카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고, 그 묵상한 바를 삶으로 실천하는 날입니다.
파스카(Pascha)란 말은 ‘지나가다’, ‘건너가다’ ‘넘어가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한 파스카의 신비에 참여한 우리는 부단히 건너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삶에서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간적 삶에로 건너가야겠습니다.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삶에서 이웃의 슬픔과 눈물을 내 슬픔과 눈물로 여기는, 이타적 신앙인의 삶에로 건너가야겠습니다.
천박하고 미성숙한 삶에서 품격있고 성숙한 삶에로 건너가야겠습니다. 세상 것에만 죽어라고 목숨을 거는 지상 시민의 삶에서, 관대하고 너그러운 시선을 지닌 천상 시민의 삶에로 건너가야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홍해 바다 건너편 피안(彼岸)의 언덕 위해 서서 우리에게 빨리 건너오라고 손짓하고 계십니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죄와 악습, 인간적 미성숙과 극단적 이기주의를 모두 이쪽 땅에 내려놓고, 주님께서 서 계시는 반대편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