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은 한마디로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보통 ‘예수 성심 상’에서는 예수님의 심장에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으로 표현된다.
옛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예수 성심을 사랑과 은총으로 생각해 심장 에서 흘러내린 물이 영혼을 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세례성사를 상 징한다고 봤다.
또 피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하는 영혼의 양식, 성체성사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성경에 근거한 것으로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19,34) 는 말씀을 전한다.
예수 성심은 성령과 함께 초자연적인 은총의 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심이란 신체기관인 ‘심장’만을 따로 떼어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과 사고, 의지를 맡은 중추기관으로서 그리스도 인격을 총체적으로 일컫는다.
예수 성심은 인간 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다. .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사실 중세 이전까지는 주로 수도회에서 권장되고 보급되면서 소수 신비주의자들이나 성인들에게만 국한됐다.
예수 성심을 교회가 공인하고 적극적으 로 보급하게 된 획기적인 계기는 1673년 12월 27일에 당시 프랑스 방문회 수녀였던 마 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성녀에게 일어난 예수님 발현이었다.
예수님은 성녀에게 다 음과 같이 전했다.
“내 거룩한 마음은 인간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성심 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홍수를 퍼부어 성덕과 구원 은총으로 그들을 부유하게 하고 멸망 의 구렁에서 건져내려 한다.”
예수님은 또 당신 성심을 공경하는 특별한 축일을 제정하고 교회가 공적으로 당신께 영 광을 바치라고 요구하며 이렇게 약속했다.
“나는 성체 성혈 대축일 후 금요일을 내 성심 을 공경하는 날로 정하기를 원한다. 그날 영성체하는 영혼들은 내 성심에서 사랑의 은총 을 홍수처럼 풍부하게 얻게 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후 금요일에 지내는 예수 성심 대축일의 근거가 됐다.
이후 역대 교황들은 공식 문서들을 통해 예수 성심 신심을 승인하고 널리 보급하는 것을 권장했다.
가장 먼저 클레멘스 13세 교황(1758~1769)이 예수 성심 신심을 허락하고 교령을 반포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은 예수 성심 축일을 전 세계 교회 축일로 확산시 켰다.
1899년 레오 13세 교황은 모든 인류를 예수 성심에게 봉헌할 것을 선포했고 이후 비오 10세는 해마다 이 봉헌을 갱신토록 했다. ‘예수 성심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비오 12세 교황은 1956년 회칙 「물을 길으리라」 (Haurietis Aquas)를 반포하고, 예수 성심 공경의 교리 근거를 신학적으로 제시했다.
비학교”라며 “인류를 구원의 샘으로 초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 장 적절한 응답이 된다”고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에게 다음과 같은 12가지 성심의 약속을 남기면서 당신 성심에 사랑을 바치고 봉헌하 는 이들에게 축복과 은총을 풍성히 내리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① 생활에 요긴한 모든 은총
② 가정의 평화
③ 성심상이나 상본을 놓고 공경하는 모든 곳에 강복
④ 근심 하는 자들에 대한 위로
⑤ 죽을 때에 든든한 의탁
⑥ 모든 사업에 풍성한 강복
⑦ 죄 인들에 대한 무한한 자비
⑧ 냉담자들이 열심하게 됨
⑨ 열심한 영혼들을 성덕과 완 덕으로 이끔
⑩ 사제들에게는 어떤 마음이라도 감화시키는 은혜를 줄 것
⑪ 성심 공 경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지워지지 않게 할 것
⑫ 9개월간 연이어 매달 첫 금요일에 영성체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통회 은총을 주어 은총 지위에서 죽게 할 것.
예수 성심을 겉으로 공경한다고 해서 이 모든 은혜를 모두 받아 입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이러한 특별 은혜를 받으려면 성심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공경해야 하며 끊임없이 기도를 바쳐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현대사회는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인 해 사회 전체에 병폐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예수 성심을 진심으로 공경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에 각 가정과 본당과 교구를 성심께 봉헌하고 있다.
예수 성심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의 신앙을 쇄신하고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톨릭 신문 2017년 6월 4일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