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는 길을 찾는 경기다.
사각형의 당구대 안에는 수많은 길이 있고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공 앞에 서면 어느 길을 선택해야할지 늘 고민에 빠진다. 편한 길도 있고 험한 길도 있으며, 지름길도 있고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시원스럽게 뻗어나갈 때도 있고 힘겹게 굴러가다 목표물의 코앞에서 주저앉기도 한다. 가는 길에 방해물을 만나면 충돌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기도 하지만 가끔은 전화위복이 되어 뜻밖의 행운을 얻기도 한다. 잠간 쉬운 길을 택하면 다음 길이 꼬이지만 어려운 길을 택했을 땐 그 끝에 탄탄대로가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갈래 길이 있지만 딱히 정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길은 항상 열려있고 최적의 길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희비가 엇갈린다. 선택이 끝나고 출발선을 떠난 공은 새로운 운명을 만난다. 그러나 어떤 길을 가든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그 결과에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인생길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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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의 핵심 기술은 ‘두께’와 ‘회전’과 ‘속도’다. 당구를 친 날 잠자리에 누우면 천정은 어느 새 당구대로 변하고 수많은 길이 겹쳐진다. 지나온 삶의 궤적을 떠올려 본다. 빗나가고 충돌하고 헛발질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만약,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탐욕의 두께와 관계의 회전과 세월의 속도를 되새기며 긴 한숨으로 뒤척이지만 과거일 뿐이다. 당구공이 매번 목표에 적중할 수 없듯 인생도 좌충우돌하면서 앞으로 나갈 뿐이다.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오늘도 다시 길 위에 선다.
- 우승순의 수필 「당구예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