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본당과 공소를 돌기 위해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긴 겨울 탓인지 이곳 러시아의 식물은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성장의 속도를 보인다.
마침, 오늘이 벗꽃이 한참인 한국의 환연한 봄이라고나 할까?
비료쟈(자작나무) 사잇길을 지나,
산에 핀 꽃들,
막 나무에서 새잎이 나오는 그 연한 푸른 색을 바라보며
이 정도 살았으면 되었다… 라는 버릇없는 생각을 하며 콧노래로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부르며
아르셴에프에 도착하여 말씀의 전례를 하고
다과시간을 갖는데 얼마 전 정교회 신자였다 천주교에서 첫 영성체를 가진 오르간 반주자가
전자 오르간을 가지고 오더니 제가 좋아하는 노래라며
ОЧАРОВАНА, ОКОЛДОВАНА...(마술에 걸렸는지, 마법에 걸렸는지...)을
신자들과 열창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뜻 밖의 선물이었다.
생일도 아니고 기념할 일도 없는데
왜 이 노래를 불러 주냐는 질문에 악보를 구해서란다.
고맙다!!!
작년 여름캠프에 있었던 일인데 기억해 줬던 그 마음들이...
다시 공소를 향해 달려가는데
뒤 따라오던 경찰차가 앞질러 오더니 옆에 정차 하란다.
그들과 친교의 시간을 나누고...(%$#^@....ㅎㅎ)
다시 공소에 도착하여 말씀의 전례를 가진 후 그들과 차 한잔하며
그들의 삶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에게서 우유도 얻고 달걀도 구입하고 직접 구운 빵도 얻은 후
조금 전에 집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22시가 다 되었다.
참, 오는 길에 약수 물도 받아 왔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갔다.
하루 하루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삶의 사건과 만남이 이루어지는가?
나는 그 안에서 무엇을 공유하고 무엇을 느끼는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피어나고...
과연 내가 아는 것이 얼마만큼이며
얼마만큼 서로서로 공유한 후 한줌의 흙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
부활시기를 보내는 지금,
산속에 보는 이 없어도 자신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그 역할을 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그 꽃들이 나에게 자연의 순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일깨워준 하루였다.
부활은 지극한 자연의 순리에 순종할 때
거저 주어지는 것임을 새삼 느꼈던 따스한 하루였다.
첫댓글 위의 노래 설명을 드리면...
ОЧАРОВАНА, ОКОЛДОВАНА...(아차로바나, 아깔도바나..)
이 노래는 20년이 넘은 노래인데
이 노래를 직접 부른 자볼로찌코바가 교도소에 있을 때 작사한 시를 출감 후 노래로 만들어 흥행을 이루었던 노래입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고루 비취는 햇빛,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거저 먹고 사는 새,
가꾸는 이 없어도 험한 산자락에 절로 피는 들꽃,
주님께서는 거저 베풀어주신 은혜로 가득찬 이 세상을
나만의 곡조로 노래하는 우리들되기를 기도해요.
수사님! ~그 노래 한번 듣고싶은데요..^^
자연의 순리에 순종하는 제 자신이기를 하느님께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