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루 알파](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 김원겸01:50
바울이 A.D.61~62년 초 사이에 로마를 도착했다면, 베드로는 A.D.63년 말~64년 초기에 로마에 도착했을 것이다.
본서는 아마도 네론 케사르 황제가 박해를 시작할 즈음에 기록된 것인데, 베드로는 이 박해가 로마 전체에 국지적으로 퍼질 시점에 소아시아 지역(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애들한테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인데, 대박해가 A.D.64년 쯤에 일어났는데, 대박해 직전 또는 직후에 본서가 기록되어진 것은 맞을 것이다.
이 첫번째 편지를 어디에서 기록했을까(?)베드로의 노년의 대부분이 로마에 있었다.
그래서 로마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제일 크지만, 문제는 5:13절의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러하느니라"라는 마지막 표현에서는 베드로와 마가가 "바벨론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이 첫번째 편지를 썼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로마제국은 오늘날의 유럽을 비롯한 발칸반도와 소아시아와 갈라디아, 바벨론과 아래로는 이집트(애굽)도 다 포함하여 로마제국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이걸 PAX ROMANA(로마의 평화)라고도 부른다.
베드로와 마가가 바벨론에 있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앗수르인들의, 유프라테스를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이라크, 이란 일대의 그 바벨론을 말하는가(?) 아니면, 애굽의 카이로 부근에 앗수르 인들이 정착촌을 이루었던 그 애굽의 바벨론을 말하는가(?)는 좀 더 고고학적 발굴을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반석이 쪼개져(베드로 전,후서)서 입을 열어 말씀사랑 원뜻 강물을 관개수로 하고 있는 모양으로 전,후서를 보면 된다.
베드로가 요나의 아들이 아닌, 요한의 아들 개념으로 베드로전,후서라는 편지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베드로는 "요나의 아들"(예수의 아들)로도 불리워졌고, "요한의 아들"(그리스도의 아들)로도 불리워졌다.
요거 요한복음 21장 15~23절까지 한 번 동강 더 하고 베드로전서도 들어가야겠다.
첫댓글 성경이야기 원뜻으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