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삶에 흡수되면, 자기원칙이 생긴다. 그러면 살아가면서도 죽음을 늘 떠올리며 살게 된다. 삶을 살아가더라도 자신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항상 알게 된다. 즐기면서도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게 된다. 죽음은 자신의 그림자, 자기 존재의 일부분, 자기 시각의 일부가 된다. 그대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제 자기원칙이 생겨난다. 이제 그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은 유일한 목표가 아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삶이 지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죽음이 삶의 최고의 정점이 된다.
삶을 전체적으로 살고 전체적으로 죽을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살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자기원칙이 의미하는 바이다. 자기원칙은 억압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이 있는 삶, 방향감각을 갖고 사는 삶이다. 죽음에 대해 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완전히 자각한 삶을 사는 것이다. 삶이라는 강에는 양쪽에 강둑이 있다. 삶과 죽음이 그것이다. 의식이라는 강물이 이 양쪽 강둑 사이를 흘러간다. 죽음을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면 한쪽 강둑으로만 움직이게 된다. 그의 의식의 강은 전체적이 되지 못한다. 그는 뭔가가 부족할 것이다. 매우 아름다운 뭔가가 없을 것이다. 그의 삶은 피상적인 게 되어서 전혀 깊이가 없을 것이다. 죽음이 없는 삶은 깊이가 없다.
-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
첫댓글 잠시 생각속에 머물고 싶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