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결정할 무렵의 자녀가 역사를 전공하겠다고 하면 부모는 어떤 기분일까. “오, 네가 인문학의 정수를 깊이 공부하겠구나!”라고 기뻐하는 부모…도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 역사…? 좋기는 한데, 공부하고 나서 뭐 먹고 살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이 질문을 삼킬 수 있는 부모라면 정말 양식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어두워지는 낯빛을 감추지는 못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역사를 공부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잘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거냐고?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더 깊이 사고하고 나날이 복잡해지는 이 세상을 성찰하면서, 나만의 개성을 발전시켜 사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자기 밥벌이를 못한다면 세상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거겠지.
TV에서만 보던 심용환 선생님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진로 특강의 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어렸을 적 <먼 나라 이웃나라>를 읽으면서 역사를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특히, 사춘기 시절 방황하던 자신에게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선물한 사회 선생님을 잊을 수 없노라고 전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트렌드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열심히 파고들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의 관심사이다. 내 관심사를 따라 역사를 들춰보면 생각지 못했던 돌파구를 만날 수도 있다. 강의 자료에 대뜸 올라온 자료는 조선시대 산수화 한 편, 음풍농월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는 나와 달리, 조선 전기 주요 국정과제였던 호랑이 박멸 작전과, 그로 인한 소의 개체 수 증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인수공통으로 퍼졌던 대규모 역병까지, 교과서는 물론이고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다이내믹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당시의 주요 통치이념이었던 농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지를 여러 연구를 통해 찾아냈다.
심용환 선생님은 지식이야말로 철저히 나의 현재 관심사에 근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자발적인 학습이 이뤄질 수 있고, 나를 더 사람답게 해주는 공부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삶이 바로 그 산 증거이다. 그는 오랫동안 입시학원 강사로 일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논란 당시, 떠돌던 유언비어에 대해 쓴 반박문이 SNS에 널리 퍼지면서 일하던 모든 학원에서 해고되었다. 그러나, 이 일 덕분에 그 사이에 써왔던 원고를 발간할 기회가 생겼고, 여러 방송사에서 대중 친화적인 역사학자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목표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 지식 안에서 쌓아올린 자신만의 관점은 현실의 갈등 속에서 인간됨을 지키는 기준으로 작용했고 그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만들었다.
내가 혹은 내 자녀가 하고 있는 공부를 살펴보자. 언젠가 입시를 거쳐야 하는 아이의 공부 로드맵에서 정해진 공부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중심에 아이의 질문, 아이의 관심사로부터 출발한 공부가 자리하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그런 공부야말로 내 아이의 인간성과 개성을 더 빛나게 해주는 길이라는 걸, 나 역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