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에 상담넷 칼럼으로 썼던 글이 있다.
"추석연휴 직전이였나? 퇴근길 매일 내리는 전철역에 아주 가끔 몸이 아픈 중년의 남자분이 과일을 판다. 말도 잘 안통하고, 온몸이 굳어져서 그런지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힘들어보이지만 저녁 늦게까지 과일 판매를 열심히 한다. 물론 그동안 내가 보기에는 거의 손님이 없었다. 전철역에서 육교로 이어지는 한 귀퉁이 작은 공간이 그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생활하는 곳이다. 매일 나오지 않고 부정기적이다. 어떨때는 한달에 한번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 그를 잊을만하면 보기도 한다. 추석연휴가 다가오니 퇴근길 전철역에 내린 사람들 손에 심심치않게 큰 선물 상자나 장바구니가 들여있으며 분주한 발걸음 속에서 그 사람의 과일은 더 보잘것 없이 왜소해보였다. 그 앞을 지나가며 곁눈질로 그의 과일을 살폈다. 역시나 마트에 진열된 과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서둘러 육교를 내려오다 ‘저 과일들을 하나도 못팔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요즘 체크카드만 쓰느라 현금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갑을 포함해 잔돈까지 몽땅 털어서 5000원을 만들었고, 다시 육교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분 앞에서 어떤 과일을 사야하나 싶어 잠시 망설였다. 들고 가기도 쉽고 제일 안 팔릴것 같은 것으로 샀다. 추석 잘 보내시라고 인사하고 까만 비닐 봉지에 담긴 배를 들고 버스 정류장을 향햐는데, 두가지 마음이 들었다. 나머지 과일도 누군가 꼭 사주었음 하는 마음과 이렇게 과일을 사준 나 스스로에 대한 뿌듯한 마음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보니, 작년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그때 글의 주제는 '자존감'에 대한 글이였고, 소재중 하나가 몸이 아픈 중년의 남자분이였다. 올초 코로나 확산이 막 시작되기 직전까지 전철역 육교에서 과일과 채소를 파는 그를 보았었다. 재택도 자주 해 전철역 왕래가 뜸했던 것도 있지만 솔직히 그를 잊고 있었다. 왼쪽에 마비가 와서인지 한쪽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어려워보였고, 제대로 걷지 못했다. 왼쪽 얼굴도 마비상태였던것으로 기억하는데, 못먹어서 그런지 많이 말랐던 그는 악조건속에서도 참 열심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어눌한 말투에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으나 구입한 물건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팔을 이용해 까만 비닐봉지에 넣는 그 모습이 안되었다는 생각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힘으로 잘 마무리 하도록 응원하게 되는 마음이 컸다.
글을 쓰려고 한해를 돌아보는데 불쑥 그가 떠올랐고, 궁금해졌다. 코로나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왜 전철역에는 안나왔을까? 아니면 나와 마주칠 기회가 없었나? 혹시 더 나빠져서 못 움직이는걸까?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면 우리 공동체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부터 피해가 생긴다고 하는데, 혹여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모르게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덜컥 걱정이 되었다.
난 왜 그가 걱정되고 궁금해졌을까?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 1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1년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유독 그가 보고 싶은 이유가 뭘까를 곰곰이 생각하느라 여러날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모르겠다.
내성적이고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는것에 심한 쑥스러움을 가지고 있어서 전철역 육교 좌판에서 물건을 살때도 쭈뼛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과일 가격을 묻는 성향이라 사적인 대화를 해보지 못했다. 그냥 가격 묻고 물건 담긴 까만 비닐봉지를 건네 받고는 '많이 파세요!"란 말만 그가 분명하게 들을 수 있을 크기로 이야기한다.
조금 크게 말하는 "많이 파세요!"에는 더 많은 말들과 의미가 있음을 그는 모를텐데 그동안 왜 안보이셨는지, 잘 지내셨는지 그리고 그의 좌판을 눈길 한번 안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좌판이 어설퍼보여도 꽤 괜찮은 물건이니 사보시라는... 그래서 나도 이만큼 샀다는 의미의 말이 포함된 것이였다.
그를 특별하게 기억하고 궁금해 하는 것은 내가 직접 만난 사람들중 어려운 처지에 있는 그가 안전하게 지금의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다면 나 또한 공동체 안에서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싶기도 하다. 아니면 그를 내 자존감을 높이는 존재로서의 글감으로 떠올렸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는것일까? 예전 등대강의때 정확한 워딩은 가물거리지만 어느강사분이 지금 공동체 안에서 핍박받고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자신 또한 온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을 했던것 같다. 그렇기에 나만 잘살고, 내 가족만 안전해서는 안되고,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연대해야 하는 것이 필요함을 이해했다.
어쨌건 길게 대화를 해본적도 없고, 어떤 인연이 있지는 않지만 난 여전히 그의 안위가 걱정되고 새롭게 시작된 올해에는 그 육교에서 다시 만날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에게나 힘들었던 지난해를 모두 잘 견뎌내고 육교 좌판에서 그를 보게 되면 이번에는 길게 말도 걸어보려 한다. 많이 응원하고 있음을 그가 느낄 수 있도록.
첫댓글 해당 행정복지센터에 문의해 보시면 어떨까요... 덩달아 걱정이 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