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딸아이가 요구르트병을 가지고 와서는 신기하다는 듯이
"와~~ 엄마 이것 좀 봐."
('엄마 이것 좀 봐' 이 말 정말 많이 하는 말)
봤더니 병 안에 곰팡이가 가득하다. 요구르트 마시고 남는 걸 버리지도 않고 따뜻한 방에 며칠 두니 그곳에 새로운 생태계가 펼쳐졌다. 그 순간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아이가 영영 청소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20대가 되어도 방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사는 상태가 될 거라고 생각이 비약한다. 나눗셈 좀 못하면 수포자 돼서 인생 망칠까 봐 화내는 거랑 뭐가 다른가.
5학년이 되자 수학이 어려워진다. 문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이리 좀 와보란다. 나는 가보지도 않고 문제를 소리를 내서 다시 읽어보라고 한다. 몇 번 읽다 보면 "아~~~~" 하면서 혼자 해결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모르겠다고 할 때면 '네가 이리로 와'라고 답한다. 나는 급하지 않다.
쉽게 욱하는 내가 수학 공부를 할 때면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모르는 게 당연하고, 수학이 어렵고 하기 싫은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청소하기 싫은 것도 당연한 건데 이건 이해해 주면 안 될 것처럼 화가 솟구친다. 사실 내가 청소를 잘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불편하다.
내가 수학을 어려워하지 않아서 수학을 못 하면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서일까. 그걸 뭐 그렇게 못하겠어 하는 느긋한 마음도 있다. 부모의 정보력이랄까 그런 건 미미한 변수이고 아이 자신의 역량이 결정적 변수인 거 같다. 그 역량이란 게 타고난 재능 같은 건지, 후천적으로 키워지는 건지 모르겠고,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결정적 시기란 게 있는 거 같진 않으니 섣불리 손대기보단 좀 지켜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근데 청소는 못 해서 너무 불편하고, 이걸 어려서부터 배우지 못해서 습관이 안 된 거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래서 딸아이는 나처럼 안 살았으면, 정리 정돈을 하는 게 힘든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소망이 좌절되는 순간 화가 나고, 엄마로서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 같은 자책감에 휩싸인다.
아이의 수학 공부를 여유 있게 바라보는 것처럼 다른 성장 과정도 길게 내다볼 수 있다면 마음이 편안할 거다. 아이 스스로 배워간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은 정말 감동적이다. 첫걸음을 떼고, 엄마라 부르고, 글을 읽고 이 모두 아이가 해낸 일이니 얼마나 대견했는가. 그때 진심으로 박수 쳤다.
반드시 꼭 지금이어야 하는 일은 없다. 청소도 언젠가는 할 것이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는 일이 있다면 왜 그런지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한다.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흘러가는 아름다운 순간이 얼마나 많을까.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찾아봐야겠다.
-새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