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기로 인해 평생 처음 <경력증명서>라는 서류를 발급받아야 했다.
내가 일한 경력을 증명해야하는 생각은 살면서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경력 증명서가 필요하다 보니 내가 오래전 근무했던 곳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한 곳은 25년 전의 직장, 또 한 곳은 20년 전의 직장.
25년 전의 직장에는 내 후임으로 오신 분이 아직도 계셔서, 나를 기억하고
반갑게 통화해 서류를 처리해 주셨고, 20년 전의 직장의 대표도 흔쾌히 처리해 주셨다. 25년 전, 20년 전의 직장생활이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지 신기했다. 두 분다 마치 어제 만났었던 느낌이 드는 것도 신기했다.
서류를 처리하면서 나는 이력서를 쓴 일도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롯이 내가 구직을 한 경우는 결혼 후 타지에 가서 딱 한 번인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교수님이나 지인의 추천과 소개 그리고 면접 후 출근~
그래서 그런지 내가 나를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요즘은 ZOOM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의 형태도 달라져서 내가 나를 소개해야 하는 패턴이다. 강의 PPT 안에 강사소개 페이지가 따로 있다. 어색하고 쑥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러 번 하다 보니 익숙해지려고 한다. 조금 더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를 쉽게 느끼지 않는 편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서 흥미를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넓게 펼치기보다는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런데 요즘은 관심사를 넓게 펼치는 다른 패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늘 새로운 주제로 강의안을 만들고 강의를 한다.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책을 보고 있다. 늘 숙제처럼 남아있던 독서에 대한 게으름이 해소되었다. 책을 멀리했던 나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도 사라졌다. 그래서 마음은 가벼운데 시간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보니 성취감은 높다.
경력증명서 덕분에 대학 졸업 후의 나부터 지금의 나까지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나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고민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