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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심과 기도생활 바오로는 20세가 되었을 때, 한 본당신부의 강론을 듣고 심한 충격을 받게 된 것도 이 때쯤인 것 같다. 바오로는 순간의 섬광 속에서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발견하고 강론이 끝났을 때는 고해를 하기 위해 그 신부를 찾았다.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자신은 대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돌을 쥐고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 바오로는 은총의 빛 아래에서 오로지 특은을 받은 영혼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경지 즉 하느님은 누구시며, 인간은 누구인지, 또 죄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해를 마치고 마음의 평화를 회복한 바오로는 자신의 전 생애를 하느님 섬김에 오롯이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가 '회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회심의 깊은 뜻은 오로지 단 한 분의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이탈한다는 뜻이다. 20세에 그는 금욕의 정신을 영웅적인 경지에까지 밀고 나아갔다. 잠을 자다가도 벽돌을 베개 삼아 마루에 누워 밤을 지새 곤 하였다. 간혹 자기 전에 동생 세자 요한과 함께 영적 수련에 몰두함 이들의 고행소리에 어머니는 우셨고, 아버지는 지나친 열심을 염려하신다.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초와 쓸개로 갈증을 풀었으며, 음식도 필요한 정도만 먹기로 결심하고, 그는 너무 말라서 빵 한 조각으로 만족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건강을 지탱할 수 없었으므로 현명하게도 자신의 결심을 변경한다. 그는 자신의 겸손으로 자신의 식욕을 인정한다. 즉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훌륭한 성숙인 셈이다. 바오로의 고해신부는 그에게 자주 모욕을 주었다. 노골적으로 성체를 모시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고해성사를 위해 줄을 서 있으면 제일 끝에 서게 함으로서 그를 무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해소에 들어가서도 언제나 바오로를 무섭게 힐난하였다. 결국 이 무자비한 사제도 이 고해자가 자신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영적 오솔길로 자신을 인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자신보다 이런 문제에 경험이 많은 분에게 보낸다. 그의 아저씨 돈 크리스토 폴 사제는 바오로를 결혼시킴으로서 다네이 가문의 옛 영화를 되찾으려고 하였으나, 바오로는 정결의 맹세를 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삼촌은 로마로부터 관면을 받는다.바오로에게 아가씨 양친의 저녁 초대에 응하라고 명한다. 순명의 맹세로 인해 거절할 수 없었지만, 식사동안 그는 얼굴을 들지 않음으로서 첫 번째 유혹을 피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유혹이 계속이었지만, 1718년 11월 16일 그의 아저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는 이 강압적인 결혼에서 풀려난다. 바오로는 부모님의 경제적인 곤란을 받을 때마다 부모를 도와 일했으나 자신이 말하듯 이러한 효도의 의무로 인해 절대 고독을 원하는 자신의 길을 수년간 연기해야만 하였다. 이 때 그는 성직자는 아니었으나 많은 시간을 기도와 병자방문, 무학자를 가르치는데 썼다. 세상에서 완덕을 추구하기 위한 이 계획은 그가 가족을 아주 떠날 때까지 5년 이상 계속 되었다. 이 생활은 기도와 사랑과 사도적 활동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그의 기도생활은 차츰 양식있는 지도자에 의해 지도를 받게 되었고, 영성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발전되고 확고해져갔다. 카푸친회의 제롬 토르토나 신부는 바오로를 친절히 맞았고, 재빨리 바오로가 스스로 도달한 관상의 경지를 간파하였다. 그는 신비주의에 조예가 깊은 다른 카푸친 회원인 제노아의 골롬반 신부에게 의탁하라고 권고한다. 골롬반 신부는 이 선택된 영혼을 이해하고 바오로가 신비가의 저서를 통해 자양분을 얻도록 도와주었으나 카스텔라쪼에서 무려 34km 떨어진 오바다에서 살거나 그 보다 더 먼 거리인 사보나에 거주하는 시간이 많아서, 바오로는 자기 집에서 8km 떨어진 캐논 체루티 신부의 지도를 받기로 결심한다. 체루티 신부는 해박한 학식과 훌륭한 판단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건전한 상식은 바오로로 하여금 자신이 쓰던 비정상적인 방법들을 버리게 하였다. 바오로는 언제나 체루티 신부에게 유순하게 순종하였다. "바오로는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의 정화, 조명, 일치의 기본원칙들을 광범위하게 섭렵하고 활용했다."고 그의 동료는 회고 했다. 신심생활입문은 그에게 수덕생활의 원리를, 신애론은 신비주의의 원리를 가르쳐 주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향을 받아 바오로는 불필요한 육체적 만족을 떨쳐 버리고자 서원하고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찾기로 결심하게 된다.타울러로 부터 전율할 정도의 엄격한 생활양식을 살도록 영향을 받았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교하던 그의 유사성을 알 수 있다. 영성생활의 스승인 성인들의 교훈을 묵상했던 그는 영혼과 하느님 사이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의 비밀을 탐구했다. 어떤 때는 하느님의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 주시어 바오로를 환희에 차게 하시고 어떤 때는 당신의 수난 고통을 드러내며 죄의 결과를 알려 주시어 바오로로 하여금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