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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는 매일 매일 자신 안에서 일어났던 것을 단순하게 기록하였다. 그는 어떤 날에는, 예를 들어 12월 22일과 같은 경우에는 단지 한 줄만을 썼을 뿐이다. 다른 때에는, 예를 들어 12월 10과 13일 사이와 12월 15일과 18일 사이에는 몇일을 함께 종합하였다. 바오로의 문체는 꾸민데가 없이 자유롭고, 무미건조하고, 조급하고, 서술적이면서 초연하다. 때때로 견해와 사상들이 미완성인체로 남아 있다. 때때로 그는 “기타등등(etc)”의 사용에 의지하기도 한다. 평소의 그의 문체는 그의 직관을 표현하는데 있어 그가 체험한 극심한 어려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바오로는 자신을 주목할 만한 것에 제한하고 있다. 거의 항상 그는 기도와 영성체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 스스로 좀더 명확히 설명하기 위하여 그는 때때로 자신의 개념을 확장하고 발전시킨다. 이 경우에 그는 그의 영적 지도자와의 접촉에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한 놀라운 신학적인 교양을 보여준다. 가장 주목할 만한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는 Gattinara 주교, 카푸친회의 Genoa의 Columban 신부, 그리고 그를 보면 St. Francis de Sales의 가르침에 대한 바오로의 전문가적인 의견을 생각나게 하는 Francis Anthony Cipriata 신부가 있다. 바오로는 영적 작품에 대하여 기술적인 언어를 쉽게 사용한다. 그의 표현 중 아주 많은 것, 즉 그의 체험을 가장 잘 표현한 용어는 “분심,” “무미건조,” “우울,” “감미로움,” “부드러움,” “기능의 동요,” “사랑스러운 집중,” “신적 사랑의 거룩한 음식,” “사랑스럽고 슬픔에 찬 바라봄,” “내적 평화,” “신성에 대한 깊고 체험적인 지식,” “용해,” 기타 등등에서부터 취해졌다. 영적 일기는 바오로의 40일 피정 중 그의 영혼에 대한 개인적인 사건의 묘사이다. 그 안에서 나는 하느님과 바오로 사이에 있었던 사적인 대화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바오로의 체험이 영혼의 깊은 정화와 고통당하시는 예수와의 사랑스러운 친교 사이에서 일어난 것처럼 하느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말씀에 대한 놀라운 체험이 나타나 있다. 바오로 영성의 독특한 특징은 모두 일기 안에 나타나 있다. Pere Breton은 다음과 같이 그것을 아주 잘 표현하였다: “당시 십자가의 바오로는 27세 였다. 그가 심상(心象)을 결코 명확히 구별하지 않은 원초의 감정에 의해 아직 매우 흥분되어 있는 기억을 바로 이 청년이 자신의 ‘길’로 어느 정도 소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이같은 사소한 일까지 나는 강조한다. 그는 단지 이것들이 주입된 순간에 “영혼은 무한하신 분 안에서 존재에 대해 매우 깊은 자각을 갖는다”는 것을 알 뿐이다. 무한하신 분에 대한 이 최초의 감동은 그에게서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해후(邂逅)의 신학을 말씀으로 요약하는 그의 수단이었다 . . . 영적 일기를 쓸 무렵, 눈 앞에 닥친 은둔 생활에의 압박감 . . . 그것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종의 “독창적인 희망”이 그의 열망 내부에 스며들어 있다. 바오로는 대중의 아버지였다. 관상은 관상의 균형점을 찾기에는 아직 미약한 통합체인 행위 안으로 흘러 넘쳐 들어갔다. 내적인 소리가 그들의 사명을 명확히 말하는 것은 그때이다. 이 순간부터 고난에의 동참은 십자가의 역동성과 고난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증언하기 위하여 공동체 일원들에게 긴박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같은 견해 가운데 바오로는 자신의 일기를 썼다. . .” 의도가 있는 듯이 일기는 성체성사의 배경 안에서 씌어졌다. 처음과 마지막의 언급들은 성체성사에 대한 것이다. 매일이 성체성사의 중심에 놓여졌고, 그의 성체에 대한 연장 부분은 그리스도 고난의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시간 안에 마주친다. 일기 가운데 중요한 문구, 즉 간단명료하게 바오로의 기본적인 카리스마를 서술하는 문구는 “나는 단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기를 원할 뿐이다(11월 23일)”라는 문구이다. 영적일기 전체는 단지 바오로의 마음 안에서 겪었던 체험, 곧 포기에 대한 그의 가르침과 밀접하게 연결된 체험을 드러낼 뿐이다. 고난은 바오로의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하느님의 신비는 고난을 통해, 고난 안에서 관상되어진다. 고난은 다른 안전한 장소를 향해 넘어서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고난의 암흑 상태에도 불구하고 고난은 그분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나타내는 빛이며, 이 생활에서 어느 것도 사라지게 하거나 대신하게 할 수 없는 분명하고도 애매한 것이다. 십자가는 영성 생활의 모든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바오로는 “그분의 고통을 느끼고 그분과 함께 십자가 위에 있기를”(12월 6일) 열망한다. 하느님은 “예수의 고통에 대한 지식”(12월 6일)을 바오로 안에 깊이 주입시킴으로써 그 열망을 충족시키신다. 이 체험은 “한 영혼을 위해 갈가리 찢겨지게 되기를”(12월 4일) 바라는 바오로 안에 사도적인 고통을 초래한다. 이 모든 고통은 바오로에게 즐거움, 무사무욕, 예수의 자녀다운 포기에 대한 동참으로 열매를 맺는다. 바오로는 십자가와 순교로써 그리스도의 온 생애를 마음 속에 그렸고, 이것은 그에게 있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는 것은 바오로에게 있어서 삶의 방식이며 방침을 위한 기준이다. “사랑의 완성은 나의 영적인 훈련에 대한 신앙심이 없이 그렇게 많은 방식들로 유혹받는데 있으며, 그같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찾는데 있습니까? 그렇다, 나의 아들아, 이것들이 하느님 사랑의 최고 정점이다. 가장 큰 시련은 가장 사랑받는 영혼을 위한 것이다 . ~ 종은 그의 주인 보다 더 나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온 생애는 십자가였다. 그러므로 하느님 종의 온 생애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한다.”(Letter II, p.468) 자신의 사막체험 동안 바오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하느님과의 친교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의 친교를 위한 길임을 배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있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성부와의 밀접한 친교를 위한 길이다. 성부와의 친교 안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의 마음에 대한 인류 속죄의 필요성을 본다. 그렇기에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체험에서 바오로는 모든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 수도회를 창립하도록 부름 받았다. 따라서 거기에는 바오로의 신비 체험과 사도직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 40일 피정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는 말씀과 성체를 통하여 바오로에게 자신을 주신다. 일기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가 바오로 영성의 중요한 원천임을 명백하게 증명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바오로가 자신의 삶과 사도직으로 선포하도록 부르시는 살아있는 실재이다. 그리고 성체는 바오로라는 존재의 존재근거인 그리스도 고난의 힘을 지닌다. 특히 성체와 고난의 중심사상은 성체가 거부되는 곳에서 순교자로서 죽고자 하는 바오로의 열망(12월 26일) 안에 명백하게 있다. 초기부터 바오로는 성체와 고통당하는 자신의 생활을 통해 고난에의 일치를 확인하였다. 그는 자주 자신은 성체와 고통당하는 것 두 가지 것만을 바란다고 말하였다. 일기 안에서 바오로 고난-영성의 두드러진 특징들은 애덕에 의해 알려진 모든 것, 곧 기도,참회, 가난 그리고 고독의 정신이란 중요한 열매로 나타난다. 바오로의 고난-기도는 그리스도 고난의 빛으로 가득찬 기도이고 중재의 기도인 고통스러운 기도였다. 참회에 대한 바오로의 정신은 예수의 희생 정신 속으로 좀더 밀접하게 동참하도록 그를 이끌어 갈 자신에 대한 완전한 망각이란 자기 비움의 형태로 표현되어졌다. 바오로의 이상은 예수 수난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과 십자가 사이의 깊은 관계가 바오로의 가르침 안에 나타난다. 가난에 대한 그의 체험은 필립비 2:5-11의 복음적이며 신학적인 내용안에 보여지고 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해 두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다. 첫째는 말씀이 자신을 비우고 인간 본성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육화의 순간이다. St. Bernard는 복음을 짧게 요약하는 약어(The Abbreviation)라고 서술한다. 둘째는 가난의 정점인 고난의 순간이다. 일기에서 바오로의 가난으로 표명되는 것 중 하나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수치스러운 모독과 조급함이란 유혹에 대한 자신의 투쟁이다. 일기의 전체적인 무대(San Carlo의 작은 방)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친교의 열매를 맺게 하는 고독에 대한 바오로 헌신의 상징이다. 일기 안에서 고독에 대한 표명은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포기와 외로움을 공유하는 바오로의 포기와 외로움 안에서 주로 발견되어 진다. 그러나 이 포기와 외로움은 평화 안에서 그리고 성부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크나큰 신뢰와 더불어서 체험되고 겪게 된다. 한편 일기는 St. Francisco 영성의 깊은 영향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또한 일기는 어떤 식으로든 라인강의 신비주의와 장차 마주치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Pere Breton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독특한 특색으로 인하여 일기는 또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논리와 상상의 형식을 벗어난” 주장, “무한함”에 대한 견해는 그것의 내용을 예시함이 없이 라인 지역의 신비주의라는 황금과의 우연한 만남을 충분히 깊이 있게 준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