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비정규직이 일반화 된 오늘날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을 과제로 활동하는 단체다. 대구모임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회원과 불안정노동철폐에 관심있는 대구지역 노동자, 시민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모여 기관지 <질라라비> 읽기 모임을 진행한다. 이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나눈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 뉴스민에 정기적으로 기고한다.
TV 뉴스를 보니 설 대목에 택배 물류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호들갑이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한 택배 노동자들이 배송차량을 버려두고 일터를 떠난다고 한다. 뉴스 앵커는 전국에서 택배 물류망이 무너지고 있고, ‘이용자들의 큰 불편’이 예상된다는 멘트를 읊는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학교, 식당, 마트, 아파트까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 흔해 빠진 세상이다. 굳이 뉴스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 사람 절반, 어쩌면 나 자신에게 불안정노동은 일상이고 현실이다.
이러한 불안정노동의 시대 속에서도 지역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대안을 찾기 위한 행동에 앞장서는 이들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이다. 이들의 활동이 궁금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지난 2월 4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읽기 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이다.
이번 모임 주제는 ‘「비정규교수 노동실태 및 의식조사」의 결과와 시사점’ 이었다. 전국의 비정규교수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는 비정규교수노동자의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61.9%가 자신을 ‘교육자’ 또는 ‘학자’로 규정하고, 96.8%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그들이 교육자와 학자로 사는 삶을 위해 가혹한 현실을 감당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응답자의 56.3%가 연간 1,500만원에 못 미치는 강의소득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으며, 안정적인 연구공간을 확보한 사람은 전체의 절반이 못 된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75%의 비정규교수노동자가 ‘앞으로 교수나 연구원으로서 정규직 취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내다본 점이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20~30대보다 오히려, 비정규교수의 현실을 더 오래 경험한 40대 이상 중장년층과 박사학위 소지자에게서 더욱 높게 나타났다.
오늘날 대학에서 비정규교수들은 절반 이상의 강의를 전담하며 고등교육체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맡고 있으며,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의식하며 사명감을 가져왔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비정규교수가 열악하고 불안정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으며, 교육자와 연구자로서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희망을 품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고등교육체계 유지에 있어 매우 중대한 문제이지만, 앞으로의 지속 가능한 학문 재생산의 위기이기도 하다.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토의를 진행했다. 혹자는 높은 문제인식수준에도 여전히 대중적인 투쟁을 조직하기 어려운 모순이 비정규교수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다른 이는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지도교수와의 봉건적 도제관계와 대학의 존폐조차 불투명한 소규모 대학이 많은 복잡한 상황 속에서 모든 비정규교수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현재 대학교육시스템 자체가 문제점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비정규교수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비정규교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심지어 다른 대학교에서 강의를 맡는 것을 막기까지 했다는 것. 그리고 탄압에도 불구하고 비정규교수 노동자가 동료와 함께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시간강사제도와 고등교육체계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정규교수노조 분회가 만들어진 학교에 비정규교수 전용 연구공간이 마련되고, 조금이나마 강의료가 인상되는 등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그리고 열 가지가 넘도록 분할된 비정규교수를 연구강의전담교수로 정규직화하여 안정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제도개선 투쟁을 계속해나가고 있었다.
돌아오며, 불안정노동현실의 돌파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바꾸어 나가기 위한 힘을 조직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현실을 바꾸는 싸움에서 이겨나가는 것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았다. 동일한 노동에 대한 동일한 대가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비정규노동자는 없기에, 불안정노동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이 이 싸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쉽지 않아 보이지만, 선명하게 다가온 깨달음이었다.